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한 캘리포니아의 하루 비채 모던 앤 클래식 문학 Modern & Classic
리차드 브라우티건 지음, 김성곤 옮김 / 비채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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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일 아침 꽉 막힌 고속도로 위 버스 안에서, 문이 열리자마자 발 디딜 틈 없이 사람들로 꽉 찬 지하철에 발을 들이면서, 나는 생각했다. 무엇을 위해 우리는 이렇게 바쁘게 하루를 시작해야 하는지. 바쁘게 돌아가는 도심에서 하루를 시작하기도 전에 지쳐버린 나는 때로는 조용하고 평온한 곳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알람 소리에 강제로 일어나는 것이 아닌 창문으로 햇살이 비치면 서서히 눈이 떠지는 아침을 맞이하는 삶. 아침을 거르거나 인스턴트로 대충 끼니를 때우는 것이 아닌 건강한 아침 밥상을 차려 여유롭게 꼭꼭 씹어 먹는 삶. 그리고 다급하게 모니터 앞에 앉아 꽉 찬 하루의 스케줄을 확인하는 것이 아닌 오전 대부분을 햇빛의 따뜻함을 느끼며 한적한 길을 거니는 삶. 그러나 우리는 무엇 때문에 이 모든 것을 포기해야 되는지 알지 못한 채 바쁘게 살아가고 있다.
  ≪완벽한 캘리포니아의 하루≫는 제목부터 자유로운 느낌을 자아낸다. 햇빛이 쨍쨍 내리쬐는 캘리포니아에서 한적한 일상을 보낼 것만 같은 느낌이다. 1962~1970년 동안 작가 리처드 브라우티건이 쓴 62편의 단편들을 모아둔 ≪완벽한 캘리포니아의 하루≫는 단순하면서도 평화롭고, 자유로운 모습의 화자들이 등장한다. 당시 시대상 아메리칸 드림으로 인해 미국의 많은 젊은이들은 허무함을 느끼며 히피문화 확산에 참여했는데, 리처드 브라우티건은 그 사이에서 과거로의 회귀를 그려낸다. 62편의 단편 중에서 잔디밭, 자연의 소재가 많이 등장하는데 이들은 목가적(농촌처럼 소박하고 평화로우며 서정적인)인 생활에 대한 그리움, 동경심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이 책의 원제는 '잔디밭의 복수(Revenge of the Lawn)'인 것을 생각한다면, 결국 그는 혼란스러웠던 사회 분위기 속에서 이전의 자유로운 삶을 그리워하는 듯한 느낌이 든다.

  캘리포니아는 우리를 필요로 했고 다른 곳에서 살고 있던 우리를 불러 모았다. 너, 너, 그리고 너를 데려갈 거야 하는 식으로. 나는 대자연이 사람들과 미뉴에트 춤을 추고, 예전에 좋았던 시절에는 나하고도 춤추었던, 유령이 나오는 곳, 태평양 연안 북서쪽에서 살다가 불려갔다. (p.33 _ '캘리포니아로 모여드는 사람' 중에서)

 62편의 단편들은 자유로운 듯하면서도 나름의 규율을 가지고 있고, 브라우티건의 상상으로 이루어진 것 같으면서도 현실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내용들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니까 62편의 단편들은 각각의 개성들을 지니고 있어 브라우티건의 생각과 느낌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작품이 있는가 하면, 그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전혀 이해하지 못할 작품들도 있다. 그렇지만 이 난해함 들은 당시 혼란스러운 사회에서 우리가 상실한 무언가를 의미하는 것 같은 느낌을 자아내기 때문에, 그 자체로 브라우티건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의미한다고 볼 수도 있다.

  우리가 맹목적으로 돈과 기계(자동차, 컴퓨터, 스마트폰 등)를 추구하다가 우리가 상실한 것이 무엇인가를 다시 한 번 돌이켜보게 한다. 잃어버린 소중한 것을 되찾고 상처 입은 영혼을 치유하며 상실한 것을 회복하자는 것. 이것이 바로 이 책이 우리에게 주는 중요한 메시지이다. (p.239 _ 작품 해설 중에서)

  그러나 브라우티건의 담백한 문장들은 작품의 개성이 어떻든 간에 모든 글에 대하여 상상하는 힘을 보여준다. 때로 나는 나의 문장으로 하여금 타인의 상상력을 자극할 수 있는 방향에 대해 생각한다. 문장의 논리적인 나열로 섬세한 묘사력에 이르는 것만이 타인의 상상력을 자극할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브라우티건은 더 기본적인 방향으로 문장을 쓴다. 타인이 알고 있을 법한 어휘와 표현을 사용하여 브라우티건은 자신만의 담백한 문장을 나열하고 더 나아가 글을 읽는 누군가가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도록 한다. 그래서 ≪완벽한 캘리포니아의 하루≫는 굉장히 담백하면서도, 상상하는 재미로 읽을 수 있는 작품이다. 나의 설명으로는 그의 문장들을 모두 설명하기는 어려워, 책을 읽으며 좋았던 부분을 발췌하며 글을 마친다.

때로 인생은 한 잔의 커피 같다. 나는 언젠가 커피에 대한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커피가 우리 몸에 좋다는 내용이었다. 우리 장기에 자극을 주니까.
(p.44 _ '커피' 중에서)
봄이 되면 젊은 남자는 환상적인 사랑에 빠진다고 한다.
시간만 넉넉하다면, 그 남자의 환상에 커피 한 잔의 공간은 있을 것이다.
(p.49 _ '커피' 중에서)
"바이올린을 배우는 남자와 새너제이의 원룸에서 같이 사는 건 정말이지 힘들답니다."
그녀가 탄창이 빈 연발 권총을 경찰에게 건네면서 한 말이었다.
(p.66 _ '핏빛 다툼' 중에서)
오늘 저녁, 나는 말보다는 보풀로 설명할 수 있는 단어나 사건이 없다는 느낌에 사로잡혀 있다. 나는 내 어린 시절의 단편들을 조사하고 있다. 아무런 형태도 의미도 없는 머나먼 삶의 조각들. 그것들은 막 생겨난 보풀 같다.
(p.158 _ '보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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