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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가장 위험한 곳, 집 ㅣ 앤드 앤솔러지
전건우 외 지음 / &(앤드) / 2023년 7월
평점 :
나는 지금 집에 있다. 그렇다면 지금 가장 위험한 곳에 있다는 뜻이다. 지금 위험이 어느 곳에서 불쑥 나에게 닥칠지 모른다는 불안함으로 내 공간이 잠식당한다고 생각하면, 그 상상만으로도 끔찍한 악몽일 것이다. 그렇다면 이 악몽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1. 공간에서 도망가기 2. 정면돌파하여 무섭지 않은 곳으로 만들기 3. 공포를 애써 외면해보기 4. 악몽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함께 살기. 과연 이 4가지 방법 중 더 나은 것이 있을까.
어떤 것으로도 해소되지 않는 공포는 늘 우리 삶 속에 숨어 있다가 어느 때가 되면 얼마든지 나에게 그 실체를 드러낼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흔한 말로 병도 제일 약한 부분으로 나타난다고 하지 않나. 아마 공포도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누가 살았던 집>에서도 결국 모든 것을 다 잃고 마지막으로 내몰렸을 때 공포의 집이 나타났으며, <죽은 집>에서도 가장 약한 부류의 사람들에게로 집의 공포가 찾아왔고, <반송 사유>에서도 그 다음으로 넘어갈 수 없는 마지막 선택지에 내몰렸던 그 집이 공포가 되었으며, <그렇게 살아간다>에서도 참을 수 없는 긴 시간에서 그 끝을 원하는 마음이 공포가 되어 집에 살고 있는 사람을 덮쳤다.
이 책에 실린 4편의 소설은 어찌 보면 공포를 이야기하는 듯 싶지만, 사실은 사람의 마음을 이야기 소설이기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포란 결국 감정인 것이고 그 감정이 어디에서 기인하고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는 것은 아닐지. 사람들은 살아가면서 많은 것들에 대한 공포, 무서움, 불안함 등의 힘든 감정을 갖게 마련이다. 그리고 그런 감정들은 모두 다양한 이유들에서 기인한다. 각자의 이유는 다양하지만 그 다양함에 사람들은 이름을 붙이고 의미를 부여한다. 그렇게 부여된 이름과 감정이 곧 공포가 되는 것이고, 그 공포에서 발생하는 불안을 또다시 어떻게 이겨내야 할 것인지를 숙제로 안고 또다시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아마도 이 소설들은 그 숙제를 찾아가는 다양한 방법을 제시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다면, 이 소설들 속의 인물들에겐 어떤 이유들이 그런 감정을 만들어냈던 것일까. 그들에게는 잘 살고싶다는 갈망, 살아야한다는 간절함, 그리고 제대로 살고 싶다는 바람이 있었다. 그리고 그런 갈망, 간절함, 바람을 타고 공포는 가장 안전해야하는 곳은 집으로 찾아 들어왔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이런 말을 내뱉을 때가 있다. '집에 가고 싶다.' 그건 그만큼 지금이 무척 고단하고 힘들다는 반증이고, 그래서 집은 모든 힘든 것을 내려놓을 수 있는 가장 편안하고 안전한 곳이라는 의미가 된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신의 집을 원하는 것이고 편안하게 두 다리를 뻗어 누울 수 있는 공간을 원하는 것이다. 그래서 집은 사람들을 보호하고 휴식과 안정을 확보해줄 수 있는 공간인 것이다. 하지만, 이 소설 속 인물들에게는 더이상 집이,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집이 아니게 되었다. 생각만해도 소름이 돋고, 근처에도 가고 싶지 않은, 피하고 도망가고 싶은 집이 되었다.
이들에게 위험한 집을 만들어준 공포가 마치 살아 숨쉬며 가장 약한 사람들을 찾아 가장 약한 쪽으로 파고들어와 자리잡은 것처럼 느껴졌다. 어떤 방법으로도 방어할 수 없도록, 가장 소중한 것들을 잃도록 만들었다. 결국 공포가 상실을 만들고, 그 상실로 또다시 공포를 만들어내는 악순환이 반복되며, 그 불안에서 벗어날 수 없도록 만들었다. 더 소름이 돋는 것은, 그런 모든 것으로부터 도망갈 수 있는 최후의 곳이 집이어야 하는데, 그런 집을 더이상 갈 수 없는 위험한 곳으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다른 곳이 존재하지 않는, 대안 없는 싸움에서 이들이 절대 불리할 수밖에 없도록.
비현실적이고 실체 없는 존재에 대한 공포나 두려움보다, 사람들의 가장 약한 곳으로 파고들어오는 공포라는 감정이 더 무서웠다. 언제 어느때 나의 가장 약한 부분으로 어떻게 공포가 찾아올 지 알 수 없어 더 무서웠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