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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인생만사 답사기 - 유홍준 잡문집
유홍준 지음 / 창비 / 2024년 1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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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문'의 사전적 의미를 찾아봤다. 섞일 잡, 글월 문의 잡문. "일정한 체계나 문장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되는대로 쓴 글. 대체로 지은이의 감정이나 사상이 꾸밈없이 드러난다." 말 그대로 유홍준 교수님의 감정과 사상이 꾸밈없이 드러나 있구나, 싶었다.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책들을 몇 권(전권을 다 읽지는 못했지만,) 읽으며 느낀 교수님의 생각과는 또 다른 교수님의 시선과 생각을 전해들을 수 있었다. 어쩌면 조금 더 내밀하고도 친근한, 우리가 흔히 요즘 읽는 에세이에서도 느낄 수 있는, 교수님의 개인적인 일화나 감정까지 느낄 수 있어서 이 책을 읽는 시간들이 무척 소중했다.
나는 순간 나라도 참석하는 것이 옳다는 생각이 일어났다. 문화재청장이 아니라 미술평론가 개인 자격으로라도 백남준 장례식에 참가하기 위하여 4일간의 휴가를 내고 장례식에 맞추어 뉴욕으로 떠났다.(167쪽)
유홍준 교수님이 어떤 분인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부분이라고 생각했다. 이 부분을 읽으며 교수님께 감동했고, 한편으로는 예술가에 대한 나라의 처우가 이 정도밖에 안 되는가에 실망하기도 했다. 어떤 가치를 소중히 해야할 것인가, 또한 그것이 결과적으로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인가를 생각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지점이라고 생각한다. 단순히 개인적인 생각과 행동은 아무런 유익함을 남길 수 없을 때가 많다. 하지만 사회 예술적인 안목으로 더 넓은 사고를 통한 행동은 분명 더 깊고도 소중한 영향력을 발휘하게 된다. 교수님의 행보가 그랬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을 읽으며 글 전체를 관통하는 것은 결국, 미술평론가로서 우리의 예술이 어떻게 앞으로도 나아가야 할 것인가를 꾸준히 고민하고 계시는구나, 싶었다. 단순히 직업으로서의 책임이라고 하기에는 나가감의 보폭이 달랐다.
그런데 지금 우리 시대에 훗날 명승으로 지정될 정원, 원림, 별서, 정사가 지어졌는가. 이 또한 '별장'이라는 것에 대한 국민정서의 거부감과 세제상 중과세를 부여하는 규제 때문이다. 국토를 아름답게 가꾸며 삶을 건강하게 하고 후손에게 문화재를 물려줄 수 있는 기회를 잃어버리고 있는 것이다.(104쪽)
전혀 생각해보지 못했던 지점이었다. 가끔 교외로 나가보면 드문드문 산 중턱이나 언덕 위에 나무숲을 배경으로 지어진 별장들을 보며 부러움과 안타까움(좋겠다, 하지만 저렇게 자연을 훼손하면서 개인의 안락함만을 추구하는 건 별로다)을 동시에 느끼기만 했었는데, 이렇게 접근해볼 가치가 있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서 처음 알게 되었다. 아, 그럴 수도 있겠구나. 하지만 그래도 될까, 지금까지도 안타깝다고 생각했던 지점의 무분별한 개발과 훼손의 책임은 누가 지어야 할까, 이걸 계속 개발하는 것이 과연 장기적으로 옳은 선택이 맞을까에 대해서는 고개를 갸웃하게 됐다.
그런데 나중에 신혼여행에서 돌아와 이 '혼인서약'을 펼쳐보니 주례 리영희 선생은 혼인서약 문장 중 '나라'라는 단어를 두 줄로 긋고 '사회'라고 교정보아놓았다.(...) "그게 그거일 수 있으나, '나라'라는 말에는 파쇼 냄새가 나지만 '사회'라는 말에는 인간의 윤리가 살아 있는 차이 아니겠어." 아! 나는 이런 분의 주례로 결혼했다.(238쪽)
아! 나도 감탄했다. 파쇼는 안 되지, 당연히 인간의 윤리가 살아있는 '사회'여야 하는 게 맞지, 싶었다. 인간의 윤리. 어떤 것이 이 사회를 지탱할 수 있는 것인가를 다시 생각해보게 됐다. 무엇을 향해 우리가 나아가야 할 것인가를 별 거 아닌 것 같은 혼인서약의 단어로서도 충분히 밝힐 수 있는 힘, 그리고 그런 힘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줄 아는 자세가 필요하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어쩌면 이런 주변의 인연들이 교수님을 내내 이끌어왔던 원동력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 책에는 교수님과의 인연의 인물들이 많이 등장한다. 그 인연들이 개인적이든 사회적이든 관계가 쌓이는 면면들이 무척 값지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을 향해 나아갈 것이며 어떤 사상과 목소리가 우리 삶에 존재해야 하는 것인가. 또한 그런 존재들의 이야기가 어떻게 남아야 하고 또 그 남겨진 유산을 우리는 어떻게 아껴 소중히 다루어야 할 것인가도 숙제처럼 남았다.
<모내기> 작품이 법정에 나오는 날, 나는 일찍이 가서 신 화백의 가족, 민미협 회원들과 방청석 앞자리에 자리 잡고 기다렸다. 얼마 뒤 법원 직원이 작품을 들고 들어와 법정 맨바닥에 놓는데 놀랍게도 천막 개듯이 여러 겹으로 접혀 있는 것이었다./ 순간, 민미협 화가들이 일어나 "작품을 이런 식으로 보관하면 어떡하냐"라고 항의했다. 그러자 담당자는 압수물 보관소에 있는 그대로 가져왔을 뿐이라고 했다.(177쪽)
작품을 보고 너무 화가 났다. 접힌 자국대로 훼손된 흔적이 여전히 남아있었다. 아, 얼마나 예술에 대한 무지를 보여주는 것인가. 작품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물건으로만 바라보는 태도가 너무도 안타까워지는 부분이었다. 어쩌면 이런 태도의 시각을 조금이나마 바꿔주는 역할을 교수님이 하신 것이 아닐까도 생각했다. 우리가 만약 교수님의 문화유산답사기가 아니었다면 이만큼이나마 우리의 문화유산에 대해 관심이라도 가질 수 있었겠나. 단순히 작품뿐만이 아니라 그런 작품이나 예술가를 대하는 태도와 그 가치를 어떻게 두어야 하는지에 대한 모범을 본인의 삶을 통해 있는 그대로 가르쳐주셨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분은 분명, 행동하는 지성인이 맞다. 그런 분의 이야기를 책을 통해서나 만나뵐 수 있어 영광이었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