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이름들의 낙원
허주은 지음, 유혜인 옮김 / 창비교육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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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반부를 읽었을 때는 다모 설이 파헤쳐나가는 사건 수사가 흥미롭기만 했다. 과연 진짜 범인은 누구고 어떤 이유에서 이런 일들을 벌이는 것인지, 그 과정을 설이 하나하나 집요하게 확인해나가는 과정이 긴장감을 주었다. 그래서 그 이야기의 흐름을 따라가며 사건이 어떻게 해결될 것인가에 초점을 맞추기만 했었다. 하지만 이 소설을 다 읽고나서는 다른 감정이 더 크게 자리잡았다. 바로, 어떤 삶을 살아야 할 것인가, 하는 것. 무엇이 살아가는 동력이 되어 작용하게 되는 것일까, 하는 생각. 그리고 어떤 것을 향해 우린 나아가야 할 것인가, 하는 고민.
우리는 모두 살아간다. 목적을 분명히 하며 살아가기도 하고 혹은 잘 모르겠는 삶에서 자신을 내맡기고 그저 나아가는 방향대로 최선을 다 하며 살아가기도 한다. 어느 쪽이 되었든, 우린 분명 살아가고 있으며, 그런 삶이 자연스레 다시 '나'가 된다. 내가 스스로 만들어나가는 '나'가 되기도 하고 때로는 일이 되어가는 방향과 그 과정에서의 영향이 고스란히 나의 삶이 되기도 한다. 이럴 때 '나'는 내가 살아가는 것일까 혹은 그저 '나'로 살가지는 것일까.

수사관은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타고난다면서, 바로 너처럼 탐구심 강하고 투지로 가득한 사람이 훌륭한 수사관이 된다고 하셨지.(475쪽)

꼬시는 말이라고 해도 이 말에 자신을 다시 들여보게 되는 건 어쩔 수 없을 것이다. 특히나 자신의 삶에 있어 어떤 확신을 갖고 행했다기 보단 이끌림에 의해 자신도 모르는 사이 어느 한 방향을 향하고 있게 된다면 더욱, 내가 가는 방향에 대해 나 자신에게 어떻게 힘을 줄 것인가를 잘 판단해야 한다. 그런 면에서 설은, 이미 자신의 어느 곳에 힘을 주어 앞으로 향해 나아가야 할 것인가를 스스로 찾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애초부터 그렇게 정해져 있었을 수도 있지만 다만, 쉽게 발견할 수 없었을 뿐. 하지만 그 발견을 위해 설은 스스로 자신을 사지로 내몰았고 그 과정에서 남들과 다른 쉽지 않은 선택과 행동을 했다. 그리고 그 결과들이 지금의 설이가 될 수 있도록 만들었다. 타고난 것이든 스스로 노력한 것이든, 분명한 건 설이는 어떤 경우에도 자신을 잃지 않으려 했다는 것만은 확실하다.

강씨 부인의 생사는 끝내 알아내지 못했다. 그녀가 이끌던 동정녀 공동체 회원들은 모두 배교를 거부해 감옥에서 맞아 죽거나 참수형, 교수형, 또는 사약을 받는 사사형에 처해졌다고 한다.(...) 하지만 실은 이 세상에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녀는 결코 비겁한 사람이 아니었으므로.(472쪽)

이 소설은 천주교 박해를 주요 소재로 삼고 있다. 이런 사건들을 마주할 때마다 드는 생각 또한, 어떠한 소신을 갖고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하고도 위험하고, 또 숭고한 것인가 하는 것이다. 나의 삶을 자신이 스스로 만들어나가고자 할 때 우리가 잃지 말아야하는 것이 무엇인가도 생각해보게 한다. 무엇을 받아들이고 또 어떤 것에 굴복하지 말아야하는 것인가를 우린 때때로 판단하게 되고, 그런 판단이 자신의 삶 전체를 흔들게 될 때에도 과연 우린 우리의 소신을 잃지 않을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생각.

가만히 보면, 이 소설의 인물들은 자신의 신념을 잃지 않기 위해 애쓰인 이들이었다. 자칫 자신이 믿는 가치가 가까운 이를 해치는 결과를 만들게 되더라도 감히 그 신념이 훼손되지 않는 쪽의 선택을 했던 것이다. 쉽게 기울지 않기 위해 또 흔들리지 않기 위해 애써 자신을 바로 세우려는 노력의 결과가 진실을 향해 나아갈 수 있는 힘을 만들어주었다는 생각이 든다. 어떤 것과도 타협하지 않음으로써 지켜낼 수 있었던 가치들이 분명 그 안에 담겨 있었다. 그래서 이 소설이 단순히 하나의 사건과 그 사건의 해결 과정만을 따라가는 것을 넘어서 어떻게 자신의 삶을 바로 세워나갈 것인가를 보여주는 이야기라는 생각이 든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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