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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온한 공익 - 왜 어떤 ‘사익 추구’는 ‘공익’이라 불리나
류하경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10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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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온하다 : (1) 온당하지 아니하다. (2) 사상이나 태도 따위가 통치 권력이나 체제에 순응하지 않고 맞서는 성질이 있다.
#공익 : 사회 전체의 이익
#사익 : 개인의 이익
국어사전을 찾았다. 불온하다, 공익, 사익. 정확한 사전적 의미를 알고 이 글을 생각해봐야할 것 같았다. 그래서 찾은 뜻으로 단어들의 조합이 어떤 의미인지 풀어보면, <불온한 공익>은 "온당하지 않은 사회 전체의 이익"이란 뜻이다. 혹은 "사상이나 태도 따위가 통치 권력이나 체제에 순응하지 않고 맞서는 사회 전체의 이익"이 되거나. 여기서부터 고민이 들었다. 이 제목을 어떻게 이해하면 좋을까.
공익 분명 사익과 반대의 의미를 가진다. 두 단어를 대비하여 생각할 때 어느 누구든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은, 사익보다는 공익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공익광고(기업이나 단체가 공공의 이익을 목적으로 하는 광고)'도 있는 게 아닐까. 이때 공익광고의 공익이 앞서 찾은 공익과 같은 단어다. 그렇다면, 우린 공익을 위한 사회여야 한다는 거다. 많은 사람들에게 그렇게 하자고 광고까지 하는 거니까. 사회적으로 옳은 방향이라는 거다.
그렇다면, 이 책의 제목은 역설이다. 불온과 공익이 상충된다. 사회적으로 추구하고자 하는 공익이지만, 온당하지 않고, 특히 권력이나 체제에 맞서는 공익이라는 거다. 얼핏 보면 무슨 소린가 싶긴 한데, 이 책을 다 읽은 입장에서 본다면, 결국 우리 사회가 공익이란 이름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권리와 자유과 힘을 빼앗고 살아가도록 힘을 쓰는 사회인지를 쉽게 알 수 있다. 마치 당연하다는 듯 공권력, 공무 또는 행정, 그리고 법이라는 이름으로 무척 강력하게 사회를 좌우하고 있다.
그러니 이쯤에서 부제를 다시 읽어보면 이제 어느 정도 감이 온다. '사익 추구'가 '공익'이 되는 이야기. 개인의 이익이기는 하나 사실은 우리 모두가 지켜줘야하는 사익. 다수와 소수로 나누었을 때 다수가 늘 옳은 것이 아님을 우리는 안다. 다수에 따라 소수가 얼마나 많은 고통 속에서 삶을 살고 있고 많은 것들을 개인이 감수하며 살아가야 하는지를,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저자가 사익을 위해 변호하는 삶을 살고 있음도 이해가 되는 것이다.
언젠가 사회적 부당함과 불공평, 편견과 차별, 그리고 혐오 등과 관련하여 책을 읽고 공부를 하고 이야기를 나누다가, 결국 법을 공부해야한다(학교 다닐 때 공부 좀 더 열심히 해서 법대 갈 걸_로스쿨이라도...)는 결론을 내린 적이 있다. 법이라면 그나마 이 사회를 제대로 바꿀 수 있는 힘이 있을 테니까 말이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며 또 그게 다는 아니라는 생각도 들었다. 오히려 법의 전투에서 지고 좌절하고 때론 한계에 다다르게 되는 과정이, 밖에서 보던 법의 세계와 또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법도 쉽지 않구나, 저자의 어려움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는 마음이 생겼다.
저자가 이런 책을 쓰고, 우린 또 굳이 이런 책을 찾아 읽고, 생각하고 쓰고 대화하면서, 우리 사회가 어떻게 나아가야 할 것인가의 방향을 잃지 않는 것이 우선은 중요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당장에 이 책 한 권 읽었다고 사회가 우리가 원하는 쪽으로 움직여주지는 않을 테니까. 다만, 방향성을 놓치지만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다시 하게 되었다. 일찌감치 포기하는 것과 그럼에도 한발 더 나아가보는 것은 큰 차이가 있으니까.
그런 의미에서 저자와 같은 분들이 계속 생각을 멈추지 않고 움직여주는 것에 대한 고마운 마음이 든다. 내가 직접은 못 하더라도, 저자의 행보를 응원해주는 것만으로도 그들의 뜻을 지지하고 우리 사회가 바르게 나아갈 수 있는 길을 확보하는 데 도움을 줄 수도 있으니까. 이런 이야기를 좀 더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고 나누어 공론화될 수 있으면 좋겠다. 결국, 많은 사람들의 의견과 뜻이 모이는 것이 중요한 것이니까. 아파트 주민들이 먼저 움직였던 것처럼 말이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