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을 훔치는 남자들 - 피해자의 자리와 억울함이라는 무기에 관해
박정훈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차별을훔치는남자들 #박정훈 #한겨레출판 #하니포터 #하니포터12기

차별을 훔치는 남자들. 박정훈 지음. 한겨레출판. 2026.
_피해자의 자리와 억울함이라는 무기에 관해

페미니즘. 언젠가부터 조심스럽게 사용해야 하는 용어가 됐다. 왜 그렇게 됐을까 생각하면, 결국 혐오였다. 남자아이들과 페미니즘과 관련한 책을 읽고 이야기를 하면서 충분히 그 문제의식을 확인하고 관점을 세워 태도를 분명히 할 수 있을 정도로, 대화도 토론도 원활히 이루어지고 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 페미니즘 관련 책을 읽자고 하는 것 자체가 극단적인 거부와 반발을 일으키게 되는 요소가 되기 시작했다. 어디부터 잘못된 것인지 감도 잡지 못한 채 늘 추천도서목록을 작성할 때면 멈칫하게 된다. 과연 이 책을 읽자고 해도 될까. 과연 아이들은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생각할 수 있는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을까. 그런 마음의 준비를 내가 시켜줘야하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하지만, 아직까지는 혼자 힘으로는 부딪히고 어려운 벽을 앞에 둔 느낌인 게 사실이다. 쉽게 담이 낮아질 것 같지도 않고 서서히 사라질 것을 기대하기에도, 지금은 회의적이다.

최근 각 언론사에서는 '10대 극우' 현상과 이를 뒷받침하는 안티 페미니즘에 주목하고 있다. "극우적 세계관이 이미 '주류'가 됐다"거나, "10대남 현상'이라 불릴 만한 극우화 흐름이 확인됐다"라고 진단하고 있다.(28쪽)

이미 정치권에서 그리고 언론에서, 많은 대중매체와 예능에서 이와 관련한 분위기를 형성하고 있다. 어느 누구도 쉽게 그 문화 안에서 빠져나가 다른 목소리를 내기 쉽지 않도록, 공고히 만들어내고 있는 탄탄한 사회적 분위기가 있다. 특히 아이들과 청소년들은 무방비상태에서 많은 매체가 쏟아내는 얘기들을 거르지않고 흡수하는 중이고, 그 영향력이 생각보다 무척 크다. 이미 10대 아이들에게서 정치적 발언이 쉽게 나오는 것도 예사, 거침없이 비난을 공개적으로 쏟아내는 것도 아무렇지 않은 때가 되었다. 당연히 페미니즘에 대한 이야기도 그 안에 포함이다. 남녀차별적 언행에도 주변을 둘러보지 않는다. 바로 옆에 여자 아이가 있어도 게의치 않고 말한다. 그것도 너무 당당하게. 어디에서부터 어떻게 말을 꺼내야 좋을지 감도 잡지 못할 정도로 그런 언행에 주변 아이들은 동조하고 받아들이고 말이다. 생각보다 공동의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또래집단 내 차별적 언행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심각하다. 이런 이야기는 하려고 마음만 먹으면 한도 끝도 없다.

부모들이 자신의 아이를 이준석처럼 키우고 싶을 거라는, 자신이 롤모델이 될 수 있다는 생각부터가 당황스러웠다. '자아가 비대하다'는 표현을 잘 쓰고 싶진 않지만, 그 말밖에는 떠오르지 않았다.(114쪽)
그리고 그는 자신의 성공을 이끌어준 '평범한 가정에서 자라난 사람이 성공하는 사다리'를 지키겠다고 말한다.(115쪽)

평범함의 정의를 달리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혹은 겸손함이라고 포장하는 것이거나. 보통 그 이상의 엘리트적 경험을 할 수 있었던 자신의 환경과 배경, 부모로부터 노력 없이 얻을 수 있었던 수많은 기회와 겪지 않고 고민하지 않아도 됐던 수많은 사회적 문제 앞에서 이토록 당당히 평범을 말할 수 있다는 것이 놀라울 뿐이다. 한번도 자신의 처지 그 다음은 생각해볼 적도, 혹은 생각해볼 가치도 없다는 가치관을 갖고 있음을 내놓게 본인 스스로 밝히면서도 부끄러운 줄 모르고 있다는 것을 진짜 모르는 것일까. 본인이 똑똑하다고 하는 말인 것 같지만, 똑똑하다는 말의 뜻을 잘못 해석하고 있는 것 같다.

"남성도 힘든 게 있지"라고 하는데, 맞는 이야기다. 하지만 그건 성별 고정관념에 의해 남성에게 가해지는 사회적 압박 때문이고, 오히려 페미니즘을 추구해야 하는 이유가 된다. 힘들고 억울하면 여성에서 분노를 표출하는 게 아니라, 지금의 성불평등 구조를 바꾸는 데 함께 나서야 한다.(123쪽)
하지만 앞서 말했듯 한국 사회는 개인의 혼란과 실패에 대해서 구조적 원인을 숨기고, 개인의 탓으로 돌려왔다. 게다가 '불편하면 자세를 고쳐 앉아'라고 말하며 누군가의 분노에도 멀리서 비웃음을 보내는 이들은, 여전히 정치적으로 강력한 힘을 발휘하고 있다.(215쪽)

결국은 힘과 권력의 문제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그리고 힘과 권력을 쥐고 있는 자가 누구인가에 따라 달라진다는 생각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자신의 힘을 발휘하려 하고 또 그 힘을 지키기 위해 끊임없이 상대를 공격하고 힐난해야하는 구조의 무한반복. 그러지 않고서야 지금의 상황을 설명할 길이 없으며, 그러다보니 해결 지점을 찾기도 무척 힘들다.

어쩌면 작가가 보여주고 싶었던 '믿을 만한 남자 동료 시민민의 모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경청하고, 이해하고, 공감하기. 어쩌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할 수 있다는 것.(62쪽)
상대방의 입장에 서는 일을 쉽게 포기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쉽진 않지만,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분명 '배제'와 '이해하지 않음'은 환대보다 편한 일이다.(273쪽)

사람에 대한 예의, 상대에 대한 배려와 공감. 어릴 때부터 수없이 들어온 우리 사회에서 무척 중요한 가치들일 것이다. 역지사지에 대해 비슷한 말을 아이들에게 해준 적이 있다. 정말 어려운 일이라고. 나는 나인데 다른 사람이 되어 보라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라고. 하지만 필요하기 때문에, 그럴만한 가치가 충분하기 때문에 노력해야 한다고.
가장 근본적이고 기본적인 부분에서부터 다시 이야기를 시작해야할 때인 것 같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탐욕스러운 돌봄 - 잘 키우려 할수록 나빠지는 불행에 대하여
신성아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탐욕스러운돌봄 #신성아 #한겨레출판 #하니포터 #하니포터12기

탐욕스러운 돌봄. 신성아 지음. 한겨레출판. 2026.

왜 우리 사회는 이 모양일까, 하는 생각에 내내 한숨을 푹푹 쉬며 이 책을 읽어나갔다. 읽으면 읽을수록, 각 주제들을 하나씩 확인해 나갈수록 우리 사회에 대한 환멸이 들 정도였다고 하면 너무 지나친 과장일까. 그 정도로 우리 사회에 대한 신뢰와 믿음이 사라지는 느낌을 받았다. 이런 사회에서 과연 나는 한 명의 시민으로서, 구성원으로서 제 역할을 다 하고 또 그 역할에 따른 책임을 다 하면서 살아갈 수 있을까 싶었다. 또 내 자녀를 이 사회에 내보내는 입장으로, 이런 사회에서 온전히 제 역량을 모두 발휘하며 살아갈 수 있을 거라고 자신있게 등 두들겨주며 응원할 수 있을까. 겉으로 드러나지 않지만 이면에 담겨있는 사회가 품고 있는 문제들을 어떤 방식으로 우리 아이들에게 설명해주고 또 알아나가도록 해야 할까. 머리가 복잡해지기도 했다.

타고난 운이 없는 사람들도 주눅 들지 않고 삶의 목표를 자유롭게 추구할 수 있는 사회, 재난이나 사고로 후천적인 장애를 얻어도, 병들고 나이 들어도, 성적 지향이 달라도 동등한 기회를 부여받고 존중받는 사회가 바로 롤스가 실패한 정의로운 사회다.(27쪽)

정의로운 사회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다. 그저 다른 건 몰라도 최소한의 인간에 대한 예의는 있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발생했던 여러 일들을 보면 우리 사회는 아직도 멀었다. 아직도 기득권을 내려놓지 않기 위해, 남들을 밟고 올라서기 위한 경쟁으로 그저 다른 이에 대한 무시, 차별, 혐오가 당연한 것처럼 여겨지고 있다. 어느 것 하나 마음껏 누구라도 마음껏 자신을 드러내보일 수 있는 사회적 시선과 태도는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늘 약자라 지칭하며 눈에 띄지 않도록 숨어 살기를 바라기만 할 뿐이다.

사유가 필요하다. 어른이 먼저 사유하고, 아이들에게도 사유하는 법을 알려주어야 한다. 과거를 돌아보고 다른 사람의 처지를 생각하며 다음 세대의 삶을 헤아릴 줄 아는 사람들이 합리적으로 소통할 때, 갈등을 해결하고 올바른 의사 결정을 내릴 수 있다.(70쪽)

정말 공감되는 말이다. 지금의 시대가 가장 부족한 것이 공감 능력이라고 생각한다. 공감하지 못하니 다른 처지를 살필 여력도 없고 그럴 마음도 없다. 그저 자신의 입장에서만 일방통행이다. 그러니 소통이 될 턱이 없다. 귀는 막고 자신의 목소리만 높이려 든다. 어디에서도 이해받지 못하는 논리 아닌 억지로 우기기만 한다. 이런 광경을 지켜보고 있는 입장에서, 속이 터진다. 이 사회가 점점 현명해지는 진화의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데, 퇴화하고 있는 듯하다. 우리 사회를 떠받치고 있으며 절대 잃을 수 없는 소중한 가치를, 이를테면 정의, 존중, 배려, 공감 등의 가장 바탕이 되는 가치들이 온전히 제 힘을 잃지 않고 단단해질 수 있는 사회이기를 바라게 된다.

우리 역시 다른 이들과 어느 정도의 보편성을 공유하기 때문에 서로 간의 차이가 발생하는 것이지, 차이만 존재한다면 우리는 차이를 차이로 인식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차이를 이해한다는 것은 나와 우리를 잇는 유사성을 인정하는 동시에 내 안에 존재하는 타자성을 발견하는 것이다.(197쪽)

결국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이, 우리라는 존재에 대한 인식이지 않을까. 나로 사는 것이 아니고 또 너로 사는 것도 아닌, 우리로 살 수 있을 때, 제대로 된 우리 사회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이 책, 많은 생각과 질문을 하게 만드는 책이었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날씨와 인터뷰하는 법 - 기상전문기자의 예측불허 인생 예보기
김세현 지음 / 김영사 / 2026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날씨와인터뷰하는법 #김세현 #김영사 #일일드라마 #서평

날씨와 인터뷰하는 법. 김세현 기상전문기자. 김영사. 2026.
_기상전문기자의 예측불허 인생 예보기

지금의 시대는 기후환경에 대한 이야기를 안 할 수 없는 때이다. 언제 어느새 어떤 예기치 못한 상황이 벌어질이 아무도 알 수 없는 때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지구가 원래 나아가려던 방향을 완전히 잃고 어느 순간 지금까지 버텨오던 모든 노력에서 힘을 뺄지 알 수 없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지금까지 용케도 잘 버텨주고 있는 지구인데, 얼마나 더 버텨줄 수 있을지는 알 수 없으니 말이다. 이건 내가 비전문가로서 드는 생각일 수 있다. 그렇다면, 전문가는 예측 가능하고 또 우리가 어떻게 해야할 지를 잘 알고 있을까. 언제나 어느 순간에나 우리가 궁금한 지점에 대해 척척 대답을 해낼 수 있을까. '전문'이란 단어가 만들어내는 편견일 수 있다. '전문'이라면 당연히 그 정도여야 한다는 사람들의 기대와 선이 있고, 이를 충족해줘야하는 것이 전문가인 것이다.
아무리 전문가여도 알 수 없는 지점이 있을 수밖에 없다. 이건 당연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것도 미래에 일어날 일에 대해서, 앞으로 어떤 상황이 어떻게 벌어질 것인가에 대해서 어느 누가 확인할 수 있을까. '예측하며 읽기'에 대해 아이들과 이야기할 때도 항상 강조하는 지점이 있다. 예측, 예보, 예상 등, 이런 단어들이 갖고 있는 공통점은, 사실이 아니라는 것. 그래서 틀릴 수 있고 틀렸다고 해서 문제이거나 잘못이 아니라는 것. 그러니 마음껏 예측해도 된다는 것. 그런 자유로움을 마음껏 누리라고 말해준다. 이때 당연히 예보도 포함이다.
다만, 비전문가의 예측와 전문가의 예측은 달라야 한다. 구름이 잔뜩 덮은 하늘을 보며 비전문가는 '비가 오려나'한다면, 전문가는 비가 왜 오게 되고 또 얼마나 오게 될 것인가를 납득 가능하도록 설명해줄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우린 그런 이야기를 듣기 위해 날씨 기사를 보는 것이고 말이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이 예측이므로, 틀릴 수도 있다는 마음으로 기사를 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다시 지금의 기후환경에 대한 이야기로 돌아가보면, 지금 이대로 진행될 때의 우리 지구의 기후가 어떤 상황으로까지 가게 될 것인가를 예측하여 우리에게 알려주어야하지 않을까. 당장 내일의 날씨가 궁금하기도 하지만 더 궁금한 것은 내년, 내후년, 그리고 10년 뒤와 50년, 100년 뒤의 지구의 기후는 어떻게 될 것인가도 무척 궁금하기도 때문이다. 이건 단순히 누군가가 만들어 준 사실적 데이터만으로 지금의 상황이 이렇다는 이야기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래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대책과 대안, 해결방안까지 모색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 전문가의 몫이란 생각이 든다. 그래야 그런 이야기를 들으며 우리도 함께 생각하고 모색해볼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기자님이 지금의 위치에까지 오게 된 분명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저 단순히 교수님의 추천 때문도 아닐 것이고, 어쩌다보니 여기까지, 하는 식도 아닐 것이다. 애초에 기상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있던 학창시절부터 석사, 박사 학위를 받게 될 때까지의 마음이 분명 일정 부분 작용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마음을 통해 지금의 위치에서 해내야할 과제와 역할이 분명할 것이다. 사회 초년생 시절의 신입의 실수와 흑역사 역시도 어떤 자세로 임해야할 것인가에 대해 몸소 배우게 되었던 소중한 경험일 것이다. 그렇다면, 이젠 그만큼의 책임감을 갖고 임해야하지 않을까 싶다. 어느 자리는 한 자리에서 오랜 시간 '전문'으로 내 몫의 일을 해내고 있을 때에는,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에 대한 그만큼의 역할을 수행해내야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기자님이 앞으로도 어떤 태도로 우리의 기후과 기상을 다루어나갈 것인가에 관심이 갈 수밖에 없다.
대신, 지금의 기후 상태의 변화와 위험을 도파민으로 다루지는 않았으면 좋겠다는 개인적인 생각이 든다. 개인적으로 환경 문제에 진심인 입장에서, 지금 지구와 인간의 관계와 문제를 웃으면서 이야기하기에는 이미 무척 심각한 상황이라는 것을 오래 전부터 인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조금은 불편하게 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상능력자 - 제12회 교보문고 스토리대상 우수상 수상작 책깃노블
함설기 지음 / 책깃 / 2026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상능력자 #함설기 #창비교육 #소설추천 #서평

이상능력자. 함설기 장편소설. 창비교육. 2026.

'이상'에는 참 많은 뜻의 단어가 있다. 하지만 아마도 이 소설에서 사용한 '이상'은 '평소와는 다른 상태'의 '이상(異狀)'일 것 같다. '생각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가장 완전하다고 여겨지는 상태'의 '이상(理想)'도 있는데 말이다.

처음에 누가 이상능력자라고 부르기 시작했을까. 누가 저들은 이상한 능력을 가졌다고, 정상이 아닌 사람들이라고 낙인찍기 시작했을까.(286쪽)

여전히 사회는 자신과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한다. 혹여라도 그런 다름이 자신에게 피해를 주거나 불편함을 알려줄 것이라는 선입견에서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때론 그런 다름이 자신보다 더 나은 대우를 받고 사회적으로 성공(?)을 담보하게 된다고 한다면 바로 공격의 대상으로 여기기도 한다. 김은태가 채수안에게 했던 것처럼.

"왜 피해가 없어? 자격도 없는 것들이 그 대학 출신이란 이유로 사회에서 혜택은 다 누리고 살 텐데! 공정한 경쟁을 뚫고 대학 가려는 애들만 병신 되는 거지."(31쪽)

'공정한 경쟁'이란 말이 불편하게 다가오는 건 나만의 느낌은 아닐 것이다. 과연 이 사회에서 어떤 경우에라도 '공정'이란 단어를 사용할 수 있기는 할까, 확신할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심지어 나의 삶도 지금의 자리에 오기까지 과연 공정했다고 할 수 있나, 하면 대답까지 시간이 걸린다. 우리 사회는 이미 많은 부분 한쪽으로 기울어져있는 것이 사실이니까. 그러다가도 필요에 따라 써먹기는 참 잘 써먹는다. 한쪽으로는 욕하고 또 한쪽으로는 이용하고. 이때,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는 순전히 개인의 선택에 달려 있다. 42와 15의 판단과 선택이 달랐던 것처럼.

초능력자가 된 이후 나는 변했다. 초능력 자체가 날 바꾸지는 않았다. 내가 초능력자를 바라보는 시각을 바꿨기 때문에, 변화를 받아들이려고 노력했기 때문에 내 인생이 바뀌었다.(287쪽)

'초능력'은 '현대 과학으로는 합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초자연적(자연을 초월한 그 어떤 존재가 힘에 의한 것)인 능력'을 말한다. 여기서 질문이 생긴다. 과연, 이상능력자와 초능력자는 어떻게 같고 다른 걸까? 초능력이라고 하면 마블 영화의 인물들처럼 신기하면서도 놀라운 세계를 만들 수 있는 능력자로 비춰진다. 하지만 이상능력이라고 하면 뭔가 정상이 아닌 별종의 이미지가 더 먼저 떠오르게 된다. 사람은 같은데, 능력도 같은데, 부르는 말에 따라 생각이 달라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들을 대하는 자세 역시나 사람에 따라 다르고 어떤 방식으로 접근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답을 얻게 되는 것이다.
결국, 어떤 시선으로 바라볼 것인가, 이다. 능력자인 본인도 그렇고, 이런 능력자를 바라보는 이들도 그렇다. 어떤 경우든 이 사회를 구성하고 지탱해 나가는 것은 이렇고 저런 모든 이들 전체이다. 그런 전체가 당연히 단일하고 똑같을 수는 없다. 그렇다면 그렇지 않은 다채로운 모습을 서로 어떻게 감당하고 바라볼 것인가에 앞으로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 결정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미 수안은 결정했다. 그렇다면 우리도 수안을 어떤 눈으로 바라볼 것인가를 결정해야 한다. 물론, 이미 답은 정해져 있다. 그 답을 우리가 말하기만 하면 될 뿐.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쿨투라 CULTURA 2026.2 - Vol.140, 배우 안성기
작가 편집부 지음 / 작가 / 2026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쿨투라 #배우안성기 #작가미디어 #서평단 #서평

쿨투라 Vol.140 2026 02

배우 안성기
한 시대를 풍미했던 배우들이 하나둘 우리 곁을 떠나고 있다. 그럴 때마다 참 생각이 많아진다. 어린 시절부터 마치 당연한 듯 브라운관이나 스크린을 통해 늘 보던 인물들을 다시 볼 수 없게 된다는 게 잘 믿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배우들이 남기고 간 영상 안에서는 늘 언제나 같은 모습으로 남아있게 될 테니 그것이 조금은 위안이 되기는 하지만, 이제 더 이상의 모습을 볼 수 없다는 사실은 우리 마음을 무척 허전하게 만든다. 우리의 시대가 저물어가는 듯한 느낌도 들어 마음이 허전해지기도 한다.
배우 안성기는 사람 안성기였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화면 속에서 많은 대중들에게 비춰지던 모습이 자신의 모습과 다르지 않았던 배우이면서 사람인 안성기. 사람의 얼굴은 그 사람이 어떻게 살아왔는가가 고스란히 남게 된다고 하는데,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보여주었던 웃는 얼굴의 안성기는 그런 자신의 삶의 있는 그대로 보여주었던 모습이란 생각이 들었다. 투병 중에 보여주었던 모습과 마음도 고스란히 그가 어떤 삶을 살아왔고 또 어떤 마음으로 모두를 대하고 했는지를 잘 알 수 있게 해주었다. 그래서 영정사진 속 안성기마저도 사람들에게 안성기라는 사람은 이런 사람이었어, 하고 보여주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우리가 안성기, 하면 떠올릴 수 있는 너무도 당연한 모습. 그래, 안성기는 이런 얼굴이었지, 이런 웃음을 통해 우리에게 이런 느낌을 주는 배우였지, 그래서 안성기라는 배우가 얼마나 우리의 시대와 삶에서 많은 부분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었는지를 여실히 잘 보여주고 있다는 느낌. 지금이라도 이 웃는 얼굴의 모습 그대로 여전히 화면 속에서 울고 웃고 그 다채로운 모습을 보여줄 것 같은 착각이 생기게 만드는 얼굴이었다.
안성기란 배우가 걸어온 영화의 길을 가만히 읽어나가며 든 생각은, 그가 얼마나 영화에 진심이었나 하는 것이다. 어쩌면 그랬기 때문에 더욱 안성기의 모습을 많은 곳에서 볼 수 있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각 영화 안에서의 존재감은 장난 아니었고 말이다. 지금 머릿속으로 안성기라는 배우를 떠올려봐도 많은 영화의 장면들이 스쳐 지나가고, 그런 영화들이 한결같이 배우 안성기를 각인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이건 영화에 안성기가 나오는 순간, 안성기의 영화가 되기 때문일 것이다. 많은 감독들이 안성기와 함께 영화 작업을 했던 이유도 그런 것일테고 말이다. 왜 안성기여야만 했는지를 관객인 대중들도 익히 너무 잘 알게 되고 말이다.
한국 영화를 생각하고 내가 살았던 시대의 영화를 더듬어보면, 늘 안성기는 곳곳에 존재하고 있었다는 느낌이다. 마치 기본값처럼 설정되어 있는 배우라는 느낌. 언제나 그곳에 있고 또 그래야만 할 것 같은 배우인 것이다. 그래서 배우 안성기를 떠나보내기가 더 아쉽고 안타깝고 슬픈 것이다.

영화는 현실을 반영하기도 하지만, 거꾸로 현실을 구성하기도 한다. 대중들의 집단무의식을 반영해야 하는 대중 문화이기 때문에 영화는 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생각과 삶의 태도, 관습 등을 영화 속에 반영하지 않을 수 없는데, 뒷날 그런 영화를 보면서 사람들은 영화가 만들어진 그 시대를 파악하기도 한다.이렇게 됨으로써 영화는 시대의 반영물이면서 동시에 시대의 구성물이 되는 것이다. 이런 전제를 안고 1980년대의 한국 영화를 보면, 하나의 사실은 명확해진다. 안성기는 1980년대를 반영하는 얼굴이자 그 시대를 구성하는 얼굴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안성기 개인의 얼굴이 아니라 그가 출연해 흥행한 영화에서의 스타 페르소나인 것은 당연하다.(72쪽)

안성기를 떠나보내면서 더욱 아쉬운 이유가 바로 이게 아닐까 싶다. 우리가 살아낸 시대를 온몸으로 보여주었던 배우가 사라지는 것에 대한, 그래서 한 명의 사람을 보내는 것이 아니라 한 시대를 떠나보낸다는 느낌이 들어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