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의 거품 펭귄클래식 52
보리스 비앙 지음, 이재형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웅진)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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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프랑스 영화 <마담 프루스트의 비밀 정원>을 보고 화려한 색채의 영화가 가진 매력에 빠진 나는 자연스럽게 <무드 인디고>를 선택했다. 이미 포스터부터 형형색색을 자랑하고 있었으니까.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영화 속으로 빠져들었다. 현실에서는 일어날 수 없다고 생각했던 일들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이 영화는 ‘사랑’이라는 감정이 가진 색을 다채롭게 표현한다. 한 남자가 한 여자를 만나 사랑에 빠져 자신의 모든 것을 거는 삶을 아주 빠른 속도로 전개하면서.


영화를 본 지 시간이 훨씬 지나 원작 소설을 읽게 되었다. 영화의 장면은 머릿속에서 잊힌지 오래여서일까. 원작 소설 《세월의 거품》 속 콜랭의 삶은 새롭게 다가왔다. 보리스 비앙은 평생 살 정도로 부유한 돈을 가져 일을 하지 않아도 되는 콜랭의 삶에 단 한 가지를 부여하지 않는다. 그의 삶에 유일하게 없는 것은 ‘사랑’. 친구 시크가 괜찮은 여자와 사랑에 빠졌다고 이야기하자마자 콜랭은 자신도 사랑에 빠지고 싶다며, 자신의 삶의 목표로 삼는다. 과연, 그는 화려했던 자신의 삶처럼 아름다운 색채의 사랑을 할 수 있을까?



“난 사랑을 하고 싶어. 넌 사랑을 하고 싶어 해. 그 역시 ‘마찬가지’야. 우리들도, 당신들도 그러고 싶어 해. 그들 역시 사랑에 빠지고 싶어 하지…….” 



경제적인 어려움 없이 재즈와 쾌락 속에 살아가지만 어딘가 공허한 삶을 살고 있던 콜랭은 친구 시크를 따라 간 파티에서 매력적인 클로에를 만나게 된다. 그녀를 처음 보자마자 사랑에 빠진 그는 그녀와 데이트하고 싶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설레는 첫 데이트를 한 콜랭과 클로에는 결혼을 하게 되고, 신혼여행을 떠나게 된다. 눈이 쌓인 그곳에서 하룻밤을 보낸 클로에는 이내 폐에서 수련이 자라는 병에 걸리게 된다. 콜랭은 자신의 사랑 클로에를 살리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치고자 한다.



《세월의 거품》은 여느 연애소설과는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현실적이면서도, 현실적이지 않은 보리스 비앙만의 비유적인 묘사들은 소설의 매력을 한층 끌어올린다. 콜랭은 클로에를 만난 순간부터 자신의 삶 속 가장 중심에 그녀를 놓는다. 모든 감각은 클로에를 향해 있다. 그래서 클로에 앞에서 어쩔 줄 모르는 콜랭의 설레는 첫 데이트는 그 무엇보다 깊은 인상을 남긴다. 



첫 데이트에서 만나 인도를 따라 걷던 그들의 앞에 작은 장밋빛 구름 한 조각이 하늘에서 내려온다. 따뜻하고 계피 향을 넣은 설탕 냄새가 나는 구름 안. 두근거리는 첫 데이트를 보리스 비앙은 초현실적으로 그려낸다. 마치 구름 위에 떠 있는 기분이 이런 걸까, 하고 상상하던 그 설렘을 보리스 비앙은 자연스럽게 소설 안에 배치한다. 다른 사람들의 시선은 신경 쓰지 않고, 오로지 두 사람만 있는 이 느낌을. 


그러나 이 아름다운 사랑의 끝은 그리 좋지 않은 결말을 보여준다. 찬란한 색을 가지고 있던 클로에와 콜랭의 사랑은 조금씩 회색빛으로 변해간다. 클로에의 병과 그녀를 지키기 위한 콜랭의 노력. 보리스 비앙은 클로에의 병을 낫기 위한 처방으로 그녀 주변에 형형색색의 꽃들을 배치한다. 꽃에 둘러싸인 클로에의 모습은 상상만으로도 아름답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녀의 죽음이 다가오고 있음을 독자들에게 은은하게 암시한다. 



나는 늘 그녀의 베개를 가지리라. 우리는 저녁에 베개를 갖고 서로 장난치리라. 그녀는 내 베개에 속을 너무 많이 집어넣었다고 생각한다, 나의 베개는 그녀의 머리 밑에서 늘 둥근 모양을 유지한다. 그리고 나는 나중에 그 베개를 가지고, 베개에서는 그녀의 머리칼 향기가 풍긴다. 나는 그녀의 머리칼에서 풍기는 은은한 향기를 이제 더 이상 느끼지 못하리라. 


오로지 클로에만을 위한 콜랭만의 사랑의 색. 그 농도가 짙었던 만큼 소설은 깊은 여운을 남긴다. 

수많은 사람들의 사랑의 색이 궁금해질 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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