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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네 미술관 - 다정한 철학자가 들려주는 그림과 인생 이야기
이진민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10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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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의 관계, 권력, 계층, 관습과 사회적 시선 등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 의식들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왜 늘 한결같이 비슷한 철학적 사유로 연결되는 하나의 고리가 되는지, 생각할수록 씁쓸해지기도 한다. 과거에도 지금 현재에도 비슷한 사고와 가치관이 사람들의 삶과 생활 사이에 깊숙이 들어와 있고, 이 사이에서 결국 어떤 사고의 과정을 거치는가에 따라 우리는 그 진짜를 발견하게 될 수도 혹은 거짓 투성이에 눈이 가려질 수도 있다. 저자의 이야기를 집중하다보니, 어쩌면 지금껏 내가 무언가를 놓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를 생각해보게 됐다. 이 책은 그림을 이야기하는 책이라기보단, 우리의 삶과 사고를 이야기하고 있는 책이었다.
<언니네 미술관>이라고 해서 저자가 미술 전공으로 그림을 해설해주는 것이겠지, 하는 단순한 생각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전혀 아니었다. 그림은 하나의 매개가 될 뿐. 그 매개를 통해 우리를 이야기하고 있었다. 우리가 어떤 사고방식과 가치관 속에서 살고 있는지. 그리고 또 느낀 것은, 이런 우리의 삶과 생각, 가치관과 사회적 통념 등이 그림 작품에 고스란히 반영되어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었다. 역시, 예술! 그림 작품이 괜히 예술이라 불리는 것이 아니구나 싶었다. 어느 것 하나 허투루 그려진 것 없이 화가의 사상과 신념이 작품 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그림으로 화가의 생각을 그대로 엿볼 수 있도록. 그리고 그런 그림 한 작품 한 작품마다 우리가 간과하지 말아야하는 철학적 사유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그걸 들여다볼 수 있는가 없는가는 얼마나 진심으로 관심을 갖고 있는가 그렇지 않은가에 있었다. 정치철학을 전공한 저자가 들려주는 그림 속 정치적 관점이 무척 흥미로웠다.
그렇게 입을 닥치라고 말하는 사람들 곁에서, 언어를 빼앗긴 여성들이 갈 수 있는 길은 두 가지였을 것이다. 닥치거나, 미치거나. (68쪽)
무릎을 탁 쳤다. 그렇지! 우리가 할 수 있는 세상 속 생각은 어쩌면 굉장히 단편적일 수 있을 것 같다. 실은 선택지가 그리 많지도 않고 또 어떨 때는 선택할 수 있는 자유조차 없다. 그저 세상이 그렇게 만들어주는 대로만 마치 등떠밀려 살아지고 있는 것이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 그렇게 밀려 나온 사회는 있는 그대로 혹독하기 짝이 없고.
슬픔은 부지런하고 현명한 자들의 몫이기도 하다. 나이가 들수록 슬픔이 더 잘 보이는 이유는 일의 명암이 더 잘 보이기 때문이기도 하다.(160쪽)
어른이 되어가면서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당연하지 않고, 명쾌하게 구분된다고 믿었던 것들이 실은 그렇지 않음을 본다. 나를 제일 잘 아는 건 나 자신이라고 믿었다가도 내가 나를 제일 모른다는 사실에 당황하고 만다.(247쪽)
그럼에도 우리는 알 수 없어 갈팡질팡하는 세상 속을 이리저리 휘둘리고 흔들리면서 살아가게 되는 것이고, 그렇게 살아갈 때 어떤 마음을 갖고 살아가야 할 것인가를 곰곰이 생각해볼 기회를 가져야 한다는 것, 이것이 이 책을 읽으며 가슴 속으로 깊이 생각하게 만들었던 지점이었다. 우린 생각보다 조금 더 철학적인 삶을 살아도 좋겠다는 생각.
이번 글에서는 나와 너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실은 무척 어려운 주제다. 나도 나를 잘 모르겠고 너는 더더욱 알 길이 없는데 나와 너라니. 하지만 내가 지금 쓸 수 있는 말들을 쓰기로 한다.(297쪽)
이 부분에서 답을 찾았다. 내가 과연 이 저자처럼 철학하는 시늉이라도 내보려고 할 때 할 수 있는 방법. 지금 쓸 수 있는 말들을 쓰고, 지금 할 수 있는 생각을 하고, 지금 볼 수 있는 주변을 둘러보는 것. 그랬을 때 얻게 되는 소중한 경험들이 결국 쌓여 우리 인생이 될 것이다.
'어디, 지금부터 시늉 좀 해 볼까.'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덧-
책을 읽고, 아쉬운 마음에 책의 아무 페이지를 펼쳐 그 페이지의 내용을 읽어보았다. 앗! 펼치는 페이지마다 인상적인 구절들을 다시 찾을 수 있었다. 마치 어린 시절 친구와 책을 펼치며 놀이했던 것마냥 손에 느껴지는 감각만으로 책장을 펼쳤을 때, 어떤 부분인지를 다시 살피는 재미가 있었다. 매일 한번씩 책장을 펼쳐 그날의 문장을 찾아봐도 재밌겠다는 생각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