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악 - 개정판
오쿠다 히데오 지음, 양윤옥 옮김 / 북스토리 / 2010년 8월
평점 :
품절



최악





이거 도대체 웃어야 돼, 울어야 해? 정말 심각한 상황인데도, 웃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닌데도 비실비실 웃음이 나온다. 초반부에서 중반부까지는 조금 이야기가 무겁다 싶었는데 중반부 이후부터 가속도가 붙기 시작하더니 결국 뻥 하고 웃음을 안겨주었다. 인간의 내면심리를 세밀하게 그려내며 그 안의 허점을 푹 찌르는 블랙유머는 때로는 씁쓸하기도 하고, 당황스럽기도 하고, 어처구니없는 웃음을 터트리게도 했다.





“아 정말 최악이야.”


누구나 한 번쯤 이런 말을 뱉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소설을 읽게 된다면 진정한 ‘최악’의 상황이 무엇인지, 인간이 어떤 나락의 끝까지 떨어질 수 있는지를 느낄 수 있게 될 것이다. 소설 속 주인공들은 하나 같이 최악으로 떨어지게 된 저마다의 사연을 안고 있다.


‘가즈야’라는 청년은 아버지는 알코올중독에 어머니는 다른 살림을 차리고 나서 혼자 정처없이 방황한다. 그러다 여자친구도 사귀게 되고 좀 더 나은 생활을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가지게 되지만 20살 남짓한 나이에 그는 단순한 절도범에서 살인범이라는 나락까지 떨어지게 되었다.


‘미도리’라는 은행 여직원은 직장상사에게 부당한 일을 당하고 여동생이 자신이 일하는 은행에 은행 강도로 들이닥쳐 자발적으로 인질이 되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 또한 자신이 코너에 몰리자 사람을 죽일 뻔 한 일도 겪게 된다.


‘신지로’라는 중년의 성실한 가장은 하청업체라는 위치에서 경제적으로 항상 압박감을 받아왔지만 새 기계를 들여놓으면 인생이 달라질지도 모른다는 희망이 있었다. 하지만 은행대출에 거절당하고 이웃과 싸움이 나고 가장으로써 시달리면서 끝내는 정신을 놓게 되는 순간에 까지 이르게 된다. 개인적으로 가장 연민의 감정을 느꼈던 인물이었다.





이들의 인생은 애초에 완벽히 계획된 것은 없었다. 예상된 것도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아주 특이한 악조건을 가지고 태어난 것도 아니었다. 그저 우리 주변에서 한 두 명씩 있을 법한 아주 평범한 인물들이었다. 아 나에게도 저런 일이 벌어질지도 모르겠다. 는 생각이 든 것은 이 때문일 것이다.





이 세 명의 인물이 한꺼번에 만나게 되었을 때 소설은 절정으로 치닫는다. 가즈야와 그의 여자친구 메구미는 은행을 털고 인질을 데리고 차로 도주하지만, 그 인질은 메구미의 언니였고 은행에 대한 불만으로 정신을 놓아버린 가엾은 아저씨는 이들에게서 도무지 떨어져 나갈 생각을 하지 않는다. 얽히고 얽혀 엉망진창이 되어 버린 세 사람의 만남은 코미디 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





소설은 아주 긍정적이지도 아주 부정적이지도 않은 상태로 끝이 나는데, 가즈야는 감옥으로 미도리는 새로운 직장으로 신지로는 이웃공장 밑으로 들어가며 모두 현실로 돌아가게 된다. 인생으로부터 끝없이 방황하고 도망 다니는 일에 종지부를 찍은 것이다. 어찌되었든 최악의 상황으로부터 살아남은 것이다. 상처는 오래 남겠지만, 결국 언젠가 최악의 상황은 결말이 나는 법이다. 인생에는 주기가 있다고 한다. 항상 운이 좋은 주기가 계속 되는 것은 아니다.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자신을 위주로 생각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과 비슷하게 힘든일을 겪어도 자신의 상황이 제일 ‘최악’이라고 느끼는 것 같다. 서로 비슷한 상황에서 자신이 제일 불행하고 가망이 없다며 세 사람이 각자 우기는 장면에서 사람의 인생은 거기서 거기인데 자기연민과 자괴감에 빠져 자신 스스로 최악이라는 구덩이를 더 깊게 파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최악의 상황에서 주인공들은 원하든 원치 않았든 자신의 숨겨진 본성과 밑바닥까지 들여다보았다. 적어도 더 이상 떨어질 곳이 없으니 쫓기지 않아도 되고 전전긍긍하며 자신의 마음에 더 큰 짐을 얹지 않아도 될 것이다. 사람의 인생에 끝이 있는 것처럼 최악이라는 것도 언젠가 끝이 있기 마련이다. 소설의 마지막 장을 덮으며 끝이 있다는 건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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