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을 훔치는 남자들 - 피해자의 자리와 억울함이라는 무기에 관해
박정훈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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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을 훔치는 남자들. 박정훈 지음. 한겨레출판. 2026.
_피해자의 자리와 억울함이라는 무기에 관해

페미니즘. 언젠가부터 조심스럽게 사용해야 하는 용어가 됐다. 왜 그렇게 됐을까 생각하면, 결국 혐오였다. 남자아이들과 페미니즘과 관련한 책을 읽고 이야기를 하면서 충분히 그 문제의식을 확인하고 관점을 세워 태도를 분명히 할 수 있을 정도로, 대화도 토론도 원활히 이루어지고 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 페미니즘 관련 책을 읽자고 하는 것 자체가 극단적인 거부와 반발을 일으키게 되는 요소가 되기 시작했다. 어디부터 잘못된 것인지 감도 잡지 못한 채 늘 추천도서목록을 작성할 때면 멈칫하게 된다. 과연 이 책을 읽자고 해도 될까. 과연 아이들은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생각할 수 있는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을까. 그런 마음의 준비를 내가 시켜줘야하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하지만, 아직까지는 혼자 힘으로는 부딪히고 어려운 벽을 앞에 둔 느낌인 게 사실이다. 쉽게 담이 낮아질 것 같지도 않고 서서히 사라질 것을 기대하기에도, 지금은 회의적이다.

최근 각 언론사에서는 '10대 극우' 현상과 이를 뒷받침하는 안티 페미니즘에 주목하고 있다. "극우적 세계관이 이미 '주류'가 됐다"거나, "10대남 현상'이라 불릴 만한 극우화 흐름이 확인됐다"라고 진단하고 있다.(28쪽)

이미 정치권에서 그리고 언론에서, 많은 대중매체와 예능에서 이와 관련한 분위기를 형성하고 있다. 어느 누구도 쉽게 그 문화 안에서 빠져나가 다른 목소리를 내기 쉽지 않도록, 공고히 만들어내고 있는 탄탄한 사회적 분위기가 있다. 특히 아이들과 청소년들은 무방비상태에서 많은 매체가 쏟아내는 얘기들을 거르지않고 흡수하는 중이고, 그 영향력이 생각보다 무척 크다. 이미 10대 아이들에게서 정치적 발언이 쉽게 나오는 것도 예사, 거침없이 비난을 공개적으로 쏟아내는 것도 아무렇지 않은 때가 되었다. 당연히 페미니즘에 대한 이야기도 그 안에 포함이다. 남녀차별적 언행에도 주변을 둘러보지 않는다. 바로 옆에 여자 아이가 있어도 게의치 않고 말한다. 그것도 너무 당당하게. 어디에서부터 어떻게 말을 꺼내야 좋을지 감도 잡지 못할 정도로 그런 언행에 주변 아이들은 동조하고 받아들이고 말이다. 생각보다 공동의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또래집단 내 차별적 언행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심각하다. 이런 이야기는 하려고 마음만 먹으면 한도 끝도 없다.

부모들이 자신의 아이를 이준석처럼 키우고 싶을 거라는, 자신이 롤모델이 될 수 있다는 생각부터가 당황스러웠다. '자아가 비대하다'는 표현을 잘 쓰고 싶진 않지만, 그 말밖에는 떠오르지 않았다.(114쪽)
그리고 그는 자신의 성공을 이끌어준 '평범한 가정에서 자라난 사람이 성공하는 사다리'를 지키겠다고 말한다.(115쪽)

평범함의 정의를 달리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혹은 겸손함이라고 포장하는 것이거나. 보통 그 이상의 엘리트적 경험을 할 수 있었던 자신의 환경과 배경, 부모로부터 노력 없이 얻을 수 있었던 수많은 기회와 겪지 않고 고민하지 않아도 됐던 수많은 사회적 문제 앞에서 이토록 당당히 평범을 말할 수 있다는 것이 놀라울 뿐이다. 한번도 자신의 처지 그 다음은 생각해볼 적도, 혹은 생각해볼 가치도 없다는 가치관을 갖고 있음을 내놓게 본인 스스로 밝히면서도 부끄러운 줄 모르고 있다는 것을 진짜 모르는 것일까. 본인이 똑똑하다고 하는 말인 것 같지만, 똑똑하다는 말의 뜻을 잘못 해석하고 있는 것 같다.

"남성도 힘든 게 있지"라고 하는데, 맞는 이야기다. 하지만 그건 성별 고정관념에 의해 남성에게 가해지는 사회적 압박 때문이고, 오히려 페미니즘을 추구해야 하는 이유가 된다. 힘들고 억울하면 여성에서 분노를 표출하는 게 아니라, 지금의 성불평등 구조를 바꾸는 데 함께 나서야 한다.(123쪽)
하지만 앞서 말했듯 한국 사회는 개인의 혼란과 실패에 대해서 구조적 원인을 숨기고, 개인의 탓으로 돌려왔다. 게다가 '불편하면 자세를 고쳐 앉아'라고 말하며 누군가의 분노에도 멀리서 비웃음을 보내는 이들은, 여전히 정치적으로 강력한 힘을 발휘하고 있다.(215쪽)

결국은 힘과 권력의 문제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그리고 힘과 권력을 쥐고 있는 자가 누구인가에 따라 달라진다는 생각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자신의 힘을 발휘하려 하고 또 그 힘을 지키기 위해 끊임없이 상대를 공격하고 힐난해야하는 구조의 무한반복. 그러지 않고서야 지금의 상황을 설명할 길이 없으며, 그러다보니 해결 지점을 찾기도 무척 힘들다.

어쩌면 작가가 보여주고 싶었던 '믿을 만한 남자 동료 시민민의 모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경청하고, 이해하고, 공감하기. 어쩌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할 수 있다는 것.(62쪽)
상대방의 입장에 서는 일을 쉽게 포기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쉽진 않지만,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분명 '배제'와 '이해하지 않음'은 환대보다 편한 일이다.(273쪽)

사람에 대한 예의, 상대에 대한 배려와 공감. 어릴 때부터 수없이 들어온 우리 사회에서 무척 중요한 가치들일 것이다. 역지사지에 대해 비슷한 말을 아이들에게 해준 적이 있다. 정말 어려운 일이라고. 나는 나인데 다른 사람이 되어 보라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라고. 하지만 필요하기 때문에, 그럴만한 가치가 충분하기 때문에 노력해야 한다고.
가장 근본적이고 기본적인 부분에서부터 다시 이야기를 시작해야할 때인 것 같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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