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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시마 유키오의 편지교실
미시마 유키오 지음, 최혜수 옮김 / 현대문학 / 2024년 1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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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편지교실'이어서 편지를 쓰는 방법을 알려주는 교실의 이야기인가, 사람들에게 어떤 방식으로 편지를 써야 한다고 가르쳐주는 이야기일까, 짐작했었다. 애초에 작가의 이름이 제목에 들어있고, 그렇다면 작가가 직접 말하는 '편지교실'이겠지 싶었다. 처음, 등장인물 5명을 소개할 때까지만 해도 이 다섯 명의 편지를 들여다보고 얘기해주려나보다 싶었다. 그런데 책을 다 읽을 때까지도 편지는 이렇게 써야 한다 얘기는 없다. 그저, 다섯 명이 주고 받는 편지를 끊임없이 보여주고 있을 뿐. 그리고 그 다섯 명이 어떤 자기 식대로의 편지를 쓰고 전하며 또 어떤 이야기를 담고 있는지를 꾸준히 보여주고 있을 뿐이었다.
그런데, 이 방식이 참 독특하면서도 흥미를 끌었다. 처음에는 그저 신기하기도 하고 또 어떤 이야기를 어떻게 편지를 통해서만 이끌어나갈 수 있을까 궁금하기도 했지만, 점점 읽으면서는 그저 편지 형식의 낯섦을 넘어 다른 것들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그건 바로 다섯 인물들 간의 관계. 그리고 그 관계 안에 담겨 있는 감정이었다. 이 각 편지들에는 각 인물들이 담고자 하는 마음과 생각이 그대로 담겨 있었다. 어쩌면 내밀할 수도 비밀스러울 수도 있는 이야기들을 솔직하고 혹은 노골적으로 담아내고 있는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그러면서 다시 생각해보게 됐다. 편지라는 것이 어떤 형식일까에 대해서.
편지는 1:1의 대화다. 하지만 때에 따라서는 1:다수의 대화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이것 또한 일방적인 선택에 의해 그리 될 수도 있는 것이다. 누군가는 한 사람에게만 보이기 위해 쓴 편지이지만 그 사람이 다른 이에게 공개하면 더 이상 둘 사이의 이야기로만 끝나지 않게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유독, 이 인물들은 자신이 받은 편지를 다른 이에게 보이고 조언을 구한다). 그리고 또 하나, 편지는 시간을 들여 그 사람에게 전달이 되어야 하고, 또 다시 그 편지의 답을 받기 위해서는 그만큼의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급한 내용은 절대 편지를 통해 주고받을 수 없는 것이다. 정 급하면, 당장 달려가서 직접 말하는 편이 훨씬 편할 것이다. 그런데 이 지점이 재미있는 부분인 것이다. 편지 안에도 종종 표현되고 있기도 하지만, 직접 말하는 것과 편지로 써서 전달하는 것 사이에는 그 느낌과 전달의 효과가 다른 것이다. 직접 얼굴을 보며 전하는 마음이 아닌 글을 통해 전달되는 의미가 분명하고, 글이라는 것은 또 어찌보면 정돈된 표현이 가능할 수 있으므로 더욱 편지가 말보다 더 적합한 경우가 꽤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가라 미쓰코가 호노오 다케루에게 임신 사실을 말하게 되는 부분에서도 편지가 더 적합함을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이런 것만 보더라도 편지를 쓰고 주고받아야하는 이유는 충분해 보인다.
그리고 이 이야기가 더 인상적일 수 있었던 것은 그런 주고받은 편지만으로도 우리가 알아야 할 인물, 사건 등의 내용을 충분히 확인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야기의 후반부로 가면 갈수록 흥미진진해지고, 특히 편지는 모두가 1인칭 시점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직접 말하고 있다 보니, 각 인물의 진짜 속내를 있는 그대로 다 보여줄 수 있다는 면도 참 좋았다. 어떤 면에서는 마치 그들의 비밀 일기장, 둘만이 주고받는 교환일기를 몰래 훔쳐보는 재미와 비슷했다.
'글은 그 사람의 됨됨이를 보여준다'는 말은 실로 무시무시한 격언입니다.(21쪽)
사실 이런 얘기는 만나서 하면 좋겠지만, 충분히 생각한 끝에 편지로 쓰기로 했습니다. 당신에게 제 얼굴을 보이지 않고, 그리고 당신의 반응을 직접 보고 부들부들 떨 일 없이, 심지어는 당신의 귀에 대고 직접 말을 걸고 싶을 때는, 역시 편지 말고는 방법이 없는 것 같기 때문입니다.(173쪽)
세상 사람들은 모두 저마다의 목적을 향해 매진하고 있고 사람이 타인에게 관심을 가진다는 것은 상당히 예외적인 일임을 깨달았을 때, 비로소 당신이 쓰는 편지에는 생생한 힘이 갖추어지고 타인의 마음을 뒤흔드는 편지를 쓸 수 있게 될 것입니다.(268쪽)
편지는 타인에 대한 관심이 있어야만 가능한 것이다. 시간을 들이고 공을 들이고, 어떤 문장을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를 고르고 골라 그 한 사람에게 닿기 위한 행위가 편지쓰기인 것이다. 그런 면에서라면이 책이 편지교실인 게 맞는 것 같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