깃발 나부끼는 그리움

깃발, 나부끼는 그리움 - 청마 유치환 탄생 100주년 기념 시그림집
유치환 지음 / 교보문고(단행본) / 2008년 8월

바람 센 오늘은 너 그리워 / 긴 종일 헛되이 나의 마음은 / 공중의 기빨처럼 울고만 있나니 /
오오 너는 어디메 꽃같이 숨었느뇨. (그리움)

아아 누구던가 / 이렇게 슬프고도 애닯은 마음을 / 맨 처음 공중에 달 줄을 안 그는. (깃발)

사랑하는 것은 /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리라 / 오늘도 나는 너에게 편지를 쓰나니 / 그리운 이여 그러면 안녕! / 설령 이것이 이 세상 마지막 인사가 될지라도 / 사랑하였으므로 나는 진정 행복하였네라.  (행복)

꿈 꾸어도 노래하지 않고 / 두쪽으로 깨뜨려져도 / 소리 하지 않는 바위가 되리라 (바위)

나의 지식이 독한 회의를 구하지 못하고 / 내 삶의 애증을 짐지지 못하여 / 병든 나무처럼 생명이 부대낄 때 / 저 머나먼 아라비아의 사막으로 나는 가자 (생명의 서 일장)



위의 시들은 청마 유치환의 대표작 그리움, 깃발, 행복, 바위이다. 그의 시에는 남성성과 여성성이 공존하고 있는데, 생명의 서 일장이나  바위와 같은 시에서는 불굴의 의지를 담아낸 강인함이 엿보이지만 깃발이나 그리움과 같은 시에서는 애틋하고 아련한 정서가 느껴져 여성성이 돋보인다.  행복 또한 마찬가지이다. 이러한 작품들로 미루어 볼때 그에게는 불같은 열정과 물같은 섬세한 정서가 함께 있었던 것 같다. 특히나 위의 시들 중 많은 사람들에게 친숙한 행복이라는 시는 읽고 있노라면 누군가를 그리며 설레이고 떨리는 풋풋한 감정이 느껴지는 것 같다. 

 정호승시는 청마 유치환의 시를 생명의 시이자 동시에 사랑의 시라고 평했는데 이러한 것은 그의 시들에서  일관되게 나타나는 이상향에 대한 갈망이나 그리움의 정서때문일 것이다. 교과서에서는 시대적, 사회적 배경에 초점을 맞추어 독립에 대한 갈망 등 획일화된 의미로 시를 해석해왔는데 이런 관점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관점으로 그의 시를 읽어보는 것도 좋을 듯 하다. 그의 시 중 또 다른 특징은 낭독했을 때 읽는 맛이 더해진다는 것이다. ~리,~고, ~라, ~로다. 와 같은 형식때문에 그런지 현대의 시가 산문적 성격을 띠고 있는 반면 유치환의 시는 운율이 잘 살아 있는 느낌이 든다.


이 시집이 여타 유치환의 다른 시집들과 달리 특별한 이유는 천여편이 넘는 그의 시들 중 100편을 골라 묶고 더불어 실력있는 37인의 화가들이 함께 참여한 덕분이다. 청마 유치환 탄생 100주념 기념으로 발간 된 시 그림집, 깃발 나부끼는 그리움은 북디자인 부터  청마 유치환 시인의 작품, 37인의 화가들의 작품,정호승 시인의 해설까지 문학적으로도 예술적으로도 소장할 만한 가치가 충분한 것 같다.  시집에 수록된 그림들은 작가들이 각기 자신이 자유롭게 청마 유치환의 작품들을 자유롭게 선택하여 그린 것이라 더 특별하게 느껴진다.


  물론 이 책을 구잆한 첫 번째 목적인 시도 물론 좋았지만 함께 수록되어 있는 그림들이 주는 감동은 색다른 느낌이었다.  책의 본문 중 춘신이라는 시와 함께 수록된 송필용의 봄날의 꿈, 바람에게라는 시와 함께 수록된 이홍덕의 하모니카 부는 소년 등은 시를 읽으면서 상상의 한계를 더 넓혀주고 자극시켜 주었다. 흔히 사진이나 그림이 함께 실리면 텍스트만의 진정성이 훼손되거나 감동을 분산시킨다고 하는데, 나의 경우에는 오히려 시를 새롭게 상상하며 읽을 수 있는 계기가 된 것 같다. 시때문에 그림이 소모되지도 않았고 그림떄문에 시가 소모되지도 않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