깻잎 투쟁기 - 캄보디아 이주노동자들과 함께한 1500일
우춘희 지음 / 교양인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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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게시물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깻잎의 향과 맛을 좋아한다. 쌈을 먹을 때는 특히나 더 깻잎을 꼭 찾게 된다. 심지어 아이는 깻잎으로 싸 먹을 때 입에 들어가는 느낌을 더 부드럽게 하기 위해 거꾸로 뒤집어 싸 먹는다. 다른 초록 채소들을 외면하는 아이가 유독 사랑하는 채소이다. 요즘 한창 '깻잎 논쟁'으로 주목을 받고 있는 깻잎. 처음 책의 제목을 접했을 때는 '깻잎? 깻잎 투쟁기? 깻잎 논쟁과 비슷한 이야긴가?' 싶었다. 부제가 눈에 들어오기 전까지는.
머리로는 알고 있는 이야기가 실제로 내 주변의 직접적인 이야기가 되지 않을 때, 흔히 우리는 알고 있는 것이 실현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어떠한 것도 하지 않는 게 일반적이다. 하물며 알지도 못하는 이야기가 있고 그것을 알게 되기까지 작고 큰 수고를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경우라면, 우리는 쉽게 알려는 노력을 게을리하게 된다. 이 책을 읽으며 느낀 첫번째다. 알지 못하는 이야기였고, 알려는 노력을 기울여 알려고 하지 않았고, 알고 있는 작은 부분의 이야기마저도 알고 있는 것이 실현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나는, 과연 어떤 행동을 기울일 수 있을까. 소심한 변명을 늘어놓을 준비를 먼저 하게 되는 나 자신이 더 작게만 느껴졌다.
오래 전 교과서에 짧은 글이 실려있었다. 우리나라를 단일민족이라 부르지 말라는 세계인권위원회의 권고 사항. 이것은 국수주의면서 차별주의의 소산이므로 더이상 단일민족이라는 이름 하에 타민족에 대한 차별을 멈춰야한다는 것이었다. 짤막한 글이었지만 큰 생각이 자리잡게 된 계기였다. 그 이후 주변의 외국인에 대한 시선은 당연히 달리질 수밖에 없었고, 우리의 사회를 더 깊이 들여다보게 되었다. 하지만, 깻잎밭의 이주노동자에 대해서는 한 번도 눈여겨볼 기회도 없었고 관심도 없었다는 것이 솔직한 고백이다.
이주노동자의 주 일터는 당연히 공장이라고만 생각했다. 3D를 말하곤 했지만 그것에 농업이 포함되어 있다는 생각을 왜 하지 못했는지. 그리고 그 한가운데에 하루 10시간 이상의 고된 노동이 있을 거고, 그 노동이 이주노동자의 손에서 이루어진다는 생각을, 한번에 해본 적 없다는 사실이 조금 충격적이었다. 이것이 책을 읽으며 느낀 두번째다. 그들의 열악한 주거공간과 생활여건, 그들의 삶에 대한 최소한의 인간적인 예의도 없는 고용주와 우리 사회의 민낯, 그 민낯이 그들만의 이야기가 아닐 것이므로 더 부끄러워지는 것은 그나마 우리 마음 속, 아직은 완전히 내려놓지 않은 사람에 대한 존중이지 않을까. 저자가 '새끼'의 뜻을 말해주며 어쩔 줄 몰라했던 감정을 나는 이 책을 읽으며 내내 느끼고 있었다.
이들의 삶이 잘 보이지 않았던 것은 사각지대였기 때문일까, 아니면 일부러 고개 돌리지 않으려는 불편한 진실임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일까, 스스로 질문을 던져봤다. 물론 답은 저 두 지점의 사이 어디쯤일 듯. 전혀 몰랐어요, 라고 말하기에는 너무 뻔한 거짓말일 테니까. 하지만 이제라도 알게 되었으니 지금 당장 달려가 그들을 위해 할 수 있는 한 몫의 작은 실천이라고 해야지! 하고 다짐하기에는 아직 용기가 없다. 다만 최소한 그들의 삶과 노력과 노동이 우리와 함께 하고 있고 그들의 존재를 잊지 않으려는 것부터 차근차근 시작해보는 것으로, 스스로 타협안을 마련해 본다.
코로나가 우리 삶의 많은 부분을 바꿔놓았다고 한다. 이제는 절대(!) 코로나 이전으로는 돌아가기 힘들 것이라는 전망도 흔하다. 코로나로 인해 다 힘들어졌다는 이야기가 많은 가운데, 이주노동자에 대한 생각과 정책, 시행 등이 조금, 아주 조금은 반갑기도 하다. 우리는 분명 한 사람이고, 그 한 사람이 온전하게 사람으로 대우받을 수 있어야 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이야기다. 이 너무도 당연한 이야기를 우리는 왜 이리도 힘들여 하고 하고 또 해야하는 것인지. 그렇게 이야기하면서도 왜 사람들은 그들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는 것인지. 당연한 것이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고 이루어져야하는 것이 상식인데, 그 상식이 통하는 사회가 우리 사회였으면 좋겠다.
이 책을 읽는 기간 동안 자꾸 책에 신경이 쓰였다.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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