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무죄 세계의 사랑법 - 범죄 너머에서 발견한 인간에 대한 낙관
정명원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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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무죄 세계의 사랑법. 정명원 지음. 한겨레출판. 2025.
_범죄 너머에서 발견한 인간에 대한 낙관

결국, 다 사람이 하는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마치 무소불위의 권력을 쥐고 있을 것 같은 검사의 일도, 결국은 다 사람의 삶을 근간에 두고 일어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어찌 그렇지 않겠나. 결국, 법이라는 것도 다 사람이 사람 사는 데 필요해서 만든 것들이니 말이다. 그러니, 어떤 것도 사람을 빼고는 생각할 수 없는 것이 당연할 것이다. 그리고 그런 사람을 염두에 둔다면, 어떤 법도 사람의 삶을 들여다보지 않고서는 납득될 수 없는 것이 사실인 것이고 말이다.

의사로 일할 때는 환자가 하는 말을 의심하지 않아요. 의심할 필요가 없어요. 의사는 환자가 하는 말이 진실이라는 전제에서 그에 따른 처방을 내어놓는 사람이잖아요. 그런데 검사가 되어 보니 전혀 다른 거죠. 검사는 진술이 거짓말을 가능성을 항상 염두에 둬야 하잖아요.(108쪽)

이 말이 한참 오래 남았다. 아, 그렇구나 싶었다. 끊임없이 거짓말을 의심하고 상대의 말을 있는 그대로 듣지 못하고, 마치 색안경을 끼고 보듯 범죄의 혐의를 염두에 두고 사람을 대해야 한다는 건, 무척이나 힘들고도 고달픈 일이란 생각이 들었다. 과연 믿는다는 것이 어디까지 가능한 것일까. 진실과 거짓 사이에서 진실의 편을 들어주기를 바라게 되는 것이 우리가 생각하는 법의 세계이지만, 그 진실의 편이 되기 위해 어떤 노력과 고생이 수반되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쉽게 알지 못했던 것 같다.
임신한 상태에서 뱃속의 아기를 향해 '아가야, 엄마는 지금 좋은 세상을 위해 기꺼이 무서운 것을 보고 있는...'(171쪽)이라고 말하며 일을 계속 해나갈 수밖에 없었던 상황을 보면, 어떤 사명감이나 가치, 철학을 갖고 있지 않고서는 할 수 없는 일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뉴스로 잠깐 접하게 되는 수많은 사건 사고들을 매일 밤낮으로 들여다보며 대부분의 깨어있는 시간들을 그런 사건 사고와 관련된 생각으로 보내야 한다고 생각하면, 이 세계의 일도 그리 만만하지 않겠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이 책을 읽으며 저자의 검사로서의 소신이 어떤 지 조금은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만약 쉬운 길을 향해 가려고 했다면 지금의 자리에 오래 머물지 않았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 일을 일로만 끝내지 않고 끊임없이 자신의 일을 찾아가려는 듯한 느낌도 들었다. 굳이, 그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되는 생각들을, 또 굳이 일부러 찾아내서는 생각하고 또 생각하는 사람. 정명원이라는 사람은 그런 사람이지 않을까 싶었다.

누구 하나 집중해서 보여주는 사람이 없다 한들(대부분 자기 춤추느라 바쁘니까 남이 어떻게 추는지 보지 않는다) 전혀 문제 되지 않았다. 나는 <바위처럼>을 잘하고 싶었고 잘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마침내 무척 잘하게 되었다.(202쪽)

이 부분에서 웃었다. <바위처럼>은 그 당시 대학생활을 했던 사람이라면 모를 수 없는 곡이고, 나도 춤이라고 할 것인가는 잘 모르겠지만, 율동을 했던 기억이 있다. 그런데 이 부분에서 웃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공감대라기보다는, 이 부분에서 저자가 어떤 사람인지가 잘 보였기 때문이다. 누구에게 어떻게 보여지는지보다는, 자신이 어떻게 생각하고 움직이고자 하는가가 더 중요한 사람. 회식 자리에서 기여이 술을 따라주지 않았던, 그 뒤로도 그 술을 따라줄 것인가 아닌가로 심각하게 고민하고 사표까지 쓸 각오를 했던 사람이라면, 자신의 생각을 쉽사리 굽히지 않으려는 단단한 사람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또각 또각 또각, 또오각 또오각, 또각또각또각또각...
망설임과 깨달음, 주저함과 두려움, 그럼에도 용기를 내어 보는 순간들과 지겹고 힘들었던 날들, 신났던 일들, 아무렇지 않았던 날들의 감정을 담아 구두 소리를 울리며 나의 검찰 생활은 이어져왔다.(277쪽)

저 구두 소리를 내는 시간이 얼마나 많이 쌓여갔을까를 생각해보게 된다. 그리고 그 구두 소리의 순간들이 곧 자신이 가야할 길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도록 하는 힘이 되어주었을 것이다.
저자의 구두 소리를 떠올리며, 나는 어떤 구두 소리를 만들며 지금까지 살아왔나, 생각을 해보게 됐다. 분명 저자와 같은 많은 감정과 상황들을 지나오면서 만들어낸 구두 소리가 있을 것이다. 그 구두 소리가 어떻게 나라는 사람을 지금까지 이끌었을까의 답을 떠올려보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그동안 열심히 살았어, 하는 말 말고, 어떻게 열심히 살았는지에 대해 나를 돌아보게 만들었고, 진짜 열심히 살았는지도 생각해보고 되었다. 그러면서, 우리는 각자 자신이 하고 있는 일과 생활 안에서 각자의 구두 소리를 만들며 살고 있는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의 삶 속에 범죄라고 이름 붙은 것들을 찾아내고 분석하고 분류하고 그에 마땅한 답을 고르는 일을 한다. 세상의 모든 일이 그렇듯 이 일을 잘 해내려면 먼저 토양이 되는 사람들의 삶의 결을 이해해야 한다.(305쪽)

그러니까 말이다. 결국, 사람의 삶을 들여다보지 않고서는 할 수 없는 일. 우리 사람이 하는 일이 다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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