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선적 시간관을 가진 사람에게는 나나보조의 이야기가 오래전 과거를 되새기며 세상의 내력을 밝히는, 역사의신화적 전승으로 들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순환적 시간관에 따르면 이 이야기는 역사이자 예언이요, 다가올 시간에 대한 이야기다. 시간이 회전하는 원이라면 역사와예언이 만나는 지점이 있다. 으뜸사람의 발자국은 우리 뒤의 길에도 있고 우리 앞의 길에도 있다.
인간의 모든 힘과 약점을 지닌 채 나나보조는 최선을 다해 으뜸명령을 따랐으며 새 보금자리에 토박이가 되려고 노력했다. 그의 뒤를 따라 우리도 여전히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명령은 너덜너덜해졌으며 많은 조항이 잊혔다. - P304
하지만 순환적 시간관을 입증하기라도 하듯 과학과 기술은 나나보조의 접근법을 받아들여 자연에서 설계 모형을 찾고 생체모방 설계를 활용함으로써 토착과학을 따라가기 시작했다. 땅에 대한 지식을 존중하고 땅의 수호자들을 보살핌으로써 우리는 토박이가 되어 간다.
나나보조는 길고 튼튼한 다리로 동서남북 네 방향을 누볐다. 그런데 우렁차게 노래하다가 새의 경고 울음소리를 듣지 못하는 바람에갈색곰님의 공격을 받고 말았다. 그 뒤로는 남의 영역에 접근할 때는온 세상이 제 것인 양 섣불리 들어서지 않았다. 그는 숲 가장자리에 가만히 앉아 초대를 기다렸다. - P3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