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우개 좀 빌려줘 사계절 1318 문고 136
이필원 지음 / 사계절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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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가끔, '꿈같은 일이었어' 혹은 '꿈이었으면' 내지는 '꿈에서라도'와 같은 생각을 하게 되는 순간이 있다. 그런 일들이 실제로 나에게 온다면, 나는 그 순간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기억하게 될까. 이 소설집의 이야기들에는 이런 소망과 소중한 마음들이 담겨있어, 그 마음들이 흩어지지 않도록 잘 모아 간직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전히 우리가 가꾸어 나가야 할 것들이 있으며, 그 가치들이 잘 지켜질 수 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었다. 특히 우리 아이들의 마음과 상황이라면 더욱.
혹등고래 전학생과의 소중한 순간을 지우지 않으려는 우성, 지구가 아닌 다른 공간으로 사람들을 보내는 Q와 떠나지 않는 나, 호랑님의 생일날 탬버린 쳐준 인간 고운,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엄마와 재회하는 수완, 도깨비의 장난으로 악몽을 꾸던 윤희와 호박마차 아줌마, 그리고 할머니의 마지막을 지켜주고 싶었던 은채까지. 각자에게 일어난 일들 속에서 스스로 감당할 수 없을 만큼의 무게에 어쩌면 포기하고 무너질 수도 있었겠지만, 무언가의 단단함으로 자신을 잃지 않고 그 순간들을 잘 버텨낼 수 있었다. 아마도 그 무언가는 이들을 둘러싸고 있는 이 신기하면서도 꿈같은 일들이었을 것이며, 그런 현상 속에서 이들이 제 스스로를 놓지 않고 묵묵히 그 모든 것을 받아들였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 누군가의 관심과 친절, 배려도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과 마음들이 모여야만 제 힘을 발휘할 수 있으니, 이미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었기 때문에 이들의 시간들이 멈추지 않고 계속 흐를 수 있었을 것이다.
솔직히 읽으며 중간중간 웃음이 나기도 하고 신기한 세계가 궁금하기도 했다. 때론 나도 지우개 빌리고 빌려주는 친구가 그립기도 했다가 정말 우주선에 사람들을 태우고 식인이 사는 어딘가로 가게될 수도 있는 미래는 무섭기도 했다. 하지만 먼저 말 걸어주고 생일잔치에 초대해준 호랑님, 함께 울어주는 용 포뢰, 호박마차의 아줌마가 있다는 건, 생각만으로도 충분히 안심되고 따뜻해지는 느낌이기도 했다.

"그건 네 외로움을 해결 못 해."(...) / "너를 믿어. 너 자신이 믿어 주는 네가 앞으로 어떻게 달라질지 기대해 봐." / 내가 나를 믿는다니. 어쩌면 누구보다 최선을 다해 스스로를 미워하고 있는 고운에게 그건 너무도 어색한 일이었고, 한번도 생각해 본 적 없는 말이었다. 그 말이, 고운의 헝클어진 마음을 두드렸다.(78-9쪽_'호랑님의 생일날이 되어' 중)
"화해는 빨리할수록 좋은 거야."(...) / " 시간이 너무 지나면, 어느 순간 미안하다는 말을 잃어버릴 수도 있어."(104쪽_'우는 용' 중)
"외로운 사람을 내버려 두면 쓰나. 더욱이 학생을."(151쪽_'호박마차' 중)

전학생이 웃으면 주변이 밝아진다는 걸 방금 깨달았다. 햇살이 비쳐 들듯이 눈부신 건 아니고 그저 웃는 게 새하얘서 주위가 맑게 느껴진달까. 아무튼 그런 여자애였다.(10쪽_'지우개 좀 빌려줘' 중)

외로움에 스며드는 또 다른 어둠을 몰아내 어느 순간 밝은 빛으로 바꿔줄 수 있는 존재만으로도 충분히 숨을 쉴 수 있어진다. 그러니, 그런 밝은 빛을 뿜어내는 존재들의 따스함이 모두에게 스며들 수 있기를.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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