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개가 왔다
정이현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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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개가 왔다. 정이현 산문. 한겨레출판. 2025.

바둑이 루돌이에 대한 책. 이 책의 마지막에 이런 문구가 있다. '이 책의 저자 인세 일부는 전남 구례의 유기견 구조 단체인 산수유독의 활동을 위해 기부됩니다.' 마음까지 따뜻해지는 책이다. 이런 책의 인세가 아주 아주 많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생긴다. 그리고 이 책을 가만히 읽다보면, 나도? 라는 생각도 생긴다. 지금의 나는, 작가의 루돌이와의 삶 이전과 비슷하니까.
가만히 서 있는 개를 봐도 무섭다. 산책 중 만나기라도 하면 옆으로 비켜 조심히 걷는다. 혹여나 개의 심기를 건드이게 될까봐 걱정하며 눈치를 본다. 누군가의 집에 방문할 때 혹시라도 개가 있다면, 대놓고 티는 내지 않지만 긴장을 늦추지 않는다. 선뜻 내가 먼저 다가가는 경우는 없다. 쓰다듬기? 당연히 불가능이다. 왜 이런 내가 되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은 이런 상태다. 분명, 어린시절 개를 키우려는 시도도 있었고, 그런 개를 먼저 떠나보낸 기억도 있다. 그때는 아무렇지 않았는데, 지금은 왜 이리 많은 것에 겁쟁이가 됐을까. 헌데, 작가의 이야기를 읽다보니, 이런 겁쟁이에게도 희망은 있겠구나 싶다. 이런 마음이 들 정도라면, 이 책의 효과는 제대로다.

"루돌이는 내 거라고! 공식 서류가 증명하잖아!"(190쪽)

공식 서류가 증명한 작가의 개? 물론 그런 의도를 쓴 말은 아닐 것이다. 진짜 '엄마'가 되었다는 말을 하고 싶은 작가의 의도는 분명하니까. 다만 반려 동물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마다 늘 걸리는 지점 중 하나가, 주인? 누구 거? 이런 개념이다. 자식도 다르지 않다. 자기 자식이라고 부모의 것인 것처럼 마음대로 자식을 휘두르려는 점도 없지 않으니까. 그런 점에서라면 다 매한가지인 것 같다. 누구의 것이 어디있나. 다 각자의 존엄으로 존재할 뿐이지. 다만, 보호의 의무를 해야할 보호자의 역할이 있을 뿐이지.
그런 면에서, 작가는 착하고 참 좋은 보호자다. 식물도 동물도 생명으로 받아들일 줄 아는 마음부터, 어떤 생명이라도 끝까지 책임져야한다는 각오를 단단히 하고 '감당'할 줄 아니, 이런 보호자라면 기꺼이 마음을 놓아도 좋은 것이다. 게다가 모른다면 알기 위해 노력하고 공부하는 자세까지. 작가다우면서도 생명을 대하는 마음이 남다르구나 싶어 더 애정이 간다. 그래서 그런 엄마를 둔 루돌이가 참 행복하겠다는, 루돌이는 참 좋겠다는 마음이 든다.

나는 용기를 내어 축 처진 바둑이에게 손을 뻗었다. 머리를 손끝으로 한번 쓰다듬어보았다. 그것이 녀석에 대한 나의 첫 번째 직접적 접촉이었다. 바둑이의 꼬리가 천천히 흔들렸다. 낯선 장소에서 이 아이가 우리를 의지하고 있다는 것이 분명히 느껴졌다.(70쪽)

'접촉'이란 것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그냥 곁에 있다는 것과, 그런 곁에서 어떤 접촉을 통해 체온을 나눈다는 것은 큰 차이가 있을 것이다. 사람과 사람 간에도 마찬가지일테지만 반려 동물과의 관계 또한 다르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여러 번 환경의 변화를 겪고 또 낯선 이들과의 시작이 어려웠던 어린 개에게 있어서는 더욱 그랬을 것이다. 이때 먼저 손을 내밀어 준 작가의 마음을 바둑이도 알았던 것이 아닐까. 아직은 서로 서먹하고 어색하지만, 그래도 의지하고 기댈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은 바둑이도 알아챈 것이겠지. 쓰다듬는 작은 행위 안에서도 지켜주겠다는 마음의 신호가 전달된 것이 아닐까 싶다.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 개는 아무것도 감추지 않고 위장하지 않으니까. 그 절대 순수의 세계를 이제 나도 알게 되었다. 나의 '어린 개' 덕분에.(222쪽)

개는 감추지 않고 위장하지 않는다는 거다.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리고 이런 개의 모습은 작가가 내밀어 준 작은 손길에 대한 '어린 개'의 답일 것이다. 언제까지라도 그 손길에 있는 그대로 답하겠다는 마음의 표현이지 않을까 싶다. 마음 따뜻해지고 몽글몽글해지는 지점이다. 한편으로는 부럽기도 하다. 이런 표현을 대놓고 받고 있는 작가가 말이다. 이런 솔직한 표현을 대놓고 받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삶은 매순간 충분히 행복하지 않을까. 그래서 나도? 라는 생각이 들 정도인 것이다. 물론 산책길에서 마주치게 될 빌런만 없다면 말이다.

그동안 내가 개 없이 살아온 '그저 보통의 세계'는 사실 더없는 환대의 세계였음을 알았다. 많은 여성 견주가 이 비슷한 일들을 경험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폭력의 뒤끝은 길고 상처는 잘 아물지 않는다.(140-141쪽)

이 세상은 약자가 너무 많은 폭력에 무방비상태로 노출되어 있다. 이유도 모른 채 폭력을 당하는 경우도 흔하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로, 똑같이 폭력으로 대응할 수 없으니 더 억울하게 당할 수밖에. 폭력을 가하는 것이 힘이라는, 어리석은 생각을 갖고 있는 것일까. 어떤 것이 진짜 힘인지 모르는 이들의 생각을 바로잡아 줄 좋은 방법이 있었으면 좋겠다. 그들을 한방 먹여주고 싶은 마음도 살짝 드니 말이다.

그럼에도 아직은 이런 '어린 개'와 같은 존재가 더 많다. 그래서 여전히 아름답고 가슴 뭉클하며 안심할 수 있는 것이다.

-->그때 구해서 이런 날이 오네요.
봉사자의 댓글을 읽으며 눈물을 닦았다.(186쪽)

나도 같이 눈물을 닦았다. 이런 마음이 오래, 더 멀리 퍼져나갔으면 좋겠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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