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이는 조각난 세계를 삽니다 - 돌봄부터 자립까지, 정신질환자와 그 가족이 함께 사는 법
윤서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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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는 여전히 선을 긋는 사회구나 하는 씁쓸함이 밀려왔다. 이름을 붙이고 그 이름 안에 사람을 구분하고, 그 경계의 선을 넘지 못하도록 가두는 사회. 그런 사회가 내가 살고 있는 사회라는 현실이 안타깝게만 느껴졌다. 그리고 이런 현실에서 늘 힘이 빠지는 건, 그런 사회를 바꾸고 변화시키기에 개인은 무척 약하다는 것이다. 소수, 개인, 그리고 당사자는 힘을 잃고 사회의 거대한 구조 안에 끼워진 채 살 수밖에 없다는 자조적인 기분까지 들었다. 우린 어떤 사회의 구성원이 되기를 바라고 있는가, 우리가 원하는 사회의 모습을 구성원이 스스로 만들어낼 수 있도록 하려면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까.

물리적으로 환자를 돌볼 사람이 가족밖에 없다면, 가족은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사적 구조에만 기대는 돌봄의 지속 가능하지 않다. 마을이, 사회가 조현병 환자의 돌봄을 나누지 않는다면 뉴스에서 접할 수 있는 심각한 사건이 만연해지는 현실이 될 것이다. 가족이 환자를 '독박 돌봄'하라는 요구는 버티다가 쓰러지라는 말과 다름없다.(76쪽)

'독박 돌봄'이란 말이 눈이 확 들어왔다. 아. 우리 사회는 이렇게 돌봄을 개인의 책임으로 오롯이 돌리는 사회였다. 어떤 돌봄이어도 마찬가지였다. '돌봄'이란 이름이 붙은 모든 것이 모두 개인이 감당할 수 있는 범위까지만 가능한 것이다. 나무 씨의 가족이 여러 번 이사를 다니고 병원을 옳기고 또 주변 사람들로부터 곱지 않은 시선을 받고 따돌림을 당했던 그 과정에서 우리 사회가 함께 돌보았던 지점은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았다. 어떤 제도고 어떤 체계도 이들의 삶이 깊이 관여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특히 저자가 내내 떨치지 못했던 자책의 심정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개인의 책임으로 돌리는 사회에서 특히 어린 자녀에 대한 모든 책임은 부모에게 있다고, 사회는 몰아붙이니까.

조현병 당사자에게 일상을 유지하는 것은 약물치료 다음으로 중요하다.(...) '괜찮은 하루였다. 오늘도 나는 괜찮았다'라는 스스로의 평가가 당사자의 자존감을 유지하게 한다.(170쪽)

그런데 이것이 과연 당사자에게만 중요한 걸까. 병의 유무와 상관없이 누구나 자신의 자리에서 자존감을 유지하고 '괜찮았다'고 스스로에게 말할 수 있는 것은 매우 필요한 마음이지 않을까. 나를 저 문장에 대입시켜 생각해본다. 나에게도 해당되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우리가 병의 이름만을 보고 그 이름 안에 존재하는 진짜 사람은 잊고 있는 것은 아닐지 생각해봐야 한다. 병과 상관없이, 일상적인 삶을 유지하고 살아내는 것은 우리 모두에게 똑같이 적용되는 삶의 숙제이니까. 나도 여전히 나의 하루가 무사히 잘 유지되고 괜찮았다고 말하는 일상을 살아내고 싶다. 그리고 그 안에서 나 스스로 안정감을 얻고 싶다. 그러니 꼭 나무 씨만의 이야기는 아닐 듯, 조현병을 앓고 있다는 것이 현혹될 이유가 없다. 이건, 그저, 삶일 뿐이니까.
결국, 다른 시선으로 다른 삶이라고 미리 제단하는 편견에서 벗어나야 한다. 쉽게 선을 긋고 구분하려는 못된 습관을 버려야 한다. 각자는 각자만의 다른 특성과 성격을 가지고 살아간다. 조현병도 그런 특성 중에 하나라는 인식이 중요할 것 같다. 태화샘솟는집에서 하듯, 다른 사람이 갖고 있지 않은 특성 한 가지를 더 가지고 있다는 태도는, 다름을 인식하고 인정하는 그 시작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나무의 치료에 있어서 어쩌면 '자존감'이 가장 효과적이었는지도 모른다.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 그리고 사람들의 존중과 지지를 수용하는 감각이 증상을 완홯는 데 가장 중요한 치료제가 아니었을까.(65쪽)

있는 그대로 존중하고 지지하기. 누구와도 비교할 필요 없는, 온전한 한 사람으로 늘 응원해주기. 친구가 되어주고 또 함께 자신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시간을 함께 갖기. 이 책을 통해 많은 걸 배우게 된다.

나무 씨가 '일하고 사랑하는 것'을 잃지 않고 잘 살아내기를 마음으로 응원한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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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를슈타인 백작 동화는 내 친구 58
필립 풀먼 지음, 황부용 그림, 이지원 옮김 / 논장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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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를슈타인백작 #필립풀먼 #황부용 #이지원 #논장 #서평단 #서평 #책추천

읽는 내내 이 이야기가 어떤 결말을 맞게 될 지 조마조마하고 떨렸다. 그런데, 와! 한 마디로, 카를슈타인 백작 만세다! 무섭고 섬뜩하며 소름돋는 장면들과 이야기가 전개되기도 했다. 이럴 수가 있나 싶고 또 이래서는 안 되는데 싶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막스 카를슈타인 백작, 만세다! 다행이고 또 통쾌하다. 그만큼, 요 근래 읽은 이야기 중 긴장감이 최고였던 것 같다. 그러면서도 유쾌했으며 따뜻했다. 다른 것보다도 제일 이 이야기에서 마음에 드는 것은, 어떤 위험도 감수하고 무릅쓸 정도로 용감했다는 것이다. 바로, 우리의 힐디 말이다. 힐디의 용감함이 루시와 샬럿을 살리고 또 막스 카를슈타인 백작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준 것이다. 그러니 얼마나 다행인지. 그리고 얼마나 감격스러운지. 이처럼 이 이야기는 이런 모든 다양한 감정을 다 느낄 수 있도록 해주는 종합선물세트 같은 이야기였다.

하지만 가장 재미있는 이야기는 언제나, 산의 왕이며 사냥꾼의 악령, 자미엘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자미엘 이야기에는 반드시 거래와 쫓고 쫓김, 피에 물든 복수, 그리고 자미엘의 사냥감이 되어 눈 속에서 도망치는 공포에 질린 희생자가 나옵니다. 눈을 번뜩이고 침을 흘리며 희생자를 쫓는 사냥개들, 기괴한 웃음을 띤 해골들이 타고 가는 검은 말들, 그 맨 앞에서 이들을 이끄는, 칠흑 같은 어둠에 싸인 이글이글 타는 눈의 악령.(12쪽)

이렇게만 읽었을 때는 <카를슈타인 백작>이 진짜 자미엘에 대한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다 읽고 난 지금은 이 이야기가 자미엘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오히려 자미엘은 사람들의 진짜 모습과 속내를 드러낼 수 있도록 해주는 계기가 되었을 뿐, 오히려 자미엘 덕분에 무엇이 진실이고 어떤 속임수와 거짓과 악한 마음이 숨어 있는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서로가 얼마나 마음을 다해 돕고 사랑하는지 잘 보여주었다. 그리고나서 보니, 제목이 '자미엘'이 아니라 '카를슈타인 백작'이다. 아! 결국, 카를슈타인 백작과 막스 카를슈타인 백작을 중심으로 샤롯과 루시, 힐디 등 모든 이들의 이야기가 종합적으로 전개되는 이야기였던 것이다. 그리고 당연히, 이 이야기의 시작과 끝에 '카를슈타인 백작'이 있었다.

"그러니까 말이지, 이번 일에는 단 한 가지 답밖엔 없어, 스니블부르스트. 바로 내 조카들이 제물이 되면 되는 거지."(36쪽)

음흉하고 무서운 마음으로 다른 이들을 해치려는 마음을 쉽게 먹을 줄 아는 카를슈타인 백작. 자신의 아이와 명성을 위해서라면 기꺼이 다른 이들을 희생시키는 것에 주저함이 없는 끔찍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이로 인해 아주 작고 여리고 어린 아이들이 힘겨운 시간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를 동조하는 또 다른 어른들까지. 이들에게 인과응보는 당연해 보인다.

"카를슈타인 백작님이라니...... 잠깐만요, 만약 내가 카를슈타인 백작이라면, 저 아가씨들이 그러니까 내 친척이라는 말입니까?"(...)
"그렇다면 간단하네요. 둘은 고아원에 갈 필요가 없어요. 저랑 같이 살면 되니까요!"(268쪽)

상대적으로 나쁜 마음을 먹을 줄 모르고 또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에 조금은 서툴고 부족함이 있어도 기꺼이 온 힘을 다할 줄 아는 카를슈타인 백작. 이제야 마음이 놓이고 제대로 큰 소리로 웃을 수 있게 되었다. 역시, 어떤 마음을 먹는가에 따라 결과는 달라질 수밖에 없다.

이보다 더 완벽한 이야기가 또 있을까.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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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하나뿐인 인생그림책 40
나현정 지음 / 길벗어린이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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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하나뿐인 #나현정 #길벗어린이 #서포터즈 #서평 #그림책추천

애써 외면할 때가 있다. 스스로 인정하지 않으려 의연한 척할 때가 있다. 아무렇지 않고 또 누구도 필요 없이, 혼자로도 충분하다고 거듭 스스로에게 다짐하게 될 때가 있다. 누가 뭐라 하는 것도 아니고 또 누군가로부터 그래야한다고 강요받는 것도 아니다. 그저, 주변으로부터 혹은 다른 사람들로부터 관심과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혹 존재감이 없거나. 아마 고치가 그럴 것 같다.
그렇다고 괜찮은 것은 아니다. 괜찮아서, 외롭지 않아서 그러는 것이 아니다. 혼자 중얼거리는 고치는, 자신의 마음을 끊임없이 부정해야만 그나마 살 수 있기 때문에, 애쓰는 것이다. 바로, 고치 스스로 노력하는 것이다. 자기 스스로의 상황을 부정하려 노력해야만 하루를 보내고 또 잠을 잘 수 있기 때문에, 억지로라도 자신을 자신이 속이는 것이다.

'난 혼자가 좋아. 전혀... 외롭지 않아.'
이 말을 한 번, 두 번, 세 번... 백번 중얼거린 다음에야
잠이 오곤 했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더더욱, 혼자 떨어지려하고 또 숨으려고 한다.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도록 자신을 꽁꽁 감추어 고치 안에 자신을 말아 밀어넣어버리는 것이다. 그렇게라도 해야 보호받는 느낌을 받을 수 있으니까. 자신을 감싸줄 수 있는 유일한 통로가 될 수 있으니까. 그렇지만, 이 모든 것은 가짜다. 거짓이고 또 전혀 따뜻하지 않다. 몸 따뜻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마음까지도 차가운 기운이 가시질 않는다. 그렇다고 따스함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더 따스함을 간절히 원하고 또 위로받고 사랑받고 싶다.

하지만, 사랑받는 것이 어떤 것인지조차 모른다. 당연히 어떻게 하는 것이 사랑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사랑받아보지도 사랑해보지도 못했으니, 너무나 당연하다. 그래서 허둥대고 또 방황한다. 고민하고 또 답을 찾지 못한다. 이리저리 허둥대다 정작 사랑해야 할 시간, 사랑받을 시간을 놓쳐버릴 수도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는 것이 사랑일까. 사랑은 어때야 하는 걸까.
어렵게 생각할 것 없다. 그저 내 곁에 누군가가 나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주고 또 간절히 이름이 불리기를 기다릴 때, 곁에서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고 또 '오직 하나뿐인' 이름을 불러주면 되는 것이다. 수많은 존재 중에서도 나에게만 특별한, 소중한 '오직 하나뿐인' 존재가 있는 법이다. 그런 이의 존재를 알아채주는 것부터, 그런 존재의 소중함을 깨닫는 것부터 하면 된다.

'모든 별들이 다르게 빛난다고 했지. 이제 알겠어.
너는 오직 하나뿐인 내 별이야!'

너무 늦지 않으면 좋겠다. 나에게 '오직 하나뿐인' 별인 것을 알아채는 그 순간이. 그래서 그에게로 향하는 마음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말해줄 수 있는 그 때를 놓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사랑, 내 사랑!'

'내 사랑'이라 부를 수 있는 누군가에게 달려가게 되는 간절한 순간이 곧, 비로소 사랑을 알게 된 그 순간일 것이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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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내믹 코리아
정주식 외 지음 / 사계절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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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내믹코리아 #정주식 #강남규 #박권일 #신혜림 #은유 #이재훈 #장혜영 #사계절출판사 #서평단 #서평 #책추천

다이내믹 코리아. 엮은이_정주식/글쓴이_정주식, 강남규, 박권일, 신혜림, 은유, 이재훈, 장혜영. 사계절출판사. 2025.

이 책이 궁금했던 이유는, 진짜 제목을 참 잘 지었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요즘의 우리나라를 딱 한 마디로 표현하는 말을 찾았다고나 할까. 정말, 우리나라 참 '다이내믹'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그런 다이내믹한 이야기가 한 권에 모두 담겨 있었다. 우리가 뉴스 혹은 기사의 한 부분으로 3~5분 읽고 넘어가는 지점을, 이들은 (좋은 의미로) '꾸역꾸역'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그 지점이 마음에 들었다. 물고 늘어지기, 어떻게 해서든 내 생각을 기여코 입 밖으로 내뱉기,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또 내 생각 다시 가다듬기, 그래서 함께 문제의 또 다른 문제를 찾아내고 그 문제를 또 더 많은 생각으로 확장해 나가는 방법을 찾아 '꾸역꾸역' 찾아 나간 것이다. 그것이 바로 '토론'.

"토론의 즐거움(토즐)을 시작하겠습니다."

이 말을 시작으로 늘 토론이 시작된다. 그러면 읽는 나도 그날의 토론 자리에 함께 앉아있는 기분으로 읽기 시작한다. 그 자리에서 이야기를 들으면 나는 어떤 생각을 가다듬었을까, 어떤 이야기를 보태고 또 그 다음 어떤 생각으로 넘어가며 이야기를 쫓아갔을까 생각하면서. 예를 들면,

중요한 것은 결국 애를 낳든 안 낳든 한 사람이 살든 여러 사람이 살든 개개인 시민들이 행복해야 한다는 점이에요. 출산은 나중 일이에요. 출산율에 초점을 맞추면 맞출수록 계속 과녁에서 빗나갈 겁니다.('인구 문제를 과장함으로써 은폐되는 것들' 중_146쪽)

언젠가 출산율을 지역별로 통계를 내서 제시한 것을 본 적이 있었다. 각 지역별로 얼만큼의 아이를 낳는 지를 보여주는 것. 마치 각 지역에서 생산되는 물건의 생산량을 보여주듯이. 지역별로 보여줘서 얻게되는 정보는 무엇일까. 어느 지역 여성은 아이를 잘 낳고, 어느 지역은 못 낳고? 일차원적이면서도 무척 기분 나쁜 제시라는 생각을 했었다. 출산의 문제를 여성의 문제로만 국한지어 이야기하는 것도 시대착오적 발상이다. 지금이 어느 시대인데 여성을 아이 낳는 기계 정도로 보고, 여전히 출산한 여성에서 애국했다는 말을 서슴치 않고 말하는지, 이해되지 않는다. 그런 면에서, 이들이 말하는 접근이 옳은 지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누구나 행복을 추구하며 살고, 결국 아이를 낳는 것이 행복한 삶이 된다면 아무리 낳지 말라고 말려도 낳을 것이다. 낳고 싶은 나라를 만들어 주는 것이 우선이지 출산했으니 돈 줄게, 마치 아이를 돈의 가치로만 계산하려는 것이 문제인 것이다. 그러니 그 많은 예산을 쏟아부어도 해결이 안 되지. 그리고, 전 지구적으로 봤을 때 인간의 폭발적인 증가로 지구의 생태계에 심한 변화가 일어났다고 본다면, 어느 정도 적정 인구수를 맞춰줘도 좋지 않을까, 생각해봤다. 어쩌면 출산율을 걱정하는 이유가 지금의 세대들이 자신의 삶을 걱정해서 하는 말인 것은 아닐까. 사회적인 돌봄이 필요한 시기에 자신을 도와줄 누군가의 지원이 사라져 삶이 힘들어질 것을 걱정해서 말이다. 어찌보면 참, 이기적인 발상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혼자 해봤다. 그리고 누군가와 이런 생각을 주고받으면 더 좋겠다는 생각.

이 책이 이런 식이다. 각 꼭지들을 읽어 나가며, 좀처럼 진도가 나가질 않았다. 한 꼭지가 끝나면 그날의 논제에 대해 곰곰이 생각하고 나의 관점과 태도는 어느 쪽일지를 생각해보게 됐다. 나의 생각을 덧붙여 이야기를 이어나가다보면 쉽게 다음 꼭지를 넘어가 책을 읽을 수가 없었다. 하나의 생각에서 또 다른 생각으로 펼쳐지는 흐름을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무척 흥미로웠다. 이것이 진정, 토론의 즐거움이지 싶었다. 그러다가 문득문득 웃음이 나는 지점이 있었다.

"도둑맞기 전에는 집중력을 갖고 있었을까?"
"그래서 카리나는 몇 살부터 연애하면 될까?"
"노벨상을 받았는데 마을 잔치 정도는 열어도 되지 않을까?"

각 꼭지의 끝, '토론이 끝나고 남는 질문들' 부분에서의 흥미로운 질문들이 눈에 들어왔다. 이 질문들 뭐지, 싶으면서도 또 이런 질문들이 실제로 쉽게 툭 건넬 수 있는 질문들이지 않을까. 이런 질문을 시작으로 각 논제에 대한 토론을 다시 시작해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질문은 무척 중요하다. 어떤 질문을 던지느냐에 따라 답이 달라지니까. 이 토론 중에도 토론의 진행자가 다시 질문을 정리해서 던지며 토론의 흐름을 이끄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었다. 이 책을 읽으며 배우게 되는 지점 중 하나. 어떤 토론의 자세, 그리고 어떻게 토론에서 질문하고 답하고, 그 답을 또 다른 질문으로 확장할 것인가였다.

이 책, 적극 추천이다. 슬쩍 지나치지 말고 제대로 짚고 넘어가볼 이야기가 가득이었다. 활용할 방법도 많을 것 같다. 각 논제들 중 관심가는 이야기를 골라 읽어봐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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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음붕대스타킹 반올림 62
김하은 지음 / 바람의아이들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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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음붕대스타킹 #김하은 #바람의아이들 #서평단 #서평 #책추천

이 소설을 읽는 내내 나도 몸이 차가워지고 추워졌다. 손과 발이 시렵고 따뜻한 기운을 찾을 수가 없었다. 몸에 한기가 들며 얼굴에는 인상이 써졌다. 쉽게 표정을 풀 수가 없었다. 한숨이 깊어졌고 두통이 생겼다. 어둠이 오는 것이 두렵고 또 그런 어두운 길을 걸어야 한다는 것이 무서웠다. 아직도 이런 사회에 살고 있구나, 여전한 사회의 어둠 속을 걸어야 하는구나. 몰입하지 않으려해도 몰입이 됐다. 이런 이야기가 더는 나오지 않았으면 좋겠다.

"니는 아무 일도 없었다. 알긋나?"
통화가 끝났다. 엄마가 한 마지막 말이 전화기를 통해 흘러나와 얼음처럼 차가운 붕대로 변해 내 몸을 감았다. 침대가 얼음장 같았다. 얇은 이불로 몸을 둘둘 말아 한기를 피하려 했지만 소용없었다.(...) 소름이 끼치도록 추웠다.(40쪽)

아무 일 없었던 거라고 우기면 되는 문제일까. 결코. 애초에 이런 일이 벌어지지 말아야겠지만, 그 일을 쉬쉬 감추고 숨기는 것만이 모든 것을 원래대로 되돌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아닐 것이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말은 오히려 더 큰 상처와 고통으로 다가오게 될 것이고, 선혜의 경우 엄마의 그 말이 되려 얼음 붕대가 되어 선혜를 추운 겨울에서 벗어나지 못하도록 가로막았다.

"너, 힘들었겠다."
그날 이후 내가 겪은 일들을 아는 사람들이 그랬다. 아무 일도 없었다고, 일찍 다니라고, 힘내라고, 잘 살라고, 미안하다고, 안 됐다고, 용감하다고 했다. 그러나 내가 정말 듣고 싶었던 말은 달랐다. 바로 이 말, 힘들었겠다며 내 마음을 들여다보는 이 말이 듣고 싶었다.(210쪽)

선혜는 몸을 다쳤다. 하지만 몸의 상처는 회복될 수 있다. 문제는 마음을 더 많이 다쳤다는 거다. 마음이 다치면 그 상처는 오래 간다. 어쩌면 평생 회복되지 못한 채 안고 가야할 수도 있다. 그런 마음의 상처를 최대한 더 다치지 않도록, 조금이나마 아물 수 있도록 할 수 있는 방법이 필요하다. 선혜에게는 '힘들었겠다'는,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는 그 말이 필요했던 거다. 겉으로 보이지 않는다고 없는 것이 아니다. 드러나지 않는 두려움과 아픔이 오히려 마음을 통해 몸을 더 힘들게 할 수도 있다. 두꺼운 검은 스타킹으로 자신의 몸을 감싸지 않고서는 견디기 어려운 추위는, 결국 선혜가 끌어안고 있던 상처와 아픔이 몸으로 나타나는 통증이 되는 것이다.

성추행 혹은 성폭행과 관련해 우리 사회는 여전히, 여자들에게 가혹하기만 한 사회다. 여자에게 가해지는 폭력이 마치 남자들이 휘둘러도 되는 권력이라고 생각하고, 심지어는 여자에게 그 탓을 돌리기까지 하는 사회는 이제 없어져야 하지 않을까. 여전히 누군가가 가하는 폭력에 무방비로 당하는 건 늘 약자의 몫이고, 그런 약자를 힘으로 내리 누르는 사회는 얼마나 낮은 사회인지. 이 소설을 읽으며 화를 참을 수가 없다. 아직도 안전하지 않은 사회에서 우리 아이들이 또 내가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 슬프고 마음이 아팠다.

햇볕이 뜨거웠다. 나는 두 팔을 벌려 그 더위를 꽉 껴안았다.(216쪽)

조금씩 따뜻한 온기를 느낄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 다행이었다. 하지만 완전히 안심이 되는 건 아니다. 선혜는 그 시간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없고, 다만 그 시간을 스스로 어떻게 이겨낼 수 있는지를 조금씩 배우고 알아나가고 있을 뿐이니까. 그저, 선혜가 다시 그 추위 속으로 들어가지 않을 수 있도록 잘 지켜봐주고 응원해주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은, 따뜻한 햇살 안으로 선혜와 함께 들어가주는 것이지 않을까.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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