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픈 엑시트 - 불평등의 미래, 케이지에서 빠져나오기
이철승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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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픈엑시트 #이철승 #문학과지성사 #서평단 #서평 #책추천

오픈 엑시트. 이철승 지음. 문학과지성사. 2025.
_불평등의 미래, 케이지에서 빠져나오기

책을 처음 보면서 생각했다. <오픈 엑시트>, 과연 무슨 의미일까? 엑시트, 하면 한번에 무엇을 뜻하는지 머릿속에 잘 떠오르지 않는다. 오히려, 비상구의 달려나가는 사람 그림이 더 먼저 떠오르기도 한다. 말 그래도라면 비상구의 문을 열리는 의미인 것 같은데, 과연 이게 무슨 의미일까 궁금했다. 저자는 탈출이라고 했다. 소셜 케이지에서 탈출하는 것. 하나의 집단이나 기업에서 나가서 다른 집단이나 기업으로 들어가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자유로운 이동이 가능한, 한 직장이 평생 직장이 되어 매여 있지 않아도 되는 것 말이다. 탈출이 자유로운 사회여야 한다는 뜻. 하지만, 우리 한국 사회는? 오래 고민하지 않아도 답은 금방 할 수 있었다.

우리는 영세 김밥 가게 노동자에게 미않하지 않듯, 연봉 30만 불을 받다 구글에서 정리 해고된 노동자들에게도 미않하지 않아도 된다. 세상은 그런 것이다.(145쪽)

저 문장들 중 '세상은 그런 것이다'란 문장을 저자는 의도적으로 반복 사용했다. 우리 사회, 세상은 그러니까. 세상이 그러니 이런 세상에서 우리가 어쩌겠는가, 그냥 그렇구나, 하는 수밖에. 뭐, 이런 느낌이라고나 할까. 이미 사회는 구조적으로 어쩔 수 없는 불평등의 체계를 갖추고 있다. 이 세상이 그렇고, 정치적으로 이렇고, 문화적으로 저렇고 하니, 이런 사회에서는 어떤 엑시트도 쉽지 않은 것이다. 특히 인공지능이 일의 많은 부분에 이미 들어와있는 이상, 점점 조직에서 나가야하는 상황은 늘어날 것이고, 다시 들어갈 기회는 사라지게 될 것이다. 사회의 경직성이 이동을 가로막을 것이다. 그럼에도,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세상은 그런 것이니까.
스킬셋을 높이고, 이를 활용할 수 있는 다양한 기업이 늘어나고, 그 기업에 대한 엑시트의 기회가 획장되면, 자연스레 숙련된 직업인의 이동의 자유는 확대될 것이다. 당연하다. 그리고 점점 경력이 쌓이고 노련함이 높아지면, 그런 일의 능률을 통해 사람을 판단할 수도 있어진다. 학벌이나 인간관계, 평판을 따지며 개인의 능력을 판단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이 지점에서 문득, 생각이 들었다. 아, 나도 평판에 따른 판별을 당하고 있는 직장인이구나, 하는 생각. 나도 사람들이 어떻게 나에 대해 어떻게 평가되는지를 평가받고 있으며 내 직장에서 순위로 매겨지고 있다. 지금껏 그런 평가가 어쩌면 더 공정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다시 들여다보니 너무도 주관적인 판단이 나를 평가하고 있었다. 아, 뭔가 뒷통수를 한 대 맞은 듯한 느낌이었다.

남들이 바라보는 나의 일은 평생 직업이라며 부러움을 받는 일이다. 당연히 나도 이런 평생 보장받는 직업을 갖게 되어 안심하게 된 점이 분명 있었다. 하지만 과연, 평생 한 직장에 속해있다는 것이 안정감을 주는 것일까, 혹은 탈출의 기회를 스스로 걷어차버린 것일까. 그 말도 맞다. 점점 나이를 먹으며, 50대가 되면 이동의 가능성은 거의 제로에 가깝다. 나이 50에 어떤 다른 직종이나 일로 이동할 수 있을 것인가. 우리 사회에서 가능한 기회는 제한적이다. 그러니, 점점 나이를 먹고 연륜이 쌓이고 기능이 높아져도(물론, 나이를 먹고 시간이 지난다고 모두 기능까지 높아진다는 건 다 맞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그에 따른 평가를 제대로 받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니 점점 위축될 수밖에. 그리고 이런 상황이 한국 사회를 형성하게 될 수밖에.

이 책은 나의 경우를 집어넣어 생각해보고 되면서, 미처 알아채지 못했던 지점들에서 충격을 받았다. 우리 사회가 만들어놓은 케이지에서 나는 지금껏 한 발짝도 나갈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 한국이라는 나라가 어떤 위상을 갖고 미래 사회를 준비하고 대처해야할 것인가에 대해 고민해야할 때라는 생각도 했다. 저자는 "나는 당신에게 어떻게 탈출에 성공할 수 있을지를 이야기하지는 않을 것이다(나도 모른다)."(15쪽_'프롤로그' 중)라고 했다. 이 책을 다 읽고 다시 이 문장을 만나니, 탈출하고 싶어지게 만들어놓고 방법은 안 가르쳐주며 궁금증을 유발하고 있구나, 싶었다. 뭐, 어쩌겠는가. 탈출 방법은 독자가 다시 찾아나갈 수밖에. 모르던 사실과 인지하지 못했던 부분을 알아책 해준 것만으로도 고마운 책이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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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림 라운드 마음이 자라는 나무 45
설재인 지음 / 푸른숲주니어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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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림라운드 #설재인 #푸른숲주니어 #드림단 #서평단 #서평 #책추천

드림 라운드. 설재인 장편소설. 푸른숲주니어. 2025.

이 책을 읽으며, 나는 꿈이 뭐지? 하고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보게 됐다. 문정호처럼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꿈은 있을 수밖에 없으니까. 꼭 무엇이 되고 싶다는 직업이 아니어도, 무언가를 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무언가 하고 싶은 일이 있다는 건 꿈이 확실하니까. 그런 면에서라면 난 확실히 꿈이 있다. 그리고 그 꿈을 향해 지금도 조금씩 준비를 해 나가고 있는 중이고.
온해나 윤아의 가출이 꿈을 찾아가는 좋은 방법은 아니었지만, 그만큼 스스로 고민하고 치열하게 자신의 꿈을 향해 나아가는 시간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 자신의 삶 안에서 웃을 수 있지 않았나 싶다. 또 어떤 면에서는 꼭 이 방법이 철없는 사춘기 청소년의 어린 마음으로 보기에는 또 그렇지 않은 점도 분명히 있어 보이기도 한다. 그리고 목사님도 가출을 하셨으니, 아이 어른 상관없이 자신의 꿈을 향해 달려가는 건 어쩌면 사람이라면 당연히 갖게 되는 본능일 수도 있을 것 같다. 어려서 문제가 아니라, 자신의 꿈을 외면당했을 때의 상처가 그만큼 크다는 것. 그래서 꿈은 소중한 것이다.

모두가 시들었다고 확신하며 내버리는 꿈의 더미에 남은 생명력을 알아볼 수 있는 기술은, 시든 꿈을 가져 본 사람만이 쓸 수 있는 게 아닐까. 한없이 바닥을 향해 휘어지는 줄기와 버석하게 끊어지는 잎을 차마 버리지 못하고, 어찌할 바를 몰라 가슴 한편에 묻어 둔 사람만이 아직 죽지 않은 오래된 씨앗을 발견할 수 있는 게 아닐까./그렇다면 그 시듦은 결과가 아니라, 힘든 훈련의 과정이라고 보아야 하지 않나. 시듦을 통과했기에 '겸손'하고 '성실'하며 무엇보다 자신이 꿈꾸는 바를 '사랑'한다면, 그렇다면 언젠가는 나라의 순간 또한 경험하게 되지 않을까.(142-143쪽)

이 문장들이 너무 좋아서 이 부분을 여러 번 반복해서 읽었다. 과연 지금을 살고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 꿈을 이루며 살고 있는지, 혹은 꿈을 여전히 간직고 있는지 묻는다면 과연 어떤 답을 들을 수 있을까. 어쩌면 다 큰 어른들은 꿈, 그게 뭐냐며 먹고 살기 바쁜데 꿈은 무슨, 이라고 시큰둥해할 수도 있다. 어린 아이들도 꿈, 아직 없는데요, 모르겠는데요, 그거 꼭 있어야 해요, 정도로 대충 대답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많은 사람들 중 단 한 사람이라도, 자신의 꿈을 고이고이 간직하며 너무도 소중하고 귀해서 쉽게 말조차 꺼낼 수 없을 정도로 가슴에 끌어안고 있는 이가 있을 것이고, 그런 이는 꿈이란 한 글자 단어만으로도 심장이 두근거리고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어쩔 줄 몰라하며 그 마음을 감추지 못하고 내내 티를 내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런 사람이라면, 언젠가는 자신의 씨앗을 발견하고 싹을 틔워낼 때까지 그 생명을 잘 간직하고 있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사랑'일 것이다.
누구나 방황의 시기는 있기 마련이다. 자신의 길을 찾아 가는 데 있어 잠시의 주저함이나 고민은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런 시기가 언제가 될 것인가는 정해져있지 않다고 생각한다. 어린 아이 시절에 일찌감치 겪을 수도, 혹은 한참을 자신의 길이라고 믿고 가다가 불쑥 새로운 길을 가고 싶어질 수도 있다. 어른이라서 그러지 말라는 법도 없고 또 아이니까 꼭 그래야 한다는 법도 없다. 언제나 되었든 자신의 마음이 움직인다면, 그 움직이는 마음을 잘 따라가는 것이 더 중요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의 마음의 소리에 제일 먼저 귀를 기울여야 한다. 윤아는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 지, 하고 싶은지 잘 알고 있는 아이였던 것 같다. 그래서 직진! 자신의 꿈을 향해 그대로 돌진해 갈 수 있었을 것이다. 온해에게는 시간이 조금 더 필요했다. 너무 오랜 시간 자신의 꿈이라고 생각했던 일에 진짜 맞는지를 한번쯤은 의심해봐야 했으니까. 그런 시간이 오히려 아빠에게도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벌어주기도 했다. 방법적으로 아빠에게 너무했다는 것만 뺀다면, 자신을 들여다볼 시간을 벌었던 것이라 봐줄 수 있다. 목사의 교회에서 혼자 있는 시간이 분명 스스로를 들여다보는 성찰의 시간이 됐을 테니까. 목사님 문정호의 자살 시도는 아무리 생각해보고 잘못된 판단이지 않았나. 천사가 없었다면 자신의 꿈을 위해 한번 시도조차 해보지도 못했을 것이다. 다행이면서도 다시는 시도하지 말아야 할 방법이었다. 다행인 건,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령이 되어서도 내내, 자신의 꿈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것이 한편으로는 짠했다. 그 정도라면 차라리, 그런 간절함으로 뭐라도 해볼 생각을 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지만, 이들이 얼만 간 힘들어했던 것은 자신의 꿈에 대한 좌절, 미인정, 외부의 압력이 무척 컸기 때문이다. 가만히 내버려둬야 할 것을 주변에서 너무도 이런저런 강요와 억지를 펼치고 있었다. 그런 감정들이 고스란히 당사자에게 미치고 그 모든 것을 가슴이 꼭꼭 담아두게 되니 얼마나 상처가 되었을까. 남들로부터 받는 인정이 얼마나 중요한 지 모른다. 누군가의 인정을 받는다는 건, 나의 꿈을 향해 계속 다가가도 된다는 허락으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앞을 향해 갈 수 있는 원동력이 되는 것이다. 그러니, 응원은 힘이다. 그런 힘은 이들은 서로가 서로에게 해주고 있었고, 그 힘을 바탕으로 쓰러졌다가도 다시 일어서 달려갈 수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다행이다. 이들이 함께 있을 수 있어서. 서로를 도울 힘을 내주어서. 다시 이들이 꿈을 향해 나갈 수 있어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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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도감 - 제25회 문학동네어린이문학상 수상작 보름달문고 96
최현진 지음, 모루토리 그림 / 문학동네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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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도감 #최현진 #문학동네어린이문학상수상작 #문학동네 #서평단 #서평 #책추천

나비도감. 최현진 글/모루토리 그림. 문학동네. 2025.

처음부터 슬픈 이야기로 시작하는 소설이었다. 헉, 하고 한순간 숨이 멈춰지는 듯한 느낌이었다. 이 일을 어쩌면 좋을까 싶었다. 이런 일들이 여전히 사라지지 않는 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할까 생각하게 만들었다. 이런 슬픔을 감당해야 하는 이들의 이야기여서 무척 슬펐고, 또 소중했다. 산이의 마음을 가만히 따라가다보면, 산이가 보여주고 있는 마음이 얼마나 소중한 지 여실히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아무도 알려주지 않는다. 어떤 방법으로 마음을 그 다음 남은 시간들을 보내야 하는지 누구도 가르쳐주는 사람 없이, 남겨진 이들은 고스란히 그 상황과 감정을 감당해야 한다. 특히 어린 아이의 경우라면, 지금의 상황을 받아들이는 것조차 쉽지 않다. 어떻게 말해야 하고 또 행동해야 하며, 어떤 마음으로 어떤 시간을 보내는 것이 좋은지에 대해 스스로 찾아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 그저 슬퍼하고만 있을 수도 또 그렇다고 아무렇지 않은 척하기도, 모두 다 어렵기만 하다. 그러니, 어떻게 해서든 해낼 수 있는 것들을 찾아 해내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물론, 이럴 때 같이 해줄 수 있는 이들이 있다면 정말 다행이다. 분명 비슷한 마음을 보여줄 이들은 있다. 다만 티를 내야한다. 티를 내고 또 서로가 갖고 있는 감정을 다시 드러내볼 줄 알아야 한다. 그러면 어떻게 해볼 마음이 생길 수 있고 또 그런 기회를 가져볼 수도 있는 것이다.
산이가 메아리 누나를 위해 해줄 수 있는 것을 찾고 생각하며 행동으로 옮기기까지, 누나의 카우보이모자부터 시작해 그런 산이의 마음을 보듬어줄 수 있는 많이 이들이 곁에 있었다. 그것이 참 다행이었다. 아마 혼자서만 해야한다고 했다면, 산이가 혼자 해낼 수 있기까지 무척 오랜 시간이 필요했을 수 있다. 하지만 산이에게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는 않았다. 충분히 산이가 스스로 받아들이고 또 한 발 걸어나가도록 도움 줄 수 있을 정도의 시간이 산이에게 주어졌다. 그리고 그런 시간을 산이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그 시간들을 보냈다.

심장이 두근거렸다. 책가방에 달린 튜브 키링을 만졌다.
"괜찮아, 강산."
나는 혼잣말을 하면서 초록불로 바뀐 뒤 셋을 셌다.(150쪽)

다른 사람의 '괜찮아'라는 말보다 자신이 스스로에게 해주는 혼잣말을 '괜찮아'가 더 힘이 세다고 생각한다. 자신이 자신에게 힘을 보태기 위해 해주는 말로 느껴졌고, 그동안의 슬픔의 터널을 잠시 빠져나올 수 있는 주문처럼 느껴졌다. 이 주문의 힘은 산이에게는 더없이 중요하고도 값진 말이 된다. 둘이었다 하나가 된 이후 그 하나로서의 시간을 다시 단단하게 가져가겠다는 다짐으로도 들렸다.

물론, 여전히 산이는 슬픔과 아픔, 그리움과 외로움 속에 순간순간 빠질 것이다. 웃고 있지만 울고 싶은 순간도 문득문득 찾아올 것이다. 하지만 스스로 한 걸음, 또 한 걸음 내딛을 용기를 가진 산이에게는 더 이상 어렵기만 한 시간들은 아니다. 지금 마음 먹은 것처럼 어떤 순간이 다시 찾아와도, 제 스스로 자신에게 주문을 걸며 또 다시 극복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산이에게는 그런 힘이 생겼다. 처음 산이와 분명 달라졌다. 그래서, 이 이야기가 참 소중한 것이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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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블 포 투
에이모 토울스 지음, 김승욱 옮김 / 현대문학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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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블포투 #에이모토울스 #프리뷰북 #밀조업자 #서평단 #서평 #책추천

테이블 포 투. 에이모 토울스 소설/김승욱 옮김. 현대문학. 2025
_밀조업자

밀조업자라고 오해를 하는 사람, 그리고 그런 밀조업자란 오해를 받는 사람. 만약 이 둘 중 누구의 편을 들겠냐고 묻는다면, 오히려 첼로 연주에 감동받은 '나'의 편을 들겠다고 답할 것이다. 오해하지 않도록 남편을 사랑한다는 말을 빼놓지 않는 것도 마음에 들었다. 이건 사랑이 없어서 하는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 사랑과 상관없이 그저, 사람 간의 관계와 태도, 관점과 그 안에서의 가치 판단의 문제일 뿐. 그러니, 어떤 경우라도 지금 벌어지고 있는 상황은 당사자에 대한 사랑이 부족하거나 미워해서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리고, 내내 겉으로 말하지 못하게 되었지만, 그 한 순간 예술로부터 받은 감동과 위로는, 나도 함께 그 순간에 가보고 싶을 정도로 아름다웠다. 그런 아름다움을 알게 된 그 순간의 기쁨을 내내 간직하게 될 '나'의 벅찬 마음이 부럽기도 했다.

토미는 타인의 잘못은 열심히 지적하면서 정작 자신의 잘못은 눈감아주는, 혹은 알아채지도 못하는 사람이었다. 또한 아서 파인은 자신의 감상과 감정 안에 빠져 여타의 다른 규칙이나 질서를 무너뜨리는 사람이었다. 둘 다 각자의 잘못을 자신의 생각과 감정 안에서 합리화하고 있는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반성한다고는 하지만 과연 그 반성이 어디에서 오는 반성일지 의문이 생겼다. 우리가 말 그대로 반성을 한다면 자신의 행동에 대한 잘못을 스스로 알아챘을 경우에 이루어지는 것일 테지만, 지금 이 두 인물은 전혀 그렇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그저 각 상황에서 자신이 또 다른 잘못과 문제를 만드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만을 말하기 위한, 그런 의미 없는 반성이지 않을까.
이들의 이야기만으로라면 어쩌면 순조롭게 일이 마무리되었을 수도 있다. 한 순간의 에피소드처럼 지나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지 못하고 이 사건이 두고두고 오래도록 이들의 삶에 영향을 미치게 되는 순간이 있다. 바로 파인의 딸 메레디스가 이 사건에 대처하는 부분. 이 부분이 이 소설에서 가장 충격적이었다. 이유는, 그 딸이 만들어낸 말의 힘에 있다. 일종의 저주. 그 저주가 평생 한 사람을 따라다니게 된다는 것, 그 저주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하고 내내 괴로워하며 꽤 오랜 시간을 보내야 한다는 것. 무섭기까지 했다.

이 이야기는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갖고 있는 판단과 관점을 이야기하고 있는 소설이란 생각을 했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대하는 자세와 태도가 어떤 행동으로 이어질 수 있는가를 그래도 보여주는 듯했다. 또 어찌 보면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가하는 폭력을 이야기해주는 소설이란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 그 가해는 주로 말을 통해 나타나고, 그 말은 다시 더 크게 자기 자신에게 돌아오기도 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모든 상황에서 선의의 피해자는 없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이 소설 안에는 생각보다 더 적나라하고 지독한 사람들의 내면이 고스란히 담겨있다는 느낌도 들었다.

<밀조업자>라는 이 짧은 이야기만 읽었는데도 눈이 커졌다. 때론 안절부절 못하게 만들고 또 다른 생각이 끼어들지 못하게 만들었다. 토미가 생각보다 많은 이야기를 해줬고 그 이야기는 지금의 우리라고 딱히 다르지는 않은 것 같았다. 그리고 이런 부분들에 있어 어찌하면 좋을지에 대해서도 새삼 생각해보고 만들었다. 무척 흥미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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쿨투라 CULTURA 2025.06 - Vol.132, 아고라
작가 편집부 지음 / 작가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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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쿨투라 #월간문화전문지 #잡지 #도서출판작가 #아고라 #서평단 #서평 #책추천

월간 쿨투라 CULTURA. Vol.132(2025 06). 도서출판 작가.
_Culture & Art Magazine

이번호의 Theme는 '아고라'다. '아고라Agora'는 '고대 그리스의 도시 국가에서 시민들의 일상생활이 이루어지던 공공의 광장. 아크로폴리스가 종교와 정치의 중심지였다면, 이곳은 시민의 경제생활과 예술 활동이 이루어졌던 장소이다.' 그러니까 말 그대로 어떤 생활과 활동이든 모든 것이 가능했던 장소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이 장소는 모든 사람에게 열려있으며, 시민이라면(물론, 당시에는 이 시민에 여자는 빠져있었겠지만) 응당 자유롭게 이 공간을 차지할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우리나라의 일련의 상황을 더듬어보면, '광장'이 얼마나 소중하고 또 대단한 것인가를 익히 알 수 있다. 그리고 또 이 '아고라'가 얼마나 중요하고 꼭 필요한 것인가도 잘 알 수 있다. 어찌보면 우리나라의 민주주의의 역사의 한 부분을 차지하는 것 또한 이 광장의 역할이었다고 볼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광장이 없있다면 시민의 목소리가 하나로 모일 수도 없었을 것이고, 또한 그 목소리에 힘을 얻어 같은 생각의 방향을 추구해 나갈 수도 없었을 것이다.
물론, 요즘은 뭐든 온라인이 대세인 시대가 되기는 했다. 광장에 직접 나서는 대신 온라인을 통해 자신의 이야기를 마음껏 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심지어 AI가 그 모든 것을 대신하기도 하니까 말이다. 하지만 사람과 인공지능의 말조처 구분할 수 없는 수준이 된 지금, 과연 온라인에서의 '광장'이 기존에 이루어지고 있던 다양한 생활과 활동을 모두 담아낼 수 있는 수준일까는 깊이 생각해볼 문제이다. 여전히 우리 사회는 자신을 감춘 채 공격성만을 단련하고 있는 이들이 많으니까.
그리고 그 많은 말들이 거짓일 수 있다는 것에 신경을 곤두세우며 날카롭게 서로를 향한 칼날을 들이밀고 있기만 하다. 하지만, 이제 그 모든 것이 불필요할 것이다.

따라서, 이제 온라인 아고라에서 담화 참여자의 의식은, 사실 증명을 요구하는 것에서 담화 내용의 현실 가능성을 계산하는 것으로 변화하여야 한다.(...) 상대와 무관하게, 현상의 가능성만이 중요해진다.(...) 물론, 이 경우 유저 개개인의 직관적 통찰과 미디어 리터러시, 그리고 통계적 판단력이 매우 중요해질 것이다.(64-65쪽)

어찌보면 우리는 이미, 온라인 상에서의 담화가 사실에 기반하지 않을 수 있다는 전제를 만들어두고 받아들이는 중이다. AI가 만들어내는 많은 데이터도 의심이 기본이 되었다. 그렇다면, 이제 진실성을 갖고 공방을 펼치기보단, 그 다음 상황을 실현하기 위한 가치 판단이 더 중요해질 것이다. 평면적인 광장의 역할을 뛰어넘을 시기가 되었다는 뜻일 것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아고라'는 평평한 평지의 광장으로 남아있기를 바란다. 어느 때라도 누구든 주체적으로 시민으로서 활동 가능한 공간으로 자리하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이런 시민에 의해 대의 민주주의의 문제가 불식되어야 한다. 폭력이나 야만, 독단과 편향이 아닌 진리를 바탕한 소통의 장이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덧-
가만히 이 잡지를 들여다보다 생각났다. 어쩌면, 이 잡지가 광장과 같은 역할의 잡지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 다양한 분야의 이야기가 함께 어우러지며 서로 얽혀드는 이야기, 바로 소통의 장. 이 잡지가 그런 성격이지 않나 싶었다. 미술, 건축, 문학, 영화, 문화 등 각각 독립적인 예술적 지형을 형성하는 듯하면서도, 다시 각 목소리가 어우러지는 <쿨투라>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모든 것이 가능할 수 있는 열린 공간, 그 아로라에 잠시 빠져들었다 나왔다.

*출판사로부터 잡지를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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