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사랑한 헤세, 헤세가 사랑한 책들
헤르만 헤세 지음, 안인희 엮음.옮김 / 김영사 / 2015년 1월
평점 :
품절


 

 

 

  책을 읽고 스스로 글을 쓴 지 3년이 넘었다. 어느 날, 읽었던 책을 다시 보았을 때 익숙하면서 동시에 낯선 느낌을 받았고 '이 책은 완전히 내 것이 아니구나!' 라는 생각에 책을 읽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 초등학생의 독후감보다는 수준 높다고 생각하였기에 나는 이 글들을 '서평'이라고 불렀다. 책을 읽고 서평을 쓰는 일을 반복하다보니, 대부분의 서평들이 단순한 글에 지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평을 쓰는 것은 나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나는 어떻게 서평을 쓸 수 있을까?
  ≪우리가 사랑한 헤.세. 헤세가 사랑한 책.들.≫은 우리에게 <데미안>,<수레바퀴 아래서>로 잘 알려진 헤르만 헤세가 쓴 3천여편의 서평 중 73편을 엮어 만든 책이다. 헤세는 카프카, 도스토옙스키, 톨스토이 등 고전 문학의 대가들의 작품은 물론 공자, 노자의 작품까지 동·서양을 막론하고 독서를 즐겼다. 살아 생전 헤세는 책더미에 파묻혀 있을 정도로 책에 대한 사랑이 넘쳤던 작가였다. 

 

 

 

이 세상 모든 책들이 그대에게 행복을 가져다주지는 않아.
하지만 가만히 알려주지. 그대 자신 속으로 되돌아가는 길을.
_헤르만 헤세

 

  헤세는 수많은 서평과 에세이를 통해 많은 사람들에게 독서의 안내자 역할을 했다. 이 모든 것은 책에 대한 그의 사랑에서 비롯되었음을 알 수 있다. 단순히 책의 줄거리, 특징, 그리고 작가에 대한 평가만이 담겨 있는 것이 아니라 헤세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모든 경험을 끌어내 책과 작가를 바라본다. 그의 서평에서 묻어나오는 책과 작가에 대한 애정들은 서평을 읽는 이들이 책을 읽고 싶어하도록 유발한다.
  그래서  ≪우리가 사랑한 헤.세. 헤세가 사랑한 책.들.≫을 읽는 내내 조금은 후회했다. 이 책의 목차를 미리 읽어보고, 그에 맞게 미리 책을 읽었더라면 그의 서평을 조금 더 음미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훗날, 어떤 책을 읽어야 할지 고민된다면 이 곳에 소개된 책들을 먼저 집어 읽어도 될 것 같다.

   ≪우리가 사랑한 헤.세. 헤세가 사랑한 책.들.≫에서 헤세 스스로가 자신의 책에 대한 서평을 썼다는 것에 가장 눈길이 갔다. 가끔 작가들이 자신에 대한 책에 직접 평을 쓸 때, 스스로 도취된 경우를 본 적이 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에게 도취되어 좋은 평가를 하는 경우가 있다.) 자신에 대한 애착이 그대로 책으로 전달되어 독자들에게 '내 책은 좋아!' 라는 무언의 강요를 하기도 하는데, 헤세는 비평가로서의 헤세와 작가로서의 헤세를 구분지어 평가한다. 
  헤세의 대표작인 <데미안>이 세상에 처음 나왔을 때 헤르만 헤세라는 이름이 아닌 에밀 싱클레어라는 이름으로 출간했다. 전쟁이 끝난 다음 정신적으로 방황하던 젊은이들은 이 작품이 자기들과 같은 젊은이가 쓴 작품이라고 믿게 만들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곧 헤세의 작품이라는 것이 밝혀지고 그는 <데미안>에 대해 말을 아꼈다. 자신 스스로를 비평가, 작가로 구분지어 이야기하면서 독자들이 그 작품에 대해 판단하도록 만드는 점이 인상깊었다.

 
평론가는 멋대로 작가를 분석할 권리를 지니며, 또한 작가에게 중요하고 거룩한 것을 멍청한 짓이라고 선언하거나 공개토론의 장으로 끌어낼 권리도 있다. 하지만 평론가의 권리는 여기까지다. 평론이 캐내지 못하는 비밀들에 대해서는, 예나 지금이나 작가에게도 혼자서만 아는 작고 소중한 비밀을 지킬 권리가 있다. _p.192

 

 

 

    ≪우리가 사랑한 헤.세. 헤세가 사랑한 책.들.≫를 읽으면서 아무래도 나의 서평에 대해 다시 생각할 수 밖에 없었다. 처음 책을 소중히 기억하고자 가볍게 시작했던 서평 쓰기는 어느 순간 나에게 묵직한 글쓰기로 다가왔다. 책을 재밌게 즐길 수 있던 행위가 오히려 책을 즐기는 데에 방해가 되는 것이 아닌가 싶은 걱정이 들기도 했다.
  
 그래서 다시 새로이 마음을 먹기로 했다. 최대한 힘을 빼고 책을 사랑하는 마음을 더해 서평을 쓰자고. 서평을 쓰는 것에 대해 부담을 느낀 지금  ≪우리가 사랑한 헤.세. 헤세가 사랑한 책.들.≫를 읽게 되어 다행이다. 헤세가 서평을 통해 책과 작가들에 대해 애정을 보냈듯이, 나도 나만의 서평을 통해 책과 작가들에게 애정을 보내면 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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