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단지 살인마 ㅣ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30
최제훈 지음 / 현대문학 / 2020년 9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해당 게시물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그리고 죽는다. 나의 운명도 어디선가 조용히 내 마지막 날을 디자인하고 있겠지. 부디 이렇게 뜬금없는 결말은 아니었으면 좋겠다.
SNS에서는 분노의 한마디가, 두려움의 한마디가, 조롱의 한마디가, 훈장질하는 한마디가, 그 한마디를 리트윗한 한마디가 격류처럼 흘러갔다. 잠시 성찰할 틈도 없이 계속되는 자기복제. 정작 검색창에 입력한 단어는 한없이 가벼워져 휘발되는 느낌이다. 혹은 한없이 무거워져 제 무게에 압사되거나. 자기 자신을 스스로 지우는 시스템이라. 생각해보면 더없이 윤리적인 소멸이다.
아무렇지 않게 말하니 아무렇지 않은 일 같기도 했다. 그래, 인생 뭐 있나.
당나귀의 허리를 부러뜨린 건 마지막 지푸라기일까, 그 전에 실려 있던 임계치의 짐일까? 당나귀는 어느 쪽을 원했을까? 허리가 부러질 것 같은 짐을 지고 꾸역꾸역 목적지까지 가는 것과, 그냥 부러지고 끝내는 것 중에서.
-
인적이 드문 야적장에서 거구의 20대 남성 시신이 10여 군데 자상을 입은 채 발견된다. 시체는 오른손 새끼손가락이 절단되어 있었다. 공사장에 쌓아놓은 콘크리트 하수관에서 타박상을 입은 여고생의 시신이 발견된다. 시체는 오른손 새끼손가락과 약손가락이 절단되어 있었다. 두 사건은 하나의 개별적인 사건으로 큰 주목을 받지 못하지만, 반지하 셋방에서 오른손의 손가락 세 개가 절단된 노파의 시신까지 발견되자, '단지 살인마'의 소행으로 주목을 받게 된다. 오른손의 손가락 네 개가 절단된 시신이 발견되자 나라가 발칵 뒤집히고 이 소설의 주인공인 장영민이 등장한다.
데이 트레이더라는 직업을 가진 장영민은 자신이 숨겨진 패턴을 발견하는 사람이라고 한다. 그는 탐정놀이를 하는 가벼운 마음으로 단지 살인마에게 관심을 갖게 되고, 우연히 살인마의 패턴을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마침 다섯 번째 희생자가 나오고, 그는 고인의 장례식장에 가서 자신이 발견한 패턴이 맞았다는 사실을 확인한다. 그 패턴은...
<여기서부터 스포일러 포함입니다.>
그 패턴은 십계명의 계명 순서였다. 이 소설은 주인공이 뛰어난 직감으로 범인을 검거하는 클리셰를 비튼다. 장영민은 학창 시절 자신을 괴롭히던 친구를 살해하고 단지 살인마가 한 것처럼 손가락 여섯 개를 자른다. 단지 살인마가 저지른 다섯 번의 살인에 자신의 살인을 끼워넣으며 완전 범죄를 자신하며 지내던 장영민.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손가락 일곱 개가 잘린 시신이 발견되고 장영민의 거주지 우체함에 '단지 살인마, 전화 요망.' 이라고 적힌 편지가 배달된다. 흥신소를 통해 그 편지를 보낸 사람의 집에 침입한 장영민은 냉장고 안의 생수병에 약을 탄 후 생각에 잠기는데...... "누구세요?"라는 소리와 함께 현관 아래에 서 있는 그 사람과 마주치게 된다.
개인적으로 핀시리즈 28, 29, 30번까지 세 개의 장르소설 중 30번째인 단지 살인마가 가장 흥미로웠다. 전에 읽은 장르 소설 리뷰를 보다가 28번은 사흘, 29번은 이틀, 30번은 하루만에 읽었다는 패턴(?)도 발견했다. 탐정물인줄 알았던 소설에 개인의 서사와 살의가 껴넣어지면서 장르가 바뀌고, 새로운 연쇄살인마가 탄생하는 일련의 흐름이 매끄럽고 몰입감있다. 이 책의 가장 큰 반전은 작가의 말이 아닐까. 이렇게 두근거리는 책을 써놓고 감성을 자극하는 작가의 말이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