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 좀 쉬며 살아볼까 합니다
스즈키 다이스케 지음, 이정환 옮김 / 푸른숲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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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어느 날 갑자기 평소와 다른 하루를 시작해야 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타의에 의한 것도 아니며 그렇다고 해서 자의에 의해서 그런 것도 아니다. 그러니까, 어느 날 갑자기 내 신체의 일부를 뜻대로 움직일 수 없게 된다면, 나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설마 했는데…… 정말 그런 날이 왔다. 말을 할 수 없고 손가락을 움직일 수도 없다. 시야는 흐물흐물 일그러져 보인다. 보행에는 지장이 없는 듯하다. 아, 이건 분명히 뇌의 문제다. (p. 27)

  언제나 같은 일상을 보낼 것이라고 믿었던 저자 스즈키 다이스케는 어느 날 찾아온 몸의 이상 신호에 당황스러워한다. 며칠 전부터 보였던 전조증상 중 하나였던 쉽사리 잘 움직이지 않던 손가락을 대수롭지 않게 여긴 스즈키 다이스케는 자신에게 찾아온 이 변화에 난감한 모습을 보인다. 그도 그럴 것이, 살면서 그 누가 "나는 내일 큰 병에 걸릴 거야!"라고 장담하면서 하루를 보낼까. 갑작스레 찾아온 뇌질환에 당황하면서도 스즈키 다이스케는 자신의 투병기, 《숨 좀 쉬며 살아볼까 합니다》를 유쾌하게 적어내려 간다.

  "그래, 이거야!" 하고 나도 모르게 손뼉을 쳤다(실제로는 손뼉을 치고 싶어도 왼손이 자유롭지 않아서 오른손으로 허공을 가를 뿐이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라도 납득을 할 수 있는 이유는 내가 장애의 당사자이기 때문이다. 아, 이런 사실을 다른 사람들에게 어떻게 전달할 수 있을까! (p. 42)

  왼쪽 시야를 잃어버리고 타인과 정상적으로 대화하기 위해 노력하고 움직이지 않는 손가락에 이름을 붙여주면서까지 움직이려고 한다. 기자이자 작가인 직업을 계속 유지하기 위해서 1만 번이 넘는 타이핑을 연습하고 또 연습한다. 스즈키 다이스케는 뇌질환이 찾아온 것에 절망하지 않는다. 누군가 보기에는 암담한 상황(기자이자 작가인 내가 손가락 하나 움직이지 못해 타이핑을 치지 못한다고 생각한다면)이라고 여기고 좌절할 수 있겠지만, 그는 오히려 기자 정신을 발휘해 많이 알려지지 않은 이 투병 기록들을 독자들에게 전한다. 
  병원에서의 투병 기록을 마치고 돌아온 스즈키 다이스케는 그동안 자신을 옭아매고 있던 규칙과 강박관념들을 벗어던지기로 한다. 오전 시간을 반드시 활용해야 되고, 밥은 꼭 정해진 시간에 먹어야 하고, 바쁜 게 좋은 거라고 여유 없이 살아가던 그였기 때문이다. 기자나 작가로서의 일을 하는 시간을 제외하고 휴식이라고 생각하며 밀린 집안일 등을 하고 있던 그는, 비로소 자신을 답답하고 힘들게 만들었던 규칙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된다.

  음식점처럼 딱 정해진 시간에 맞추어 식사를 제공해달라고 요구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런 규칙은 내가 정해 채찍질을 해왔을 뿐이다. 정말 한심하다. 눈물이 흐른다. (p. 135)

  한편 병의 흔적을 지우기 위해 열심히 물리치료를 받던 그는 자신이 취재했던, 사회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사람들을 떠올린다. 그러면서 그들을 위한 의료 복지 시스템의 구축이 너무 약하고 부실함을 꼬집어낸다. 간혹 '일본 사회는 한국 사회의 n 년 후의 모습이다'라는 말을 들을 적이 있었는데, 스즈키 다이스케가 집어낸 일본 사회의 문제가 결코 낯설게 느껴지지 않는다. 마치 머지않아 n 년 후의 한국의 모습은 고스란히 보여주는 느낌이었다.

  고령화가 진행되는 일본에서는 재활치료사들이 고령자의 퇴원과 일상생활 복귀를 돕는 일로도 힘에 부쳐서 일손이 부족한 상태라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발달장애가 있는 어린이나, 사회 적응 문제를 끌어안고 있는 사람 또는 생활이 어려운 이들에게 재활치료를 베풀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다. 하물며 의사가 '병명'을 특정하지 않으면 재활치료사들이 손을 쓸 수 없는 환경에서는 특별히 눈에 띄지 않는 가벼운 장애를 끌어안고 있는 사람은 도움을 받기가 더더욱 어렵다. (p. 75)

  《숨 좀 쉬며 살아볼까 합니다》를 읽으면서 심각한 것을 알면서도 스즈키 다이스케의 문체와 표현방식 때문에 웃음이 터졌다. 그 누가 자신의 투병 기록을 이렇게 솔직하고 유쾌하게 써 내려갈 수 있을까. 그러면서도 바쁘게 일하는 것도 좋지만 때로는 휴식 다운 휴식이 필요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한 번쯤은 숨 좀 쉬며 기지개를 활짝 펴는 것도 나를 위해 좋을 것 같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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