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의사 야옹선생의 초록 처방전 - 근거 중심 자연주의 육아
박지영 글.그림 / 황소걸음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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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의학과 자연주의의 균형이 잘 잡힌 책.
근거중심 자연주의 육아
막연한 두려움으로 과도하게 약을 쓰고 병원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육아가 아니라 몸의 자연치유력과 현대의학을 병행하는 육아.
분량도 길지 않고 만화로 되어있어 술술 읽힘. 출산선물로 최고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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빚의 마법 - 화폐지배의 종말과 유대로서의 빚 카이로스총서 36
리차드 디인스트 지음, 권범철 옮김 / 갈무리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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빚이 있는 곳에, 연대가 있을지니..
『빚의 마법』(리처드 디인스트 씀) 서평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느니라(롬 13:8)

1. 빚 권하는 사회에서의 롬 13:8 해석

성도들의 윤리적 삶의 태도에 대해 말하고 있는 로마서 13장에는 ‘빚을 지지 말라’는 구절이 있다. ‘빚’을 ‘신용’이라는 세련된 표현으로 바꾸어 ‘빚’을 권장하고 마이너스통장의 한도금액이 자신의 사회적 위치를 보여주는 ‘빚 권하는 사회’ 속에서 그리스도인들은 이 말씀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빚 없이는 살 수 없는 사람들 - 대학에 들어갔지만 부모님이 등록금을 내줄 여력이 되지 않아 학자금대출을 받을 수밖에 없는 청년들/평균 전세가격이 3억을 넘어서고 17년을 한 푼도 쓰지 않고 모아야 겨우 집 한 칸 마련할 수 있는 서울에서 결혼을 해야 하는 신혼부부들/건강보험 보장율이 60%가 조금 넘는 의료복지 수준에서 가족 중 누군가가 덜컥 몸져누운 이들/경기불황이라는 명목으로 언제든 내쫓길 수 있는 열악한 노동현실에 처해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들 - 처럼 빚을 지지 않고서는 도무지 헬조선에서 살아가기 버거운 이들은 이 말씀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이해해야 할까?

자신의 자리가 채권자이든 채무자이든 가계부채 1200조가 넘는 대한민국에서 말씀대로 살고자 한다면 사도 바울이 왜 ‘빚 지지 말라’고 했는지 고민이 들지 않을 수 없다.

2. 빚 – ‘착취와 억압’이 아닌 ‘사랑과 연대’의 도구로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는 말씀 앞에는 ‘피차(서로) 사랑의 빚 외에는’ 한 가지 전제조건이 있다. 사도 바울은 서로 사랑의 빚을 지는 것은 괜찮다고 허용한다. 아니 오히려 권장한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렇다면 ‘사랑의 빚’과 ‘아무 빚도 지지 말라’고 할 때의 ‘빚’은 어떻게 다른 것일까?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류문명이 만들어낸 ‘빚’은 일반적으로 억압과 착취의 도구로 사용되었다. ‘베니스의 상인’에서 고리대금업자 샤일록이 안토니오를 죽이려 할 때도 ‘빚’을 도구로 삼는다. ‘부모의 빚’에 시달리던 여인의 비극적인 선택을 다룬 영화 ‘화차(火車)’는 ‘빚’으로 인해 파생되는 악순환을 적나라하게 묘사하고 있다. 빚은 인류문명이 발명해낸 최악의 상품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도 바울은 당대 로마제국에서 같은 인간을 노예로 만들고 억압하고 착취하는 도구로 사용되는 ‘빚’을 보면서 ‘아무에게도 아무 빚도 지지 말라’고 권하지 않았을까?

하지만 사도 바울은 억압하고 착취하는 도구로서의 ‘빚’이 아니라 이웃사랑의 표현으로서 ‘사랑의 빚’은 적극 권하고 있다.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다’고 독려하면서.

구약성경 역시 ‘빚’을 억압과 착취의 도구로 쓰는 것이 아니라 이웃사랑의 도구로 사용할 것을 가르치고 있다.

네 형제가 가난하게 되어 빈 손으로 네 곁에 있거든 너는 그를 도와 거류민이나 동거인처럼 너와 함께 생활하게 하되 너는 그에게 이자를 받지 말고 네 하나님을 경외하여 네 형제로 너와 함께 생활하게 할 것인즉 너는 그에게 이자를 위하여 돈을 꾸어 주지 말고 이익을 위하여 네 양식을 꾸어 주지 말라(레 25:35-37)

누구보다 구약에 정통했던 사도 바울은 ‘하나님나라 백성 공동체’인 교회가 먼저 ‘빚’을 착취와 억압의 도구가 아닌 형제자매사랑과 연대의 도구로 삼아 하나님나라를 드러낼 것을 요청하고 있다.

OECD 국가 중 자살률/노인빈곤율/노인자살률 1위를 수년째 놓치지 않는, 빚으로 인해 일가족이 자살했다는 소식이 이제는 충격으로 들리지도 않을 만큼 빈번한 뉴스가 되어 버린 헬조선에서 교회는 어떻게 ‘서로 사랑의 빚’을 지는 삶을 드러낼 수 있을까?

리처드 디인스트는 그의 책 『빚의 마법』에서 생존을 위해 빚을 질 수 밖에 없는 구조 속에서 속박의 사슬로 작동하고 있는 ‘빚’을 어떻게 유대의 끈으로 만들 수 있을지 고민하면서 대안으로 ‘소액신용(Microcredit)’을 주목하였다.

이윤 극대화를 목적으로 ‘맑은 날 우산을 빌려주고, 비오는 날 우산을 빼앗아 가는’ 방식의 약탈적 금융이 아닌 가난한 이웃의 자활을 응원하는 마음을 담은 소액대출은 ‘이윤과 사람과 환경’을 더불어 생각하는 사회적 금융과 궤를 함께 하고 있다.

주거/의료/불안정한 직업 등 삶의 필수적인 부분에서 충분히 복지가 보장되지 않은 대한민국에서 생활고로 인해 빚을 질 수 밖에 없는 사람들에 대한 안타까움을 안고 기독교적 대안을 고민하는 교회와 성도들에게 ‘소액신용’과 ‘사회적 금융’은 유익한 통찰을 준다.

3. 희년 – 억압적 채무 체제의 근본적 변혁

주거, 교육, 의료 등의 생존 필수재를 빚으로 해결하는 사회를 빚이라는 의미의 '크레디트'(credit)와 체제를 뜻하는 '크라시'(-cracy)를 합쳐 ‘크레디토크라시(creditocracy)’ 사회라 부른다(크레디토크라시 서평(http://goo.gl/LXY9Gt)). 크레디토크라시는 거대금융기관을 대표로 하는 채권자들이 빚을 매개로 대다수 채무자들의 삶을 지배하는 또 다른 노예제 사회이다.

앞서 레위기에서 보았듯이 성경은 이웃의 생존을 볼모로 형제자매를 지배하고 억압하는 크레디토크라시 사회에 대해 비판적으로 본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당신의 율례와 법도를 따르지 않고 부채와 폭력으로 이웃을 노예로 삼는 애굽 체제로 돌아갈 때 이스라엘을 심판하고 가나안 땅에서 쫓아낼 것을 말씀하신다(레 26장).

이스라엘은 결국 하나님의 율례와 법도를 지키지 않아 바벨론에게 멸망당하고 만다. 바벨론 포로귀환 이후를 다루는 느헤미야서 5장에는 느헤미야가 빚을 도구삼아 같은 형제자매를 종으로 삼고 삶의 터전을 빼앗는 이스라엘 귀족과 관리들을 꾸짖는 장면이 나온다. 힘겹게 바벨론에서 귀환한 이스라엘을 다시금 멸망 직전의 크레디토크라시 사회로 돌리려는 귀족과 관리들을 귀족과 관리들을 신랄하게 꾸짖는다. 이스라엘의 귀족과 관리들은 지금까지 착취했던 형제자매들의 삶의 터전을 돌려주고 이자를 받지 않기로 결의한다. 레위기 25장의 희년법이 포로 귀환 후 이스라엘에 다시금 정립되는 사건이라고 볼 수 있다.

『빚의 마법』의 저자는 ‘소액신용’에서 빚이 ‘속박의 사슬’이 아닌 ‘연대의 끈’으로 작동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본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소액신용’이 ‘연대의 끈’으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사람들이 생존을 빚에 의해 할 수 밖에 없는 사회의 구조 속에서만, 즉, 사람들을 계속해서 가난하게 만드는 구조 내에서만 ‘소액신용’이 연대의 끈으로 작동할 수 있는 한계를 이야기한다.

리처드 디인스트는 불의한 채무 체제인 크레디토크라시 사회를 근원적으로 바꿀 수 있는 유토피아 비전으로 구약성경의 ‘희년’을 주목한다. ‘희년’이 ‘1830년대의 영국 노동자 총파업과 차티스트 토지정책‘, 아메리카의 ’노예제 폐지‘ 등 역사의 수많은 혁명적 정치운동에 대담한 상상력을 제공한 것에 주목하며 억압적 채무 체제를 청산해야 하는 오늘날의 시대적 과제를 이루기 위한 유토피아적 비전으로 부채탕감이 일어났던 안식년과 희년을 상기시킨다.

4. 새 예루살렘에서의 ‘빚’

요한계시록 21장은 하나님의 새 창조 비전을 보여주고 있다.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아닌 새 하늘과 새 땅으로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내려온다. 그리고 모든 눈물을 닦아 주시고 만물을 새롭게 하신다(21:1-5).

모든 만물이 새롭게 될 때 ‘억압과 착취’의 도구였던 ‘빚’도 ‘사랑과 연대’의 징표로 바뀔 것이다. 완성된 하나님나라에서는 빚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끊임없이 가난하게 만드는 억압적 채무체제도 사라질 것이다.

교회는 새 예루살렘이 이 땅에 도래하여 최종적으로 완성될 하나님나라를 먼저 살아가며 주님 오실 길을 준비해야 할 사명이 있다. 성경은 완성된 하나님나라를 선취하며 살아내어야 할 교회에게 주는 나침반이자 지침서이다. 교회는 성경이 보여주는 하나님의 새 창조라는 비전 아래에서 만물을 새롭게 해석하며 새로운 방식으로 살아가야한다.

도래할 하나님나라를 앞서 살아가야 하는 교회는 ‘돈’과 ‘빚’을 속박의 사슬이 아닌 사랑과 연대의 끈으로 바꾸어내어야 한다. 빚 없이 살아가기 힘든 헬조선에서 하루하루 버겁게 삶을 이어가는 수많은 이들에게 교회의 머리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희망과 구원임을 증언할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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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러시아 혁명사 강의 - 다른 미래를 꿈꾸는 사람들에게
박노자 지음 / 나무연필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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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자처럼 서평쓰기 강의들으면서 쓴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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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과 함께 변질된 혁명, 이상적 사회주의 혁명은 가능할까?

1917년 러시아 혁명은 20세기 세계사의 시작이라 해도 무리가 없다. 러시아혁명 100주년을 맞은 2017년, 한국인에게 맞춤형으로 러시아혁명사를 소개해 줄만한 이를 찾는다면 단연 박노자가 떠오른다.

이 책은 러시아 혁명에 설계도를 제시하고 혁명을 건설했던 레닌, 트로츠키, 스탈린을 중심으로 혁명사상의 공과 과, 혁명의 명과 암을 들려주고 있다. 러시아 혁명이 유럽과 아시아에 미친 영향과 사회주의를 꿈꾸었던 러시아 혁명이 왜 '적색 개발주의'로 귀결될 수밖에 없었는지 설명하고 있다.

제국주의의 틀을 넘어선 이상적 사회주의 혁명을 꿈꾸었던 레닌의 사상은 '무장 혁명 후 프롤레타리아 독재국가 건설'로 집약할 수 있다. 레닌은 자본이 국가권력을 도구삼아 이윤극대화를 위해 전쟁을 일으키고 노동자를 착취한다고 보았다. 자연스레 레닌의 대안은 노동자들이 무장혁명을 일으켜 자본가들로부터 국가권력을 획득하는 것으로 귀결된다. 하지만 저자는 국가의 폭력적 속성을 간파하지 못한 것을 레닌의 한계로 지목한다. 일국사회주의를 넘어 중진국에서 시작된 혁명이 전 세계에 사회주의를 이루는 영구적인 세계혁명을 꿈꾸었던 트로츠키 역시 제도화된 폭력인 국가의 위험성을 과소평가했다.

혁명 사상가였던 레닌과 트로츠키와 달리 혁명국가를 시공했던 스탈린은 국가의 폭력성을 적극 활용하여 일인독재 체제를 완성한다. 스탈린이 만든 국가는 사회주의의 이름을 걸쳤을 뿐 시장이 아닌 국가가 주도하는 고속성장 모델인 국가자본주의라고 할 수 있다. 저자는 '적색 개발주의'라고 이름을 붙인다. 성장과 폭력을 자양분 삼아 체제를 유지한 스탈린 모델은 한국에서 익히 보았던 박정희 식 국가개발주의 양상과 그리 다르지 않다. 소련이 사회주의 체제가 아니었음은 고속성장이 지체되며 소련이 몰락하는 과정에서 잘 보여주고 있다. 자본의 이윤율하락이라는 자본주의 근본모순을 안고 있는 체제 전환은 결국 실패할 수밖에 없음을 역설적으로 소련이 보여주었다.

러시아 혁명이 유럽의 좌파 운동에 미친 영향과 아시아에 미친 영향도 함께 들려주고 있다. 자본주의 체제가 안정된 유럽에서의 좌파 운동은 급진·온건을 떠나 의회 내 정당으로 귀결되었으며 체제 내 기득권 유지 수준으로 전락하였다고 평가한다. 알제리 독립 전쟁, 6·8혁명에서 보여주었던 좌파 정당의 모습은 국가주의를 벗어나지 못하고 혁명의 기운을 꺾는데 앞장섰다고 저자는 비판하고 있다.

반면 아시아에서 소련은 제국주의 식민지 국가였던 중국, 인도, 한국 등에서 민족주의 진영과 연대하여 반제국주의 식민지 해방 전쟁의 지원과 기폭제 역할을 하였다. 또한 스탈린의 고속성장모델은 남한, 북한, 중국, 동남아시아 전역에 국가 주도형 개발주의 모델의 본보기가 되었다.

러시아 혁명과 좌파 운동사를 일별하며 오늘날에도 여전히 사회주의 혁명이 필요하다고 보는 저자가 제시하는 몇 가지 통찰이 있다. 첫째, ‘자본주의 내에서 부르주아 민주주의를 극복하려는 정당을 합법적으로 운영하다는 것은 자기모순적’이지만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일상에서 지속적으로 자본주의에 대한 대안을 실천해야 한다’고 말한다. ‘당원들간의 위계질서를 없앤다거나, 생태친화적 생활양식을 실천하는 것 등 일상적이고 문화적이며 대안 생활양식적인 실천‘을 해야 한다. 즉, 자본주의 극복을 위해 정치권력 획득에만 사활을 걸 것이 아니라 일상 속에서 억압과 착취에 기초한 자본주의 생활양식이 아닌 대안적 일상을 만들어가야 한다고 권한다. 둘째, 사회주의 혁명의 이상을 최대강령으로 가지되 시민들이 피부로 체감할 만한 주제들을 최소강령으로 삼아 지지를 얻을 것을 제안한다. 셋째, 국가나 민족 단위의 세계관에서 벗어나 사해동포주의적 가치관으로 국가간 영토 분쟁이나 전쟁에 대해 공동의 목소리를 내기를 제안한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적색 개발주의의 한계를 인정하면서도 시장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경제발전이 가능함을 보여준 것은 적색 개발주의가 보여준 가능성으로 인정한다. 시장이 주도하지 않는 성장방식으로 자본의 억압과 착취를 극복하고, 중앙집중적 국가권력이 주도하지 않는 민주적인 방식으로의 성장이 ‘기술적으로’ 가능하다면 러시아 혁명의 한계를 넘어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낙관적인 기대를 저자는 내비친다. 하지만 블록체인, P2P 등 시장과 중앙집중적 권력의 매개가 필요 없는 경제시스템이 ‘기술적으로는’ 가능하지만 여전히 민중이 중심이 된 비시장적 사회의 전망은 아직까지 가시거리에 보이지 않는다. 무엇이 더 필요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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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줄리언 반스 지음, 최세희 옮김 / 다산책방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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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민독서 책 읽다가 궁금해서 읽어본 책.
반전이 흥미로운 책..
맨부커 상에 대한 궁금함 생김.
어떤 기준으로 상을 주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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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남한산성
김훈 지음 / 학고재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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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과 청의 교체기에 일어난 병자호란을 배경으로 한 김훈의 소설이다. 김훈 특유의 물기없는 문체는 가히 독보적이다. 화친을 주장하는 최명길과 전멸도 불사하는 전쟁을 주장하는 김상헌의 '썰전', 백성들과 군사들이 가진 소소한 소재들로 현실들을 묘사하며 전시 상황 속의 백성들의 고단함

죽을지언정 타협하지 않는다는 김상헌의 결기는 존중하나 백성과 왕을 동일시하는 김상헌의 인식에는 동의할 수 없다.
이 지점은 근대적 관점만은 아니다. 조선건국의 토대였던 맹자의 민본사상, 공평과 정의를 중히 여기는 구약의 관점이 모두 왕은 백성을 위해 존재함을 말하고 있다.

김상헌의 타협없는 결기와 일제 독립운동가들의 결기가 다른 점은 백성의 고통이다. 왕이 치욕을 당하고 백성이 살 수 있다면 기꺼이 당해야 하는 치욕이다. 일제 독립운동의 정당성은 일본 제국주의는 조선의 백성을 갈아마시려는 체제이기 때문이다.

백성은 명을 섬기는 청을 섬기는, 조선을 섬기든, 고려를 섬기든 상관이 없다. 공평과 정의가 이루어지는 나라라면 백성들에게는 그곳이 제대로 된 나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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