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란 뉴런과 지성이 우회하는 행위다. 독서는 눈에 들어온 텍스트가 전달해주는 직접적인 메시지뿐만 아니라 독자의 추론과생각에서 비롯된 예측 불허의 에두름으로 인해 보다 풍성해진다.
나는 내 아이들이 살고 있는 구글 세상을 바라보면서 독서의이런 독특한 측면에 대해 적잖은 근심을 느끼기 시작했다. 어마어마한 양의 정보가 순식간에 나타나는 컴퓨터 텍스트로 옮겨가면서 독서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건설적 요소가 변화하고 위축되기 시작하는 것 아닐까? 다시 말해 디지털 텍스트가 대부분 그러하듯 겉모습만 완벽한 시각적 정보가 거의 동시다발로 제시될때 과연 그 정보를 보다 추론적, 분석적, 비판적으로 처리할 수있는 충분한 시간과 동기가 생겨날까? 그러한 맥락에서 이루어지는 독서 행위는 획기적으로 다른 것일까? 기본적인 시각적, 언어적 프로세스는 동일해 보이지만 더 많은 시간을 들여 증거를 제시하고 분석을 행하는 창조적 이해의 측면은 축소되어버리는 것아닐까? 아니면 하이퍼링크된 텍스트를 통해 잠재적 추가 정보를풍부하게 얻을 수 있기 때문에 아이들의 사고 발달에 오히려 도움이 될까? 아이들이 멀티태스킹을 수행하고 무한대로 확장할 수있는 정보 흡수 능력을 키워나가더라도 그들 안에 독서의 건설적인 차원은 유지될 수 있는 것일까? 다양한 정보처리 방법을 배울수 있도록 지금부터라도 텍스트가 제시되는 다양한 방식에 따라그것을 읽는 방법을 명시적으로 가르쳐야 하지 않을까?  - P49

이러한 의문 속에서 나는 길을 잃어버리고 만다. 그런데 실제로 독서를 하면서도 길을 잃고 방황하는 경우가 흔히 생긴다. 이러한 연상적 측면은 부정적인 것이 아니라 독서의 핵심인 생성적장점의 한 축이다. 150년 전 찰스 다윈은 창조에서 비슷한 원리를 발견했다. 즉 유한의 원리로부터 ‘무한한‘ 형태가 진화한다는것이다. "그토록 단순한 시작으로부터 너무나도 아름답고 너무나도 훌륭한 무한히 많은 형태들이 진화했으며 그 진화는 아직도계속되고 있다. " 문자 언어도 마찬가지다. 생물학적으로 지적으로 독서는 인류가 ‘주어진 정보를 뛰어넘어 너무나도 아름답고훌륭한 무한히 많은 사고를 창조하게 해준다.  우리는 이제 지금까지와 다른 새로운 방법으로 정보를 습득하고 처리하고 이해하는 시대로 나아가고 있다. 그렇지만 독서의 이 본질적인 장점만은 잃어버리지 말아야 한다.
26 - P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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