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음붕대스타킹 반올림 62
김하은 지음 / 바람의아이들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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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을 읽는 내내 나도 몸이 차가워지고 추워졌다. 손과 발이 시렵고 따뜻한 기운을 찾을 수가 없었다. 몸에 한기가 들며 얼굴에는 인상이 써졌다. 쉽게 표정을 풀 수가 없었다. 한숨이 깊어졌고 두통이 생겼다. 어둠이 오는 것이 두렵고 또 그런 어두운 길을 걸어야 한다는 것이 무서웠다. 아직도 이런 사회에 살고 있구나, 여전한 사회의 어둠 속을 걸어야 하는구나. 몰입하지 않으려해도 몰입이 됐다. 이런 이야기가 더는 나오지 않았으면 좋겠다.

"니는 아무 일도 없었다. 알긋나?"
통화가 끝났다. 엄마가 한 마지막 말이 전화기를 통해 흘러나와 얼음처럼 차가운 붕대로 변해 내 몸을 감았다. 침대가 얼음장 같았다. 얇은 이불로 몸을 둘둘 말아 한기를 피하려 했지만 소용없었다.(...) 소름이 끼치도록 추웠다.(40쪽)

아무 일 없었던 거라고 우기면 되는 문제일까. 결코. 애초에 이런 일이 벌어지지 말아야겠지만, 그 일을 쉬쉬 감추고 숨기는 것만이 모든 것을 원래대로 되돌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아닐 것이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말은 오히려 더 큰 상처와 고통으로 다가오게 될 것이고, 선혜의 경우 엄마의 그 말이 되려 얼음 붕대가 되어 선혜를 추운 겨울에서 벗어나지 못하도록 가로막았다.

"너, 힘들었겠다."
그날 이후 내가 겪은 일들을 아는 사람들이 그랬다. 아무 일도 없었다고, 일찍 다니라고, 힘내라고, 잘 살라고, 미안하다고, 안 됐다고, 용감하다고 했다. 그러나 내가 정말 듣고 싶었던 말은 달랐다. 바로 이 말, 힘들었겠다며 내 마음을 들여다보는 이 말이 듣고 싶었다.(210쪽)

선혜는 몸을 다쳤다. 하지만 몸의 상처는 회복될 수 있다. 문제는 마음을 더 많이 다쳤다는 거다. 마음이 다치면 그 상처는 오래 간다. 어쩌면 평생 회복되지 못한 채 안고 가야할 수도 있다. 그런 마음의 상처를 최대한 더 다치지 않도록, 조금이나마 아물 수 있도록 할 수 있는 방법이 필요하다. 선혜에게는 '힘들었겠다'는,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는 그 말이 필요했던 거다. 겉으로 보이지 않는다고 없는 것이 아니다. 드러나지 않는 두려움과 아픔이 오히려 마음을 통해 몸을 더 힘들게 할 수도 있다. 두꺼운 검은 스타킹으로 자신의 몸을 감싸지 않고서는 견디기 어려운 추위는, 결국 선혜가 끌어안고 있던 상처와 아픔이 몸으로 나타나는 통증이 되는 것이다.

성추행 혹은 성폭행과 관련해 우리 사회는 여전히, 여자들에게 가혹하기만 한 사회다. 여자에게 가해지는 폭력이 마치 남자들이 휘둘러도 되는 권력이라고 생각하고, 심지어는 여자에게 그 탓을 돌리기까지 하는 사회는 이제 없어져야 하지 않을까. 여전히 누군가가 가하는 폭력에 무방비로 당하는 건 늘 약자의 몫이고, 그런 약자를 힘으로 내리 누르는 사회는 얼마나 낮은 사회인지. 이 소설을 읽으며 화를 참을 수가 없다. 아직도 안전하지 않은 사회에서 우리 아이들이 또 내가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 슬프고 마음이 아팠다.

햇볕이 뜨거웠다. 나는 두 팔을 벌려 그 더위를 꽉 껴안았다.(216쪽)

조금씩 따뜻한 온기를 느낄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 다행이었다. 하지만 완전히 안심이 되는 건 아니다. 선혜는 그 시간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없고, 다만 그 시간을 스스로 어떻게 이겨낼 수 있는지를 조금씩 배우고 알아나가고 있을 뿐이니까. 그저, 선혜가 다시 그 추위 속으로 들어가지 않을 수 있도록 잘 지켜봐주고 응원해주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은, 따뜻한 햇살 안으로 선혜와 함께 들어가주는 것이지 않을까.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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