인비인 - 성해나 기담집
성해나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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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비인 #성해나 #한겨레출판 #하니포터 #하니포터12기

인비인. 성해나 기담집. 한겨레출판. 2026.

오싹하다. 무서운 존재의 등장이나 갑작스런 비현실적 일들이 벌어져서가 아니라, 너무나 현실적이고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삶과 사회를 신랄하게 묘사하고 있어, 섬뜩하다. 이 소설들을 읽고 있다보면 점점 우리 사회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인지, 정말 인간으로서의 가치는 온전히 살아남을 수 있기는 한 것인지, 의문만 가득해진다. 그러면서도 소설 읽기를 멈추지 않고 끝까지 일어날 수밖에 없게 만든 것은, 그럼에도 잃지 않기를 바라는 작가의 바람과 기대가 작품 안에 담겨있기는 때문이었다. 소설의 줄거리는 참혹하지만, 참혹함 안에서도 기꺼이 지켜지기를 바라는 가치는 분명 있는 것이니까.

'어제', '오늘', '내일'.
하지만 어제가 어제로 끝나지 않고 내일이 다시 어제로 연결되며, 오늘이지만 다시 어제가 될 수도 있고, 그래서 내일이라고해도 오늘과 다르지 않은 이야기들이 연속이었다. 결국, 사람의 이야기와 그런 사람들이 사는 세상에 대한 이야기였으니, 그들이 만들어내는 이야기가 결코 단절되지 않고 내내 이어지고 있다는 것을 이 소설들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어제'를 읽을 때까지만 해도 과거 우리의 역사에서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를 다루고 있다는 생각만 강하게 했다. 역사를, 과거를 청산하지 못하고 이어지던 우리 민족의 문제와, 그 안에서 자신의 조상과 그 조상으로부터 물려받고자 하는 것의 실체가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해봤다. 비판적인 시선으로 각 작품들의 인물들을 꼬집으며, 역사의식을 버리고 살아가는 요즘 세태도 함께 비꼬기도 했다.
'오늘'을 읽으며 어떻게 받아들여야할지 고민이 시작됐다. 이들의 생각과 행동의 이유를 어디에서 찾아야 할 것인지, 이들이 ㅏ라고 싶은(혹은 죽어 살고 싶은?) 삶이란 무엇인지. 이렇게까지 자신을 다시 찾으려 애쓰는 이유는 무엇인지. 우리가 이상을 동경하고 그런 동경의 세계에 빠진다는 것은, 현실이 너무도 참혹하고 괴로울 때 하게 되는 방식일 수밖에 없으니, 이 소설들에서의 삶이란 모두 한결같이 씁쓸한 뒷맛을 만들어내는 현실 인식들 투성이구나 싶기도 했다.
그러다 '내일'을 읽으며 그런 현실에서의 이상 추구마저도 결코 현실을 이길 수 없는, 더 나은 삶이 될 수 없는 또 다른 참혹함의 현실이겠다는 생각까지 하게 됐다. 끔찍함을 넘어서 공포였고, 그런 공포의 끝을 향해 우리가 이토록 열심히 애쓰고 있다는 것이 무서움을 자아냈다. 분명 지금 우리는 미래를 향해, 더 나은 내일을 맞이하기 위해 현재를 끊임없이 바꾸려 노력하는 중이다. 하지만 그렇게 바꾸려 노력하는 결말이 과연 우리가 꿈꾸고 기대하는 이상적인 모습이 맞을까, 하는 의문이 남게 된다.

과연 우린, 어떤 삶을 살았고, 살고 있으며, 살고자 하는 것일까.

각 작품에 대한 작가의 생각을 함께 읽으며 각 작품에서 무엇을 담고자 했는지를 조금 더 명확히 알 수 있었던 것 같다. 한 작품마다의 서사가 단순히 한 편의 소설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다음의 이야기로 다시 이어지고 생각과 고민을 향한 질문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그리고 독자는 작가가 던진 질문에 스스로 답을 찾아야 했다. 과연 우린, 인간으로서 잘 살고 있는 것일까. 작가와 대화를 나누듯 천천히 그 답을 향해 가는 경험을 하게 해주었다. 물론, 기담집이란 이름에 걸맞게 '이상야릇하고 재미있는 이야기'가 잔뜩 모여있어 흥미로웠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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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여자
선요 지음 / dodo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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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여자 #선요 #dodo #dodo그림책 #그림책서평

나무 여자. 선요 글그림. dodo. 2026.

식물을 좋아한다. 그리고 좋아하면 가져야한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봄이면 어김없이 식물을 집으로 데려와야했고, 그 식물들을 가꾸며 나의 만족을 키워나갔었다. 화분이 점점 늘어나고, 더 큰 화분과 더 많은 화분을 가지려는 욕심이 끝도 없었다. 거실을 식물로 가득 채울 수 있는 식집사들이 부럽기만 했다. 나만의 공간에서 나의 식물들과 함께하는 시간을 꿈꾸며 마음을 키워나갔다. 그런 마음이 사랑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 모든 욕심을 내려놓았다. 어느 순간부터 화분을 더 이상이 늘리지 않는다. 지금 나에게 있는 식물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가지며 지금의 생명을 지키기 위한 노력을 이어나가는 중이다. 이런 마음을 먹게 된 계기는, 화분 안에서 제 생장의 크기를 제한받으며 인간의 기쁨과 행복을 위해 자신의 삶의 공간에서 강제로 옮겨져 왔다는 사실을 인지하게 된 순간이었다. 어느 책을 읽으며 알게 됐다. 사람이 인위적으로 화분이라는 작은 크기를 지정하고, 그 크기 이상으로 크지 못하도록 막고 있다는 사실을. 그리고 원래의 자라야 할 공간이 아닌 집안 실내 어딘가에서 식물에게 맞는 환경이 아닌 다른 환경에 적응해 제 속도대로 자라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여전히 식물을 좋아한다, 사랑한다. 다만 다른 방식으로 사랑하기로 했다. 내 것의 소유하는 방식으로의 사랑이 아니라, 식물이 있는 곳으로 찾아가는 방식으로의 사랑으로. 단단하게 땅에 뿌리 내리고 있는 사랑하는 식물들을 보기 위해서라면 기꺼이 그 사랑을 위해 내가 움직이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 것이다.
식물만이 아닐 것이다. 어느 존재든, 그 존재가 갖고 있는 모습을 온전히 사랑할 줄 안다는 것은 그 존재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존중할 수 있을 때 가능할 것이다. 소유하려 들고 나의 삶 안으로 억지로 끌어오게 되는 순간, 순수했던 사랑의 마음은 훼손되고 결국 그 마음을 지키지 못하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나무 여자는 길 위의 꽃들과 나무들이
달라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숨 쉬는 작은 생명들이 아름다웠지요.

사랑할 때의 마음이다. 사랑을 할 때 모든 것이 달라 보인다. 아름답고 향기롭고 따뜻하고, 충만한 행복감이 가득한 시간을 보내게 된다. 그리고 그런 시간이 오래 지속되기를 바라게 되고, 그러기 위해 그 사랑의 대상이 사라지지 않기를 바라게 된다. 하지만 여기에서 자칫 잘못된 사랑의 마음을 갖게 될 수가 있다. 내가 바라보는 사랑만을 생각하게 되는 것. 서로의 방향이 아닌 내가 바라보는 방향으로만 사랑하게 될 수 있는 것이다. 나무 여자가 하고 있던 사랑이 사실은, '나'를 중심으로 만들었던 감정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숨이 막혀 왔습니다.
친구도 만날 수 없었고,
밖으로 나갈 수도 없었지요.
아무리 소리쳐도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나의 행복과 감정에만 빠져있다보면 사랑하는 존재의 마음을 생각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사랑할 때 가장 주의해야할 마음인 것이다. 그 마음을 나무 여자는 비로소 숲속 식물병원을 다녀온 후 알게 된 것이다.

다정한 공기가 나무 여자를
안아주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나무 여자' 입장에서의 사랑이 아니라 '화분'의 입장에서 나무 여자에게 주려던 사랑의 모습이 바로 이것이지 않았을까. 사실 화분은 내내 나무 여자에게 이런 사랑을 주고 싶었을 것이다. 나무 여자가 주었던 사랑의 마음에 이렇게 자신의 사랑을 보여주고 싶었을 것 같다. 다만 그러기 위해서는 화분 자신이 온전히 자신의 모습으로 있어야했기에 쉽지 않았던 것일 뿐.

어떤 사랑이어야하는 것인가를 생각해보게 된다. 우리가 하는 사랑이란 마음이 주는 것으로만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님을, 어떤 관계를 통해 어떤 마음을 주고 또 받을 수 있어야 하는가에 대해, 그리고 그 사랑하는 대상을 위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잘 생각해봐야할 것 같다. 사랑이라는 마음이 결국 내 감정이 가는대로만으로는 안 된다는 것을 말이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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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의 동물들 - 동물과 함께 살기 위해 시작해야 할 이야기들
최태규 지음, 이지양 사진 / 사계절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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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의동물들 #최태규 #이지양 #사계절출판사 #사뿐사뿐

도시의 동물들. 최태규 지음/이지양 사진. 사계절출판사. 2025.
_동물과 함께 살기 위해 시작해야 할 이야기들

부제에 눈길이 간다. 동물과 인간의 공존. 이 책을 끝까지 다 읽고 책을 덮은 순간, 깊은 한숨이 나왔다. 인간은 언제나 동물과 함께 살아가고 있었지만, 동물과 함께 살고 있다는 인식을 잘 하지 않았던 것 같다. 무지했던 것도 사실이고 또 여전히 알려고 하지 않으려 회피하는 것으로 무지를 이어가고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어떤 식으로 포장을 해도 결국은, 인간중심의 이기심이 만들어낸 결과일 것이다. 한없이 부끄럽고 속상한 지점이다.
가끔 그림책으로 아이들과 이야기할 때가 있다. 종종 보여주는 그림책에 고양이국을 먹는 가족 그림이 있다. 아이들에게 보여주면 대번에, 인상을 쓰고 혐오스러움을 감추지 않는다. 노골적으로 욕을 하거나 화를 내기도 한다. 그런 반응이 당연하고 옳으며, 또 그렇게 생각한다는 것을 통해 바람직한 사고와 가치를 갖고 있음을 티내기 위한 방식으로 사용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 그림에 담긴 의도를 아이들에게 질문하면 아이들은 궁색한 답을 찾느라 생각이 복잡해진다. '소고기국은 먹으면서 고양이국을 먹으면 왜 안 되나요?'
'반려'는 '짝이 되는 동무'인데, '반려동물'은, 사람이 정서적으로 의지하고자 가까이 두고 기르는 동물. 개, 고양이, 새 따위가 있다.'를 뜻한다. 짝은 아닌 것 같다. 이미 뜻에서도 '기르는 동물'로 되어 있으니, 기르는 대상이 맞는 듯하다. 물론 자식도 낳아서 기른다고 표현하니까. ('기르다'에 '동식물을 보살펴 자라게 하다'의 뜻과 '아이를 보살펴 키우다'의 뜻이 모두 있다.) 사전에서 이미 '개, 고양이, 새'라는 범위도 제공해주고 있다. 사전이 모두 정답만을 알려주는 것은 아니니 어느 정도 이해하고, 또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란 언중의 사용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는 것이 사실이니, 사전에서 말하고 있는 것이 곧 지금 우리의 인식을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 고양이국에 아이들이 반응할 수밖에 없던 것도 이해가 가긴 한다.
하지만 언제까지 동물을 차별해야할까. 이 책을 읽으며 차별이란 단어를 안 떠올릴 수가 없었다. 동물을 유해와 무해로 나누는 것도 불편했고, 식용과 반려의 구분도 동의할 수 없었다. 채식을 하는 입장에서 자주 듣는 질문에 '생선도 안 먹어요?'가 있다. 육식을 하지 않는다고 했을 때 동물의 범위 안에 물고기는 또 포함이 아닌 것이다. 이렇게 생각이 차별적인 것이다. 사람들은 궁금해한다. 왜 채식을 하는지. 동물에 대한 인식에서 출발한 선택에 사람들의 반응도 제각각이다. 그 제각각의 반응이 곧 동물에 대한 이해와 인식의 단계에서 비롯된 것임을 이 책을 읽고 확실히 알았다. 결국, 알기 위해 공부해야한다.

한국에서 소위 '동물보호'를 위해 펼치는 전략은 '먹지 말자'이다. 다른 말로 하면, 개도 돼지도 닭도 먹지 않으면 동물이 죽지 않을 수 있다는 믿음이다.(...) 나는 두 가지 측면에서 그 전략이 게으르다고 생각한다. 첫째로는 먹지 않는다고 해서 이미 태어나 살아 숨 쉬고 있는 그들의 존재가 사라지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둘째고, 이런 전략은 낡고 허술하면서도 꽉 짜인 축산 체계 안에서, 그리고 고기를 많이 먹는 사회를 만들고자 하는 권력자들의 담합 아래서 얌전하게 소비자로서 선택만 할 뿐이라는 점이다.(...) 내가 동물을 죽였느냐 안 죽였느냐, 혹은 소비했느냐 안 했느냐가 어느 농장에 살고 있는 동물에게 영향을 미칠 가능성은 매우 낮다. 소비자 정체성에 기대는 불매 운동의 인식론적 한계다.(308-310쪽)

그렇다고 소비하지 않는 노력을 안 할 수는 없다. 아무리 소극적이고 게으른 방식이라고 해도, 지금으로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이것밖에 모르겠으니, 우선은 알고 있는 것을 열심히 하는 수밖에 없다. 이렇게 생각을 하면서도 뒷맛이 씁쓸하다. 파괴적이고 폭력적인 방식으로 동물을 대하는 인간 사회를 어떻게 다른 방식으로의 생각의 전환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그래서, 공부해야한다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구나 싶다. 무지한 인간이어서 미안하다고, 동물들에게 사과해야할 것 같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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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균열내기 - 뒤라스, 카뮈, 에르노를 지나 다만 내가 되기 위해
신유진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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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균열내기 #신유진 #한겨레출판 #하니포터 #하니포터12기

나를 균열내기. 신유진 지음. 한겨레출판. 2026.
_뒤라스, 카뮈, 에르노를 지나 다만 내가 되기 위해

우선, 이 책을 가만히 읽으면서, 이 책을 지금보다 더 천천히 한 글자 한 문장을 음미하며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쉽게 후루룩 읽어내기에 무척 아깝다는 생각을 했다. 저자의 가볍지 않은 생각의 깊이가 느껴져 더욱 그랬을 수 있다. 각 문학작품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있기는 하지만, 기본적으로 작가 본인에 대한 깊은 성찰이 밑바탕이 깔려 있다보니, 문학작품을 읽으면서 동시에 문학작품을 읽은 저자를 마주하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이래서 에세이를 읽지, 하는 마음이 절로 들 정도였다.

이 소설에서는 대단한 영웅은 존재하지 않지만, 끝까지 자신이 맡을 일을 해내는 인물들이 있다. 거대한 혁명적 제스처가 아닌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살고, 세계가 인간의 고통에 응답하지 않아도 그 침묵에 굴복하지 않으며, 부조리를 없앨 수 없지만, 그 조건 속에서 끝까지 인간답게 살기를 택하는 것. 아마도 이것이 카뮈가 세계를 살아가는 방식이 아닐까.(30쪽)

어찌보면 각 작품들이 담아내고 있던,그리고 그 작품의 작가들이 말하고자 했던 근본적인 사상과 철학, 사고와 질문을 소개하고 있는 듯도 싶지만, 사실 그런 소개를 통한 자기 자신을 찾아나가는 문장들의 나열이 우리가 잊고 살아가기 쉬운 소중한 감정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문학이 갖는 의미와 가치, 그 속에서 나와 문학 간의 거리감을 줄이기 위한 과정이 이 책 곳곳에서 보이는 듯했다. 아니, 오히려 문학과 나 사이의 경계를 허물고 직접 작품과 그 작품 작가의 삶 안으로 깊숙이 들어가려는 마음이 더 크게 느껴졌다. 그러다보니, 저자의 마음을 따라가기만해도 각 문학작품을 가까이에서 지켜보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던 것 같다.

몰리나르가 그랬듯이 악몽에서 나를 구할 수 있는 것은 나 자신뿐이다. 그 꿈속에서 무언가를 길어올릴 수 있다면, 이미 나는 그 악몽에서 벗어난 것이리라.그서기 위해서는 공포와 매혹을 온전히 수락하는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을 안다. 어쩌면 그 이야기는 나를 통과하여, 또 나와 한 몸이 되어 어떤 '있음'을 증명하려 하는지도 모른다.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되돌아가려는 본성과 싸워 이기는 일이 쓰는자의 몫이니까. 어째서 이러한 수고가 필요한지를 묻는다면, 몰리나르의 말로 다를 대신하겠다. 다만, 내가 되기 위해.

'나'를 향한 과정과 방향이 온전히 각 작품들을 통과하며 나오는 결론이어서 좋았다. 마치 나도 저자의 이야기를 따라, 파리의 어느 한 골목에서 이 작품들을 하나씩 만나게 되는 느낌이었다. 마치 그 나라를 걸으며 경험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라고나 할까. 분명 각 문학작품에 대한 이야기이고 또 그 안에 담긴 저자의 생각이지만, 또 한편으로는 그 나라를 경험하게 하는 색다른 기분이 들게 만들었다. 그래서 더욱, 천천히, 이 책을 음미하고 싶었던 것 같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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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파티 : 파티원 구함
노에미 볼라 지음, 송섬별 옮김 / 문학동네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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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파티_파티원구함 #노에미볼라_글그림 #송섬별_옮김 #문학동네 #뭉끄6기

인생파티: 파티원 구함. 노에미 볼라 글그림/송섬별 옮김. 문학동네. 2026.

그런 날이 있다. 혼자 있기 싫은 날, 누군가와 북적이며 시간을 보내고 싶은 날, 재밌고 싶고 또 마주 즐겁고 싶은 날. 그래서 뭐라도 무료함을 달래줄 수 있는 일을 벌이고 왁자지껄 시끄러워도 좋을 것 같은 날이 있다. 그럴 때면 당연하다는 듯, 누군가를 찾기 마련이다. 누구랑 놀까, 누가 나랑 놀아줄까. 누군가에게라도 '나랑 놀자~!' 하고 툭 문자 보내놓고 그 답을 기다리게 되는 그런 날이 있다.

그날은 정말이지 심심했거든.

그래서 이 마음이 어떤 마음일지 짐작이 간다. 누구라도 좋으니 함께 이 심심함을 달래고 싶은 마음. 혼자서는 달래지지 않을 것 같은 마음이어서 함께 할 누군가를 찾게 되는 마음이다. 그럴 때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이 당연히, 친구들!
친구라는 존재가 우리에게 주는 마음의 안정이 있다. '가깝게 오래 사귄 사람'이 주는 온기가 있어 함께 무엇을 하면 제일 신날 것 같다. 그래서 아무렇지 않게 툭, 지금의 마음과 심정을 툭, 전달하고 마음을 알아주기를 바라게 된다.

다들 좀... 바쁜가보더라고.

하지만, 친구들이라고 늘 기다렸다는 듯 나의 제안에 응해줄 수는 없다. 각자의 일이 있고 또 사정이 있고 또... 이럴 때 난감하다. 한편으로는 상처가 되기도 한다. 실망하게도 되고 기운이 쭉 빠지고 속상하다. 잔뜩 기대하고 또 마음을 먹고 친구들과 신날 수 있는 일을 상상하고 그런 시간을 기대했던 마음이 순식간에 사라졌을 때의 심술이 생기기도 한다. 이대로 더 깊은 심심함의 감정으로 빠져들 수도 있다. 보통의 경우라면, 이럴 때 해결할 방법을 찾지 못하고 포기하게 된다. 나와 놀아줄 사람이 없구나, 혼자서는 심심함을 이길 수가 없어, 하고 말이다. 그냥 심심해지는 쪽을 선택하는 수밖에.

난 이제 혼자가 아니야.
소개할게. 내 파티에 온 여섯 명의
개성 만점 친구들을.
벌리 볼리 빌리 버비 벌린 그리고 나, 애벌레. 나는 알지?

웃음이 빵 터졌다. 애벌레가 보여주고 있는 이 대응이 어찌나 귀엽고 재치있고 기발한지. 아, 이런 방법이 있었구나, 하고 무릎을 탁 칠 정도였다. 혼자라서 심심하다고 생각하게 된다. 함께해야만 심심함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았다. 무언가 부족하다고 생각되고 또 허전하다는 마음을 다른 외부에서 채우려는 것 대신 나 자신에게서 채우려고 할 수 있다는 것을, 애벌레를 통해 알게 됐다.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이 당연하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이다.

나는 다시 혼자가 됐어.

물론, 혼자 있어도 상관 없는 것은 아니다. 매번 혼자이기만 해서 좋은 것도 아니다. 혼자일 때가 필요하고 또 혼자일 수밖에 없을 때가 있는 것이고, 그럴 때 어떻게 그 혼자의 시간을 잘 보낼 수 있는가가 더 중요한 것이다. 그런 면에서 애벌레는 혼자의 시간을 어떻게 잘 보낼 수 있는지를 스스로 잘 깨우친 것이다.

이제 곧 친구들을 다시 불러야겠어.
아침 먹으러 오라고 말이야!

이때의 친구들은 어떤 친구들일까. 물론 나의 마음 속 답은 있다. 애벌레가 이제 친구들과 즐거운 아침 식사를 하게 되겠구나 싶고, 혼자의 시간과 함께의 시간을 모두 잘 보낼 줄 아는 애벌레가 되었다는 것에, 저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나도 오늘, 친구를 불러볼까?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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