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하루가 작별의 나날 비채 모던 앤 클래식 문학 Modern & Classic
알랭 레몽 지음, 김화영 옮김 / 비채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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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힘들거나 지칠 때, 마음이 편안해지는 곳을 찾게 된다. 나의 경우에는 다른 사람들에 비해 '집'을 자주 찾게 되는데 오죽하면 '힘들다'라는 말 대신 '집에 가고 싶다'라는 말이 습관처럼 입에 배어 있다. 그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오로지 나 자신을 생각하고 추스를만한 곳으로는 집이 최고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아늑하고 따뜻한 집을 떠올리기만 해도 저절로 마음이 편안해지는 기분을 받기도 한다.
  더구나 집이라는 공간을 떠올리면 자연스레 집에 있는 모든 기억과 추억들이 함께 연상되는 느낌을 받는다. 사진첩을 보는 것처럼, 머릿속 한 편에서는 집에 얽힌 기억들이 속속히 떠오른다. 맛있는 음식이 차려진 저녁 식사, 가족들과 함께 즐기는 주말의 저녁, 외출 후 돌아오면 항상 반겨주는 반려견…… 그래서 때로는 '집'은 그 자체로 기억의 조각들을 품고 있는 하나의 상자처럼 느껴진다.

  딴 사람이 들어 살고 있었구나, 우리 집에. 그렇게 생각하자 정말이지 견딜 수가 없었다. 얼마 동안이나 그 집이 우리 집이었지? 그 집으로 이사 갔을 때 나는 여섯 살이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는 스물다섯 살이었고. 그렇게 따져보니 한 이십 년 살았던 것 같다. 그러니까 어머니가 돌아가신 지 이십오 년도 넘었다. 그렇대도 그 집은 우리 집이라고밖에 달리 말할 수가 없다. (p. 18)

  알랭 레몽은 《하루하루가 작별의 나날》을 통해 집과 관련한 자신의 유년시절의 기억을 풀어낸다. 가장 친한 친구 이브를 통해 오래전 떠난 트랑의 옛집에 관한 소식을 듣게 된 알랭 레몽은 누군가 살고 있다는 사실에  섭섭함을 느끼게 된다. 10남매를 둔 가정에서 자란 그는 12명의 가족이 함께 옹기종기 살았던 유년기를 떠올리게 된다. 막 전쟁이 끝난 이후의 베이비 붐 세대를 대표하는 알랭 레몽은 그의 유년기를 자세하고 섬세하게 서술하는데, 마치 한국의 6·25 전쟁이 끝난 직후의 모습을 보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들과 더불어 트랑에는 돌연 새 시대가 도래했다. 우리는 현대적이 된 것이다. 이제 더는 궁벽한 곳에 처박힌 촌동네가 아닌 것이었다. 시커멓고 기다란 도관들이 차츰 마을 한복판으로 뻗어 들어옴에 따라 하루가 다르게 발전의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p. 63)

  알랭 레몽은 자신의 유년기를 서서히 털어놓으면서, 그것은 작별의 시간이었노라고 고백한다. 삶에서 죽음으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인간은 사랑하는 모든 것들과 작별할 수밖에 없음을 이야기한다. 그러면서 그는 '나의 모든 하루하루는 작별의 나날이었다'라는 샤토브리앙의 <무덤 저 너머의 회상>의 한 대목을 떠올린다. 그는 성숙과 성장의 과정을 과거와의 작별하는 것과 같다고 받아들인다.
 
  그러나 우리는 커서 나이를 먹고 세상을 발견한다. 큰 아이들은 일을 하고 알리스에게는 벌써 애들이 있다. 그리고 가장 어린 축인 우리는 조금씩 달라진 세상과 만난다. 각자는 기숙사 혹은 다른 곳에서 친구들을 사귄다. 처음으로 해보는 여행들, 예민해지는 의식. 돌연 중요해진 정치적 감각, 타 문화나 제3세계 혹은 당시 유행하던 표현처럼 세계의 기아문제 쪽으로 열리는 관심. 문득 트랑이 형편없이 작아 보인다. 지평선이 폭발하고 사방의 경계가 허물어진다. (p. 103)

  그의 이런 생각은 함께 실려있는 <한 젊은이가 지나갔다>에서도 같은 맥락으로 그려진다. 그는 <한 젊은이가 지나갔다>를 통해 자신의 청춘의 격정을 그려낸다. 알랭 레몽은 자신의 젊은 날의 초상을 이 글 안에 담아낸다. 일찍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과 어머니, 우울증을 앓고 있는 동생 아녜스에 대한 연민과 사랑 그리고 신부가 되고 싶었던 자신의 열정과 또, 반대로 신부가 되기를 포기하게 만든 젊은 날의 이야기들을 풀어낸다. 그러면서 그는 청춘의 격정을 '젊은이'라고 지칭하며, 또 새로운 삶을 향해 나아갈 것을 암시한다. 젊은이가 지나갔으니 다음에 또 누군가 지나가지 않겠는가.
  '집'을 통해서 유년시절의 기억과 청춘, 그리고 방황까지 그려낸 알랭 레몽. 담담한 듯 툭툭 내뱉지만 문장 하나하나에 생각할 것이 참 많았던 소설이다. 그의 솔직하고 담백한 고백의 글들은 기억 속 어딘가에 잠재워져 있는 그 아련한 느낌을 다시 꺼내게 만들었다. 때로는 특별한 기교가 없어도, 자신의 생각을 고스란히 담은 문장들이 감성을 톡, 하고 건드리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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