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 가죽소파 표류기 - 제3회 문학동네 대학소설상 수상작
정지향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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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다녔던 대학교는 경기도의 끝자락에 위치해 있었다.

그곳은 우리 학교가 생긴 덕분에야 겨우겨우 군에서 시로 승격된, 아주 작은 도시였다.

학교에 놀러온 다른 학교 친구는 이 도시 속의 학교를 보고 이렇게 말했다.

"한적한 곳 한가운데에 따로 설치된 영화 세트장 같아."

친구의 마음은 고마웠지만 엄밀히 따지면 그 표현은 이 학교에게 과찬이었다.

그 학교의 일상은 영화처럼 드라마틱하지도, 스릴이 넘치지도 않았으므로.

그보다는, 정지향의 장편소설 <초록 가죽소파 표류기> 속 '고아의 도시'가 더 적절한 표현일 것이다.


이 책이 나한테 더 가까울 수밖에 없는 이유는, 이 고아의 도시를 나는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학교는 원래는 서울에 있는 대학교의 분교였고, 

나중엔 서울의 본교로 통합되면서 본교에도 있던 분교의 과는 주르르 폐과되었다.

뉴스의 한 장면으로 스쳐지나가는 이런 일들로 인해 학교는 내가 갓 입학했을 때보다 하루하루 황량해졌다.

우리 과는 분교에만 있던 과였으므로 폐과의 위기는 면했지만 전공 수업 중 다수가 본교에 개설되면서

자취생과 기숙사생들은 하나둘씩 짐을 챙겨 통학을 택했다.

나의 본가는 도저히 통학을 할 수 없는 곳에 있었으므로 선택의 여지 없이 자취를 해야했다. 

굳이 방학까지 기다리지 않아도, 주말만 되면 고요하고 나른해지던 그 자취촌은 아직도 가끔 생각이 난다.



자연재해를 입어 폐허가 된 것처럼 텅 빈 자취촌 골목 곳곳에 편의점들만 방공호처럼 덩그러니 남아 이십사 시간 내내 불을 밝히고 있었어. 새벽이면 골목을 돌며 아이들이 내놓은 술병을 주워모으던 할아버지들도 사라져버렸어.
-14쪽
 


이렇게 이 소설에서 중요한 공간적 배경을 완벽히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었기 때문에 

더 빨리, 더 깊게 이야기를 흡수했던 것 같다.

특히 공감이 되다 못해 소름까지 돋았던 부분은 바로 여기다.



내 방은 말이야, 보증금 오백에 월세 삼십오짜리야. 어린 왕자는 어른들이 집의 가격만을 궁금해한다고 투덜댔잖아? 그 집이 붉은 벽돌로 지어졌는지, 제라늄이 피어 있는지, 비둘기가 날아다니는지 따위엔 관심이 없다고. 하지만 한국에서는 그런 풍자가 통하질 않지. 지방 대학가의 오백에 삼십오짜리 자취방이라고 하면 누구라도 정확하게 그 풍경을 떠올릴 수 있으니까.
-41쪽



나는 대학교를 다녔던 사 년 동안, 이 년은 기숙사에서 살았고 다음 이 년은 자취를 했다. 

내가 이 년 동안 살았던 그 자취방이 바로 보증금 오백에 삼십오짜리였다.

자취촌에서 약간 외진 곳에 있지만 햇볕이 잘 들어서 선택했던 그 방에서 나는 스물 둘, 스물 셋의 나이를 보냈다.

웃음도 많았고 그만큼 고민도 많았던, 그런 나이를 보낸 그 방을 약 팔 개월 뒤에 소설 속에서,

그것도 촌철살인으로 던지는 말 속에서 다시 만난 기분이란.

소설 속 화자가 더욱 반갑기도 하고, 누구라도 그 풍경을 떠올릴 만한 방에서 보낸 시간들이 떠올라서

몇 번이고 저 문장을 다시 읽었다. 이런 이유로, 이 책은 정말이지 내게 친근했다.

 

채 열 장을 넘기지 않았을 때 이미 소설 속 화자는 내 방 근처에서 자취하며 조용히 소설을 쓰던 동기가 됐고

요조는 술자리에서마다 곧 피디가 되면 어떤 형식의 다큐를 찍을지 지치지도 않고 설명하던 과 선배가 됐다.

민영도 그렇게 먼 인물은 아니었다. 나도 유럽여행을 갔을 때, 내가 소설 속 화자만큼의 용기가 있었다면 

페이스북 친구를 맺자고 했을 만큼 매력적인 친구들을 만난 적이 있으니까.

그러니까 말하자면, 이 세 명은 정말 내 주위에 하나쯤 있는 인물들이라는 것이다.

모든 캐릭터가 어딘가에, 그것도 멀지 않은 곳에 꼭 있을 것처럼 그리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자칫하면 뻔하고 진부하고 아무런 특색도 없어서, 다시 찾고 싶지 않을 것 같은 캐릭터가 될 테니까.

누구든지 공감할 수 있게, 그러면서도 누구와도 다른 매력을 가진 캐릭터를 만들어내는 것은 

온전히 작가의 능력에 의존한다. 예를 들면 짧은 대화로 두 사람의 성격이 바로 드러나게끔 하는 것.



-알겠다. 우리 엄마는 양호선생님인데, 나를 양호실에 온 아픈 애들처럼 대했다, 이렇게 말하면 소설이 시작되는 거냐?
-응. 좋다.
-그럼 네 트라우마는 뭔데?
-우리 엄마는 양호선생님도 아닌데, 나를 친구따라 양호실에 온 애처럼 대했다는 거.
요조가 피식거렸지.
-근데 엄마는 나한테 사과도 안 하고 죽었어.
요조는 아무렇지도 않게 나를 쳐다봤지. 엄마가 죽었다고 말할 때마다, 사람들은 왠지 미안한 표정을 짓곤 했거든. 하지만 요조는 그러지 않았어. 나는 그가 마음에 들었어.
-33쪽



소설에서 대사가 중요한 이유는 인물을 가장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요소이기 때문이다.

영상으로 만든다면 30초도 걸리지 않을 이 대화에서, 화자의 상처와 그 상처를 바라보는 요조의 태도,

그리고 그 태도가 마음에 든다고 하는 화자의 성격까지 모두 볼 수 있다.

위에서 요조와 화자를 보여주는 것이 묘사라면, 아래에서 민영을 보여주는 것은 세 문장의 서술이다.



내가 안쓰러워하는 표정을 지었는지 민영이 덧붙였지.
-나는 괜찮아. 충분히 사랑받았거든.
민영은 내게 눈을 맞추고 고개를 끄덕이면서 또박또박 말했어. 그애는 진심을 손에 잡히는 물건처럼 사용할 줄 알았지. 그럴 때면 의심이 많은 나 역시도 그애에게서 그것을 건네받을 수밖에 없었어.
-53쪽



이 세 명의 인물은 화자의 원룸 안에서 말 없이 표류하는 것 같지만, 이처럼 인물에 대한 묘사와 서술이 착실히

이어져서 인물마다 숨결이 생기고 눈빛이 생긴다. 

문장 하나하나를 지날 때마다, 작가가 인물에게 얼마나 애정을 가지고 있는지도 알 수 있었다.  

나 또한 이야기를 따라가면서 세 명의 청춘들에게 그만큼의 애정이 자라고, 

그들이 각자의 자리를 찾아가는 결말까지 지켜보게 된다.

물론 그곳도 그들의 영원한 자리는 아닐 것이다. 

어딘가 한곳에 뿌리내리기에, 그들은 너무나 매력적인 가죽소파들이니까.

긍정의 의미를 가진 초록색의 가죽을 뽐내면서, 어디까지고 표류할 수 있는 게 그 세 명이니까.



우리 과의 소설 수업에서도, 딱 봐도 우리 학교 자취촌을 배경으로 우리 과 사람들을 인물로 내세운 것 같은

소설을 합평작으로 냈던 동기들이나 선배들이 몇몇 있었다.

그들의 소설은 열이면 열 혹평을 들었다. 그 소설을 합평하는 모든 사람들이 다 알고 있는 공간과 인물로 

그 이상의 이야기를 끌어내지 못해서 신변잡기로만 그쳤다는 것이 혹평의 주된 이유였다.

특히 나는 이런 소설을 더욱 싫어하는 편이었는데, 이런 소설들은 작가가 더 새로운 공간과 인물에 대한 연구 없이

쉽고 편하게만 쓰려고 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우리의 대학가 자취촌을 '내리'라고 불렀는데,

"그러니까 이 소설은 전형적인 내리문학이네요." 라는 게 내가 합평을 끝맺을 때 자주 내린 결론이었다.


그리고 내가 <초록 가죽소파 표류기>에 대해서 할 수 있는 한 줄의 평가는,

누구의 이야기기도 하지만 정지향이 아니면 누구도 쓸 수 없는, '최고의 내리문학'이라는 것이다.

조용한 대학가의 자취촌을 배경으로 해도 훌륭한 소설이 나올 수 있다는,

그것은 오로지 작가의 역량에 달렸다는 점을 새롭게 알게 되었다.

특히 작가가 나와 또래이기도 해서, 어쩐지 소설 쓰기에 대한 의지도 새삼 다지게 되는 밤이다.

여전히 내리에서 글을 쓰는 후배들과 동기들의 가죽소파는 어떤 색일지 상상하며 이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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