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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오기 전에
한봄 지음 / 미다스북스 / 2026년 1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고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이 소설은 읽는 동안보다 덮고 난 뒤가 더 길었다.
보통은 줄거리가 강하면 장면이 먼저 남고, 감정이 강하면 문장이 먼저 남는다.
그런데 봄이 오기 전에는 조금 달랐다.
이 책은 누군가의 마음이 얼마나 오래 겨울 안에 머물 수 있는지를 천천히 보여준 뒤, 마지막에는 그 겨울이 완전히 끝나지 않았더라도 사람은 여전히 누군가를 향해 걸어갈 수 있다는 걸 조용히 남긴다.
이 작품은 사고 트라우마로 인해 겨울마다 저체온증에 시달리는 주인공 봄과, 첫사랑 도영, 그리고 설과 율이 복잡하게 얽히는 이야기다.
전생부터 현생까지 이어지는 인연의 실타래와 ‘개화 찻집’이라는 공간도 이 작품의 중요한 결이다.
이야기보다 먼저 사람의 상태가 보이는 소설이다.
읽으면서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이 책이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보다 누가 어떤 상태로 살아가고 있는가를 더 중요하게 다룬다는 점이었다.
봄은 한 번 크게 다친 뒤 겨울이라는 계절 자체가 몸의 기억이 되어버린 사람처럼 보였다.
그래서 이 소설의 긴장은 사건에서만 생기지 않는다.
익숙한 거리, 스쳐 지나가는 말, 다시 만난 얼굴, 이런 것들만으로도 충분히 흔들릴 수 있는 마음의 상태가 계속 서사 안에 깔려 있다.
상처를 가진 인물을 무조건 불쌍하게 그리거나, 반대로 강한 사람처럼 억지로 세우지 않는다.
그냥 아픈 기억을 가진 채 하루를 살아내는 사람처럼 보이게 한다.
첫사랑 이야기 같지만 실은 회복의 속도에 관한 이야기다.
이 책에는 분명 첫사랑의 결이 있다.
도영이라는 존재가 단순한 과거의 상징이 아니라 지금의 봄에게 다시 흔들림을 만들어내는 인물로 읽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소설을 그저 첫사랑 재회물로만 읽기에는 안쪽에 들어 있는 감정이 조금 더 복잡하다.
내가 읽기에 이 이야기는 누군가를 다시 좋아하게 되는 과정보다, 누군가가 내 안의 겨울에 다시 들어오게 되는 과정에 더 가까웠다.
좋아하는 감정보다 두려운 감정이 먼저 오고, 반가움보다 망설임이 앞서는 순간들이 있다.
이 책은 그 느린 순서를 꽤 잘 놓치지 않는다.
그래서 읽는 사람도 인물을 따라 조금씩 풀리게 된다.
설과 율이 들어오면서 이 소설은 더 단순해지지 않는다.
보통 이런 설정의 소설은 관계가 많아질수록 감정이 과장되기 쉽다.
그런데 봄이 오기 전에는 그쪽으로만 흐르지 않는다.
설과 율이 들어오면서 관계는 더 복잡해지지만, 이야기가 더 자극적으로 커진다기보다 각 인물이 지닌 계절이 겹쳐지는 느낌이 강해진다.
그래서 누가 누구를 좋아하는가보다 누가 누구 곁에서 무엇을 견디고 있는가가 더 중요해진다.
감정선을 세게 밀어붙이기보다 인물마다의 상처와 버티는 방식이 다르다는 걸 은근하게 보여준다.
그 덕분에 이 소설은 로맨스만으로 읽히지 않고, 관계 속에서 사람이 어떻게 달라지는가를 보는 청춘소설처럼도 읽힌다.
한봄이라는 이름이 작품 안에서 하나의 암시처럼 느껴졌다.
저자 소개를 보면 한봄은 이 작품을 시작으로 다채로운 이야기를 써내는 것을 목표로 하고, “글을 쓰는 한, 봄이었으면 좋겠다”는 문장을 남긴 작가다.
이 소설 안에도 분명 그런 지향이 있다.
무조건 따뜻한 이야기여서가 아니라, 차가운 시간 속에서도 결국 사람을 너무 어둡게만 두지는 않겠다는 태도다.
그게 문장 곳곳에서 은근하게 느껴졌다.
첫 작품인데도 정서의 방향이 꽤 분명한 편이다.
그래서 다음 작품이 나오면 한 번 더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이 내게 남긴 건 체온이다.
이 책을 읽고 가장 오래 남은 건 거창한 문장이나 극적인 반전이 아니었다.
오히려 누군가가 완전히 나아진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더 이상 혼자 있지는 않은 상태, 그 미묘한 체온이 오래 남았다.
요즘은 위로를 말하는 책도 많고 상처를 다루는 소설도 많다.
그런데 봄이 오기 전에는 대놓고 위로하려 들기보다 조용히 곁에 앉는 방식에 더 가깝다.
울라고 강요하지 않고, 감동받으라고 밀어붙이지도 않는데, 마음 한쪽이 조금 느슨해진다.
이 책의 추천 이유
봄이 오기 전에는 트라우마, 첫사랑, 재회, 얽힌 인연 같은 소재를 좋아하는 사람에게 잘 맞는다.
하지만 단순히 관계의 설렘만 기대한다면 조금 다르게 느껴질 수도 있다.
이 책은 누가 누구를 사랑하는가보다 누가 어떤 계절을 지나고 있는가를 더 오래 바라보는 소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빠른 전개보다 인물의 마음을 따라가는 이야기를 좋아하는 사람, 상처를 쉽게 치유해 버리지 않는 한국소설을 찾는 사람, 다정하지만 만만하게 흐르지 않는 청춘소설을 읽고 싶은 사람에게 권하고 싶다.
읽고 나면 봄이 왔다고 말하기는 이르다.
그런데 적어도 이제는 정말 봄이 올 수도 있겠다는 마음은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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