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테랑의 몸 - 일의 흔적까지 자신이 된 이들에 대하여
희정 글, 최형락 사진 / 한겨레출판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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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작성을 위해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평소 소설을 많이 읽는다. 작가가 의도를 가지고 창조한 세계, 배경과 행동이 낭비되지 않고 하나의  통일성을 가지고 있는 세계가 좋다. 하지만 때로 소설가에게 나온 정제된 문장이 아니라 다른 사람과의 대화속에서 만들어진  것의 문장이 읽고 싶을 때가 있다. 소설의 세계가 몰입을 통해 현실의 고단함을 잊게  준다면, 후자는 좋은 사람의 건강함을 통해 나도 다시 열심을 내고 싶게 만든다.  책은 후자에 해당한다. 기록노동자인 인터뷰어 희정님이 하나의 일을 오랫동안 해 온 13명의 베테랑을 만나 인터뷰를 했다. 우리에게 익숙한 어부, 배우, 조리사와 같은 직업뿐 아니라, 식자공, 마필관리사처럼 생소한 직업들도 있다. 


시작은 인터뷰어가 의도를 가지고 인터뷰이를 선정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대화를 통해 인터뷰어의 마음은 인터뷰이의 말과 몸을 따라 움직인다. 예를 들면, 배를 탔을 때 몰래 생물 한두 마리는 바다로 돌려보내려던 인터뷰어가 인터뷰이의 이야기를 듣고 행동을 포기하는 장면이 있다. 놓아주려 했던 것은 생물이라기보다 노부부의 노동이었고 그 대가였다. 노부부와의 대화를 통해 알게된 그들의 결혼기념일을 잊지 않도록 책에 날짜를 넣어준다는 약속을 지킨 인터뷰어의 마음이 보기 좋았다. 식자공 권용국님은 열다섯에 졸업을 하고 직업을 구했다고 한다. 이것이 소설의 내용이라면 대학에 진학하지 못하고 어린 시절부터 가족들을 부양했다는 이야기는 뻔한 이야기처럼 들릴 수 있다. 하지만 그가 1934년생이고, 월급 받고 쉬는 날 운동장에서 축구를 하다가 전쟁이 났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는 부분에서 상투적인 이야기가 아니라 개인의 삶이 민족의 비극과 만나는 지점을 볼 수 있다. 


​우리가 일부러 거리의 안마소에 들어가거나 바다 위에서 고기를 낚는 일을 하는 사람의 인생 이야기를 들을 일이 있을까? 마필관리사나 수어통역사와 이야기할 기회는 더욱 희소할 것이다. 모르고 살기엔 이들이 너무 값진 이야기들을 들려준다. 내가 하고 있는 일에 의심이 생길 때, 지칠 때, 자신의 일에 진지한 태도와 자부심이 있는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는 것은 확실한 힘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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