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이 닿지 않는 곳으로 - 보호받지 못한 이들에 대하여
모먼트 지음 / 바른북스 / 2026년 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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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고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어떤 책은 읽는 동안 강하게 흔들고, 어떤 책은 다 읽은 뒤에야 깊어진다.
빛이 닿지 않는 곳으로는 내게 분명 두 번째 쪽에 가까운 책이었다.
처음에는 제목이 먼저 마음에 들어왔다.
빛이 닿지 않는 곳.
이 말은 단순히 어둠을 뜻하는 것 같으면서도, 사실은 우리가 일부러 보지 않으려 했던 자리, 혹은 너무 쉽게 지나쳐 버린 누군가의 삶을 떠올리게 한다.
그리고 이 소설은 바로 그 자리로 천천히 걸어 들어간다.
요즘처럼 빠르고 강한 이야기들이 계속 쏟아지는 때에 이렇게 낮은 목소리로 오래 남는 소설은 오히려 더 귀하게 느껴진다.

처음부터 환한 이야기는 아니었다

이 소설은 무척 무거운 장면에서 출발한다.
열네 살 지안은 친구 은주의 가족에게 일어난 비극을 목격한다.
그 일은 한순간의 사건으로 끝나지 않고, 한 사람의 기억 속에 오래 남아 삶의 방향까지 바꾸어 놓는다.
지안은 이후 사회복지학을 공부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세상이 아주 쉽게 나쁜 사람이라고 불러 버리는 이들의 삶을 조금 더 가까이에서 보게 된다.
전단지를 떼었다는 이유로 송치된 학생, 가정을 지키려다 가해자가 되어 버린 남자, 순간의 사고 이후 삶 전체가 뒤틀려 버린 가장.
이 책은 이런 인물들을 통해 우리 사회가 얼마나 빠르게 판단하고, 얼마나 쉽게 누군가를 바깥으로 밀어내는지를 조용히 묻는다.
스포일러를 피해서 말하자면, 이 소설의 핵심은 사건 자체보다 그 사건 이후에 남겨진 사람들의 표정과 삶의 무게에 있다.

누군가의 잘못은 왜 늘 가장 약한 곳으로 번질까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자주 떠오른 질문은 바로 이것이었다.
분명 잘못은 특정한 누군가가 저질렀는데, 그 결과는 왜 늘 가장 힘없는 사람에게 더 크게 떨어질까?
왜 어떤 아이는 그저 그 자리에 있었다는 이유로 평생 지워지지 않을 장면을 혼자 안고 살아가야 할까?
왜 어떤 가족은 남의 잘못 때문에 자신들의 일상까지 무너지는 경험을 해야 할까?
빛이 닿지 않는 곳으로는 이 질문을 정답처럼 꺼내놓지 않는다.
대신 인물들의 삶을 따라가게 하면서 독자가 스스로 불편함을 느끼게 한다.
나는 그 점이 참 좋았다.
누군가를 대신 판단해 주는 소설보다, 내가 직접 조금 더 오래 생각하게 만드는 소설이 훨씬 오래 남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가해와 피해, 책임과 연민, 법과 인간 사이의 간극을 아주 쉽게 정리하지 않는다.
그래서 더 현실적이었다.

이 소설은 사건보다 사람의 안쪽을 오래 본다

비슷한 주제를 다룬 이야기들 중에는 사건을 중심에 두고 독자를 몰아붙이는 작품도 많다.
하지만 이 책은 그 방식과는 조금 다르다.
사건은 분명 중요하다.
그렇지만 이 작품이 끝까지 바라보는 것은 사건 그 자체보다 그 일을 통과한 사람의 내면이다.
상처가 남는 방식, 기억이 눌어붙는 방식, 사회가 붙인 이름 하나가 한 사람을 얼마나 오래 가두어 버리는지.
이 책은 그런 부분을 급하게 소비하지 않는다.
그래서 읽는 동안 자극적이라는 느낌보다 천천히 스며든다는 느낌이 더 컸다.
한 장면, 한 사연이 독자를 흔드는 방식도 요란하지 않다.
책을 덮고 나면 줄거리보다 먼저 사람들이 떠오른다.

모먼트 작가는 쉽게 결론 내리지 않는 사람 같다

작가는 이 사람은 이래서 이런 사람, 저 사람은 저래서 저런 사람, 이런 식으로 빠르게 결론을 내리지 않는다.
조금 더 보고, 조금 더 듣고, 조금 더 이해하려고 한다.
요즘은 빠른 판단이 정확함처럼 보일 때가 많다.
뉴스도 그렇고, 댓글도 그렇고, 심지어 일상 대화도 너무 빨리 결론으로 흘러가 버리곤 한다.
그런데 문학은 원래 조금 늦게 이해하는 장르라고 나는 생각한다.
서두르지 않고 한 사람을 조금 더 오래 보는 일.
그게 소설이 할 수 있는 아주 중요한 역할 중 하나인데, 작가는 그걸 상당히 성실하게 해낸다.

쉽게 판단했던 마음이 조금 부끄러워졌다

이 책을 읽다 보면 어느 순간 내가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을 겉으로 드러난 정보만으로 판단해 왔는지 돌아보게 된다.
물론 세상에는 분명한 잘못이 있다.
책도 그걸 부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잘못이라는 말 하나로 그 사람의 전부를 다 설명할 수는 없다.
누군가는 분명 책임져야 할 일을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사람의 주변 사람들까지 같이 무너져야 하는 건 아닐 것이다.
또 어떤 이는 피해자임에도 불구하고 충분히 보호받지 못한다.
빛이 닿지 않는 곳으로는 바로 그 어긋남을 차분하게 보여 준다.
나는 읽는 내내 이 책이 누군가를 변호하려는 책이 아니라, 누군가를 제대로 보려는 책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 차이는 꽤 크다.

문장이 울먹이지 않아서 좋다.

이 책의 또 다른 장점은 감정을 과장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억지로 슬프게 만들지 않고, 독자에게 여기서 울어야 한다고 지시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문장은 담담한 편이다.
소설이 너무 큰 감정을 앞세우면 읽는 사람은 잠깐 흔들릴 수는 있어도 금방 지칠 때가 있다.
반면 이 책은 독자의 감정을 억지로 끌고 가지 않는다.
가만히 옆에 앉아 이야기를 들려주듯 천천히 보여 준다.
그래서 읽는 사람은 작가에게 설득당하기보다 자기 안에서 스스로 생각하게 된다.
빛은 쉽게 닿지 않지만 이야기는 끝내 거기까지 간다

제목을 다시 떠올리게 된다.
빛이 닿지 않는 곳.
사실 우리 주변에는 그런 곳이 참 많다.
법적으로는 정리되었지만 감정적으로는 아직 아무도 돌보지 못한 자리.
사회적으로는 이미 낙인이 찍혔지만 실제로는 누구도 그 사람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보지 않은 자리.
이 소설은 바로 그곳으로 이야기를 데려간다.
그리고 어쩌면 문학이 해야 할 일도 이런 것이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밝은 곳만 더 밝게 비추는 게 아니라, 모두가 지나쳐 온 곳에 조용히 시선을 머물게 하는 일.
이 책은 단지 한 편의 소설로 끝나지 않고, 읽는 사람의 마음 안에 작은 질문 하나를 남긴다.
우리는 누구를 너무 빨리 포기하고 있었던 걸까?

그래서 나는 이 소설을 권하고 싶다

이 책은 자극적인 전개보다 여운이 긴 소설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잘 맞는다.
사회문제를 정면으로 다루되 설명문처럼 흐르지 않는 한국소설을 찾는 사람에게도 좋다.
누군가의 사연을 조금 더 오래 들여다보게 만드는 책, 읽고 나서 한동안 조용히 남는 책, 그런 작품을 좋아한다면 분명 마음에 남는다.
나는 이 책이 읽는 동안보다 읽고 난 뒤에 더 커지는 소설이라고 느꼈다.
누군가의 삶을 한 줄로 정의하지 말 것.
보이지 않는 곳에도 분명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 것.
조용하지만 흐리지 않고, 따뜻하지만 만만하지 않은 소설.
빛이 닿지 않는 곳으로는 내게 그런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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