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보니 삶은 아름다웠더라 - 모든 어른 아이에게 띄우는 노부부의 그림편지
안경자 지음, 이찬재 그림 / 수오서재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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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우리는 무엇을 그릴까 생각한다.

소재를 찾고 이야기를 나누고,

남편은 그림을 그리고 나는 글을 쓴다.

화가도 아니고 작가도 아닌 우리가.




좋아하는 일을 하는 데에는 나이가 대수일까. 가끔 나이 드신 분들이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 문득 나 스스로가 너무 많은 걱정을 가지고 살고 있지 않은지 생각하게 된다. 그런 일을 할 시간적 여유가 없을뿐더러 끝까지 좋아할 자신도 없다는 생각으로 미룬 일들이 얼마나 많은지 떠올린다.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조차 알 수 없는 일들을, 남들도 하기에 따라 하는 일들을 하고 있자면 더욱이 그런 생각들이 몰려온다. 어떤 일을 좋아하고, 그 마음을 계속 유지하려면 어떻게 해야 될까?


《돌아보니 삶은 아름다웠더라》는 한국으로 돌아간 손주들이 그리워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기 시작한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사랑이 담긴 책이다. 브라질로 이민을 갔던 이찬재 할아버지와 안경자 할머니는 함께 살던 손주들을 한국으로 보내고, 아들의 권유로 그리기 시작한 그림을 인스타그램에 매일 업로드하기 시작했다. 'For AAA'라는 손주들의 이름을 사인으로 사용하며 손주들을 향한 사랑이 담긴 할아버지의 그림은 전 세계 사람들의 주목을 받았다고 한다. 그래서였는지 책을 집어 든 순간부터 따뜻함이 전해져왔다, 이 일을 좋아하고 사랑하는 마음이 느껴졌기에.






문득 너희 목소리가 듣고 싶은 순간이 찾아온다.

그럴 땐 이렇게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쓴다.

/ p. 29 '그리운 순간' 중에서



이찬재 할아버지의 그림과 안경자 할머니의 글에는 손주들이 많이 등장한다. 사이좋게 학교로 걸어가는 모습,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모습, 할아버지에게 안겨있는 모습 등등 손주들을 흐뭇하고 기분 좋게 바라보는 할아버지, 할머니의 얼굴 표정이 머릿속에 그려질 정도로. 맞벌이 부부였던 부모님을 대신해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는 나와 내 동생을 애지중지 키우셨다. 아침에 일어나 따뜻한 밥 한 끼 먹여 학교에 보내고, 하교 후엔 출출할까 봐 손수 간식을 만들어 주시며 말이다.


함께 11년을 살고, 나와 동생의 교육 때문에 우리 가족은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품을 떠났다. 그리 멀리 가지는 않아 주말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찾아뵈었지만,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집은 이전보다 더 고요하고 조용해진 느낌이었다. 예전에 함께 살았던 곳이라고 믿지 못할 만큼, 두 분만의 냄새만이 느껴질 뿐이었다. 그래서 《돌아보니 삶은 아름다웠더라》를 읽으며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의 모습이 떠올랐다. "다음 주에 또 올게요,"라며 차에 앉아 작별 인사를 할 때, 두 분의 표정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그 헛헛한 마음이 가득한 얼굴이.






"할머니도 할아버지도 죽으면 여기에 묻힐 거야."

그냥 그렇게 말했어. 아니 말하고 싶었단다. 어린 손자들에게 죽음이라는 걸 말해주고 싶었다. 그날은 하늘이 맑고, 사람들은 조용조용 움직였고, 묘지마다 꽃들이 아름다웠기에.

/ p. 281 '성묘의 날에' 중에서



벌써 돌아가신지 6년이 되었다. 외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외할아버지와 5년을 함께 살았다. 이전보다 많이 쇠약해진 할아버지께 식사를 차려드리고, 간식을 챙겨드렸다. 어릴 적 나를 보살폈던 할아버지는 어느새 커버린 내게 보살핌을 받고 계셨다. 더 약해진 당신의 곁을 지키기 위해 병원 소파에서 시간을 보내기도 했고, 매일같이 내가 누구냐는 질문을 던졌다. 다른 건 몰라도 내 이름만은 불러주던 외할아버지셨기에 2년이 지난 지금도 떠올리면 조금은 아픈 기억이 되었다.


《돌아보니 삶은 아름다웠더라》는 점차 쇠약해져가는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생각이 담겨있다. 사랑하는 손주들이 다 클 때 즈음에 곁에 남아있을 수 있다고 확신할 수 없는 애석한 나이에 대한 이야기들은 책을 읽는 나의 기억을 톡 하고 건드린다. '늙음' 과 '죽음'에 대하여 다시 한번 생각하도록 만든다.






갈라파고스의 별들은 인생을 가르쳐준다. 여기 와서 할아버지는 문득 인생을 돌아보게 되었다. 산다는 것이 힘들고, 괴롭고, 피곤한 것의 연속이라 생각했었는데, 이제 돌아보니 아름다웠더라. 할아버지는 여태 그걸 몰랐는데 별들이 가르쳐주었어.

/p. 83 '별들이 가르쳐주었어' 중에서



할아버지, 할머니와 조금 더 많은 대화를 나눴더라면 나는 이런 이야기를 다 들을 수 있었을까. 그때는 너무 어렸던 내가 할아버지, 할머니의 말을 모두 알아듣고 그 마음을 헤아릴 수 있었을까. 《돌아보니 삶은 아름다웠더라》는 나의 할아버지, 할머니가 내게 해주지 못했던 말들을 모두 담아 사랑스러운 손길로 마음을 위로해준다. 당신들도 그런 마음으로 나를 보살펴주고 키웠을 것이라고, 감히 추측해본다. 그리고 그 마음을 받아 찬란한 삶을 꾸려가고자 한다. 좋아하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우리의 이야기를 한 권의 책에 담고 보니 문득 지나온 인생이 보이더라. 어떤 때는 눈앞에 놓인 하루하루 살아내는 게 무척 힘들고, 벅차고, 피곤하기만 했을 때가 있었지. 그런데 여기 서서 돌아보니까 모든 순간이 아름다웠더라. 찬란했더라. 참으로 삶은 아름다운 것이었더라. 너희에게 꼭 이 말을 해주고 싶었어.

/ p. 296



앞으로도 두 분이 사랑이 담긴 편지를 써주었으면 좋겠다. 삶에 지쳐 상처받고 힘든 어른 아이들을 위해. 그들이 위로받고 찬란한 삶을 꿈꿀 수 있도록.




우리는 이곳에서 늘 그랬듯이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쓴다.

어제처럼 오늘도,

그리고 오늘처럼 내일도 그렇게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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