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책감 문학동네 시인선 61
임경섭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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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연락 없던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술도 안 마셨다는 그 애는 몇 년 전 이야기를 자꾸 꺼냈다.

 

나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 것들이라 별 대꾸를 할 수가 없었고, 듣고만 있다가 참지 못하고 물었다.

 

그래서, 그 이야기를 도대체 왜 하는 거야? 네가 하고 싶은 말이 뭐야?

 

그 애는 대답했다. 미안하다고.

 

 

지금 생각해보면 그 애가 이야기를 돌려말했던 게 아니었다. 

 

내게 그 이야기를 주절주절 하는 행위가 그 애가 할 수 있는 사과였다는 걸 내가 몰랐다.

 

사과를 하기 위해서 그 이야기를 꺼낸 게 아니라 그 이야기 자체가 사과의 또다른 형식이었다는 거다.

 

모든 이야기는 어떤 감정, 예를 들면 미안함, 고마움 같은 것들의 본체이다.

 

 

임경섭 시인의 시집 <죄책감>에 실린 시들은 저마다 다른 종류, 다른 형식의 '죄책감'에 관한 시다.

 

한 장 한 장,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그 죄책감들이 차곡차곡 쌓인다.

 

 

 

창밖으로

애인의 눈곱만한 시간들이 던져질 때마다

발톱 먹은 쥐가 둔갑해 나타날 거라는

해묵은 아버지의 이야기를 떠올렸지만

나는 한 번도 말하지 않았다

 

어둠 속에 이미 아버지가 많았다

 

발톱이 버려질 때마다

쥐보다 내가 더 싫다며

애인은 꼭 비명을 지르고

나는 사랑해야 할 것들이 너무 많다는 핀잔이

오늘은 잉태한다고도 믿었지만

한 번도 말하지는 않았다

 

- <척, 한> 중 일부



 

'말'이 필요하지 않은 감정들이 있다. '언어'의 옷을 입고 세상 밖으로 나오지 않아도 되는 감정들.


이 시의 화자에게는 그런 감정들이 차오르고 있다.


애인의 비명을 지르는 행위는 감정이 텅 빈 것을 들키지 않으려는 방어 기제다. 그래서 화자는 침묵을 지킨다.

 

애인이 비명을 지를 때 화자가 '말'을 하지 않는 것은 화자의 감정을 지키는 일이기도 하다.

 

'감정을 지키다'니, 이 말이 어떤 사람들에게는 너무 추상적으로 보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어떤 감정은 너무 연약하거나 점성과 밀도가 낮은 것들이라 지키지 않으면 안 된다.

 

타인에게 빼앗기지 않으려고, 혹은 잃어버리지 않으려고 지키는 것이 아니다. 


불안이나 익숙함, 행복 같은 것들은 빼앗기거나 잃어버릴 수 없는 종류의 것이니까.


다만 너무 묽어져서 그 색깔이 바래고, 또는 너무 짙어져서 본래의 의미가 사라지게 될 수는 있다.


소리내어 말하지 않고 감정을 지키는 행위는 감정의 본질을 지키는 행위이다.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는 것이 감정의 본질을 지키는 일이라는 점은 다음 시에서도 잘 드러난다.




너의 무릎과 나의 무릎의 사이를 시간이라 해두고

너의 무릎과 나의 무릎의 떨림을 생각하자


(…)


관성적으로 젖혀지는 고개들, 출렁이는 저 외면들이

널 완성하고 있다 촘촘히 쌓인 외면,

그 동음이의어들 사이로

오롯이 떨고 있는 너의 무릎이 보일 때쯤

여자의 무릎이 나의 무릎에 닿았다가 떨어진다

사라진다


다시 무릎과 무릎의 사이를 시간이라 해두자

저기 무수한 간격 사이로 사라진 너를 두고

정차하면 흩어지는 시간 속에서

나는 이제껏 떠밀려 왔다


- <베일> 중 일부




임경섭 시인 특유 '표현하지 않는 감정'의 유려함은 말 그대로 '표현하지 않을 수록' 그 깊이를 더한다.


단 네 줄의 <가을>과 심지어 단 두 줄의 <너의 장례>가 그랬다.


'표현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여백을 만든다. 여백은 다시 생각을 낳는다.


<가을>의 네 행과 <너의 장례>의 두 행 아래 너른 여백은 너른 고민과 성찰을 불러들인다.


감정을 표현하지 않는 것은 다른 감정을 끌어온다는 명제가, 이 두 시에서 성립한다.


이 두 시는 여기서 인용하지 않는다. 시집에서 직접 읽기를 권한다.


<가을>이라는 제목으로 쓸 수 있는 네 줄과 <너의 장례>라는 제목으로 쓸 수 있는 두 줄에 대해서 생각해보고


이 시집을 펼친다면, 그리고 그 두 시를 만난다면 그 먹먹한 성찰이 두 배가 되지 않을까.



앞서 말한대로, 이 시집은 한 장 한 장 넘길 수록 감정을 쌓아올린다.


임경섭 시인의 언어는 뻑뻑하지 않고 부드러워서 어떤 감정이든 차곡차곡 쌓인다.


그리고 그 감정들은 맨 마지막 페이지에 있는 시, 이 시집의 표제작이기도 한 <죄책감>으로 완성된다.




우리는 계단을 내려갔다

짐을 부리자마자 계단을 내려갔다

눈이 쌓인 만큼 계단은 보이지 않았다

보이지 않는 곳이 계단이라 믿으며 계단을 내려갔다

눈이 쌓인 곳으로 소리도 사라졌다

길이 길이었던 곳으로

계단이 계단이었던 곳으로

우리는 내려갔다

내려가도 내리막이었다

멀리서 벼랑을 때려대는 파도는

몇천 년이고 그래왔다는 듯이

파도였다


우리는 계속 계단을 내려갔다

내려가다가 우리는

우리가 길을 만들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별 시답잖은 생각을 다

해보기도 하였다


- <죄책감 -천부에서> 전문




죄책감은 '책임'을 갖는 마음이다. 책임이라는 것은 많은 감정을 담고 있다. 


사랑일 수도 있고, 동정일 수도 있고, 고마움일 수도 있고, 의무감일 수도 있고, 주체의식일 수도 있다.


누군가에게 책임감을 갖는다는 건 이렇게 복잡한 마음까지 책임지는 일이다.


책임은 또한 과오를 뒤돌아보는 마음과 열린 결말, 그 뒤의 가능성을 갖는다.


그때 그렇게 했어야 하는데. 그렇게 했더라면. 다음에는 이렇게 해야지. 그렇게 되지 않도록.


그러니까 죄책감은 '죄'가 중요한 게 아니라 '책'이 중요한 마음이다.


죄는 과거의 일이고 책임이 현재, 미래의 일이므로. '계속 계단을 내려'가는 일처럼 말이다.


우연이겠지만 이 시집이 이렇게 산뜻한 노란색인 것도 그 점을 생각하게 한다.


우중충하게, 무채색으로, 잿빛처럼 죄의식에 우울해할 일이 아니라


선명하게, 밝게, 강렬하게 책임감을 가지면 될 일이라고.


그러다 보면 '길을 만들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별 시답잖은 생각'이 언젠가 진짜가 되지 않겠느냐고.



이제 나는 다시 그 친구를 생각한다. 맨 정신에도 더듬거리며 횡설수설하던 그 목소리.


나에게는 그 친구의 죄책감은 예쁜 노란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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