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오는 아프리카
권리 지음 / 씨네21북스 / 2009년 5월
평점 :
절판


고유석은 아버지의 사망 이후 미대입시에 떨어지고 집안이 풍비박살나면서 친척의 집에 얹혀 살게 된다. 하지만 그는 사촌형에 대한 열등감으로 그 집에 있을 수 없었고 아버지의 작업을 돕던 최교수의 집에 가게 된다. 그는 그녀를 처음만났을때를 회상한다. 회상속에서 최교수는 그에게 이별을 끝낸 사람의 이야기를 늘어놓았었다.

"막 이별을 한 사람들은 남의 슬픔에 너무 쉽게 동화되지만 이별을 완전히 끝낸 사람들은 다르지.
그들은 이미 상처가 단단히 아물었어. 마치 헝클어진 감정을 빗질한 느낌이랄까? 왜 그렇게 변하는지 아니? 바로 용서를 배웠기 때문이야."

이 소설의 모티브가 되는 것은 유석의 성장과 자신을 속이고 이해하지 못했던 사람들에 대한 용서이다. 소설은 실종된 야마 자화상을 찾아 떠나는 추리극 같이 보이지만 실상 속을 들여다 보면 이 여행은 유석이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 깨닫고 탐구하는 여정이다.

유석과 더불어 주요 등장인물 중 하나인 쇼타는 그와 비슷한 또래의 나이이다. 20살초반의 나이. 모든 가능성이 열려 있고 또 그 가능성이 너무 넓고 광범위해서 어디로 가야 할지 우왕좌왕 헤매며 방황하는 시기.

 쇼타와유석의 만남은 참으로 어이없었다. 인터넷 동호회에서 즐겨보던 쇼프로그램 자막의 오타가 거슬려 그 주인을 찾게 된 것이다. 글자  건방진을 곤방진이라고 우기는 쇼타에게 따지기 위해 둘의 만남이 이루어졌고 유석이 쇼타가 가지고 있는 야마자화상에 스프레이를 뿌려 망치는 바람에 그들의 여행은 시작되었다.  어떻게 보면 쇼타에 의해 발목이 잡힌 것 같지만 유석은 쇼타 덕분에 처음으로 창작이라는 것에 손을 대본다. 그가 망친 그림을 복원시킬 수 있을 만한 실력을 검증받기 위해서이다. 따라그리는 미대입시에 익숙했던 그에게 창작은 번번이 실패의 고통으로 다가온다. 우여곡절 만나는 여인들 마다 이별을 하게 되고 자신만의 마돈나의 어디에 있을까. 하는 고민도 한다. 하지만 이 고민하는 과정이 중요하다. 딜레마에 빠지고 나오는 과정의 반복은 그를 단단하게 만들어주었기 때문이다.

 한 편 쇼타는 형을 찾는데 여념이 없다. 형을 원망했던 그는 형이 남긴 흔적들을 찾아 다니며 그가 어떻게 생활했는지 어떤 생각들을 가지고 있었는지 알게 된다. 그는 형을 찾게 된 이후 큰 결심을 한다.고국으로 돌아가 학업에 전념하는 대신 자신만의 길을 가기로 결심을 한 것이다.  

 꼬마 여자아이를 통해 마돈나를 찾고 모든 진실을 밝힌 유석은 고향으로 돌아간다. 그곳에서 그는 아버지라는 그늘에서 벗어나 진정한 자신의자아를 찾게 된다. 울퉁불퉁한 혹은 오목함과 볼록함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요철, 오목함과 볼록함이 만나면 완전한 결합을 이루듯이 그가 요철로라는 길을 찾아간다는 것은 한 삶의 주체로서 그의 정체성이 확립되었음을 뜻한다. 어린아이가 영영사라진다는 것은 유석이 자신안에 결핍되어 있던 것들을 채우고 용서하고 누군가의 그늘에서 벗어난 것을 의미한다. 눈 오는 아프리카에 한 발 다가선 것이다.  눈오는 아프리카는 그가 꿈꾸는 이상적인 세계이다. 그가 앞으로 찾아가야 할 곳이기도 하다.

"어떤 그림을 그리고 싶은데?"
"눈오는 아프리카요"
"아프리카에 눈이 온다? 하하하."
"인간의 이기심으로 인해 얼룩진 세상 위에 눈이 내리면 어떨까 하는 것이죠. 남들은 척박하다고 하는 땅 위에 언젠가 눈이 내려 세상을 포근히 감싸주면 좀 더 평화로운 세상이 될 거예요."

 그런데 한가지, 마지막 부분의 어머니와 아버지 이야기에서 왜 하필 빛과 빗 바다와 지팡이라는 표현을 쓴 것일까?  바다와 지팡이를 떠올리면 모세의 기적이 떠오른다. 하나님의 힘을 빌어 바다를 둘로 가른 기적. 그리고 어머니로 상징되었던 지팡이. 탄생의 문에서 나와 한동안은 누군가의 돌봄을 받아왔던 시기는 끝이 났다. 지팡이 없이도 아버지의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은 이제 누군가의 도움없이도 그 세계를 드나들 수 있다는 것을 뜻한다.  

 빛과 빗도 마찬가지이다. 앞에서 고유석에게 최교수가 했던 말을 기억하는가? 헝클어진 마음을 빗는다. 완전히 이별을 끝낸 사람들의 이야기다. 작품속에서 유석은 색맹이 되어버린다. 빛을 잃어버렸다는 뜻과도 같다. 쇼타는 유석에게 쓴 편지에서 이를 과도기라고 불렀다. 추억에서 완전히 아버지를 잊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아서 그럴 수도 있다는 말을 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마지막 부분에서 아이는 색깔을 구분하지 못하지만 언젠가 영감을 이용하여 소박함과 인정과 빈곤과 행복이 있는 곳으로 들어갈 것이다. 는 암시가 나온다. 빛과 빗없이도 그는 삶의 방향을 스스로 정하고 헤쳐나갈 수 있을 것이다. 
 

p.463  

" 유석은 부산역을 나와 자갈치 시장이 있는 그의 따뜻한 고향으로 들어선다. 동시에 그 안의 어린이가 빠져 나간다. 사소한 감정에 넘어지고 헤맨 아이, 최장거리를 날고 걷고 기어서 온 아이는
드디어 '요철로'라는 울퉁불퉁한 길을 찾아간다. 놀랍게도 아이는 요철로가 아버지에게서 어머니에게로 이어진 길임을 깨닫는다. 아이는 발가벗은 발을 차가운 요철로 위에 얹는다. 요철로를 걷는 아이의 귀에 이상한 소리가 들려온다. 눈이 폴폴 내리는 소리. 눈이 메마른 땅 위에 살포시 내려앉는 소리. 쌓인 눈이 운동화 끝에 사뿟사뿟 부딪치는 소리. 아이는 한 여름에 내리는 하얀 눈을 맞으며 부지런히 요철로 를 걷는다.  

(중략)

마침내 아이는 어머니라는 빛과 바다와 빗과 지팡이 없이도 아버지 안으로 들어가는 법을 배운다. 아이는 앞을 보지 못한다. 색깔도 구분하지 못한다. 하지만 아이는 영감을 이용해 소박함과 인정, 빈곤과 행복이 있는 곳으로 언젠가 들어갈 것이다. 요철로는 어느덧 아이의 집 앞 골목으로 이어진다. 아이는 기쁨으로 충만해져 골목 저편을 향해 미친 듯이 달려 가더니 전봇대를 돌아 영영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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