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삭제하시겠습니까 ㅣ 마루비 청소년문학 1
김정민 지음 / 마루비 / 2026년 3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고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지워지는 시대에 남는 마음
삭제하시겠습니까.
우리는 너무 많은 것을 쉽게 지우며 사는 시대를 지나고 있다.
메시지 하나, 사진 하나, 기록 하나, 관계 하나.
그런데 정말 지워지는 것은 무엇이고, 끝내 지워지지 않는 것은 무엇일까?
이 책은 그 질문을 미래적인 설정 안에 넣어두고도 결국 아주 현재적인 감정으로 되돌아오게 만든다.
김정민 작가의 이 책은 미래 세계를 배경으로 한 네 편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과학과 기술이 고도로 발달한 사회를 무대로 하지만 결국 중심에 남는 것은 관계와 인간 존엄,
그리고 사랑의 방향이라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차가운 설정보다 먼저 도착하는 감정
읽는 동안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기술보다 사람의 마음이 먼저 보였다는 점이다.
외계 존재, 인공지능 판결, 스캔된 기억, 삭제의 명령 같은 장치들이 등장하지만 차가운 아이디어 자랑은 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장치들 때문에 더 선명해지는 외로움, 누군가를 잃고도 계속 살아가야 하는 마음, 끝내 붙들고 싶은 관계의 온도를 조용히 보여 준다.
미래 사회를 다룬 이야기인데도 읽고 나면 남는 건 기계의 성능이 아니라 사람이 사람을 어떻게 기억하고 붙드는가에 대한 질문이다.
그래서 청소년소설이면서도 생각보다 훨씬 감정 쪽으로 깊이 들어오는 책이다.
짧은 장면 하나가 오래 남았다
특히 이 문장은 오래 남았다.
“둘은 서로의 손이 통과하지 않게 조심하면서 손을 잡았다. 비록 진짜 손을 잡은 것은 아니지만 충분히 위로가 되었다.”
이 짧은 문장 안에 가까이 있고 싶지만 완전히 닿을 수는 없는 마음, 그래도 사람을 살게 하는 건 결국 그런 작은 접촉이라는 사실이 담겨 있는 것 같았다.
이 책이 왜 단순한 청소년 SF가 아닌지 보여 주는 대목이었다.
십대와 어른이 함께 이야기할 수 있는 책
집에서 중학생 아이와 요즘 어떤 책이 오래 남는지 이야기를 나눌 때가 있는데, 이 책은 설정 설명보다 감정의 여운이 먼저 남는다는 점에서 십대 독자와 어른 독자가 서로 다른 자리에서 함께 이야기해 볼 만한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미래 사회를 배경으로 하지만 질문은 어렵지 않다.
정말 인간답다는 건 뭘까?
기억과 관계를 편리하게 정리할 수 있는 시대에도 사랑은 왜 여전히 번거롭고 아픈가?
이 책은 답을 강요하지 않으면서도 꽤 오래 생각하게 만든다.
SF소설 추천을 찾는 독자, 청소년소설이 너무 가볍다고 느꼈던 독자, 그리고 감정이 사라진 시대의 관계를 고민해 본 독자라면 잘 맞을 책이다.
짧게 끊어 읽기보다 네 편을 천천히 이어 읽을수록 제목의 의미가 점점 더 무겁게 다가온다.
읽고 나면 나도 모르게 마음속에서 한 번 묻게 된다.
정말 삭제하고 싶은 것은 무엇이고, 나는 무엇만큼은 끝까지 지우지 못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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