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있으면 나 좀 좋아해줘 - 제18회 문학동네작가상 수상작
홍희정 지음 / 문학동네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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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있으면 나 좀 좋아해달라고.

   이보다 더 발칙한 고백이 어디 있을까. 제목부터 가슴 설레는, 풋풋하면서 수줍은 소설이 더 있을까. 시간 있으면 나 좀 좋아해 달라니. 좋아해 달라고 이야기하는 앞에 붙은 '시간 있으면'의 가정은 너무나 씁쓸하게 느껴진다. 그럼에도 알 수 없는 당돌함이 느껴지는 이 고백은 이유 모를 따뜻함이 스며들어 있다.
  제18회 문학동네작가상을 수상한 홍희정 작가의 《시간 있으면 나 좀 좋아해줘》는 청춘들의 사랑을 그려낸다. 'N포세대'로 불리는 요즘 세대들의 모습을 대표하는 이레는 갓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전선에 뛰어든 취준생이다. 취업에 신경 쓰다 보니 자신의 마음을 고백하는 건 포기한 지 오래다. 혹시나 잘못 꺼냈다 아예 관계가 틀어질까 걱정되는 것도 없지 않아 있고. 생동감 있는 인물들이 살아 움직이는 《시간 있으면 나 좀 좋아해줘》를 읽다 보면, 남의 이야기는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결말이 뻔히 보이는 성장 소설임에도 그 인물들에 나를 투영해 설레는 감정을 느껴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갓 대학을 졸업한 이레는 취업전선에 뛰어들었지만 잇달아 면접에서 탈락하며 마냥 놀 수는 없다는 조바심에 아르바이트를 시작한다. 아르바이트가 없는 날이면, 율이가 있는 개미 슈퍼로 놀러 가 그와 논다. 손가락에 꼬깔콘을 끼고 하나씩 빼먹으며 뒹굴뒹굴하는 율은 이레가 6년째 짝사랑하는 남자다. 오 남매 중 막내로 태어난 율은 어렸을 적부터 사랑을 많이 받았을 것 같지만,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가 생계를 도맡는 바람에 충분한 사랑을 받지 못한 채 자랐다. 한편으로는 어머니에 대해 적개심을 품고 있지만, 또 돌아서면 어머니 걱정뿐인 율이다.
  중학교 때 부모님 두 분을 여의고 할머니와 살아가던 이레는 할머니의 암 선고 사실을 듣는다. 또다시 사랑하는 사람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이레는 혼란스러워한다. 그러던 중, 이레는 새로운 아르바이트를 구하게 된다. '들어주는 사람'이라는 회사에 들어가게 된 이레는 회원들에게 매일 10분씩 전화통화를 하는 일을 맡게 된다.

  그날 이후로 나는 가슴이 설레는 일이 생길 때면 그것이 오래가지 못하고 처참히 끝나버릴까봐 불안해하곤 했다. 어리석은 생각이라는 걸 알면서도 그때의 경험에서 벗어나기가 쉽지 않다. 아슬아슬한 어둠 속에서 느꼈던 섬뜩한 차가움, 할머니의 젖은 얼굴에 함부로 흔들리며 들러붙던 검은 머리카락. 모든 축제는 결국 끝나버린다는 공포감, 결국 아무도 남지 않을 거라는 두려움에 나는 몸을 떨었다. 모든 것은 떠나버린다, 시들어버린다. 영원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오징어를 질겅거리는 율이의 옆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너도 언젠간 나를 떠나겠지. 하지만 내가 고백하지 않으면 결코 그럴 일은 없을 거야. (p.59)

 

 

 

 

  이레의 고백을 방해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중학교 때 부모님을 여읜 이레는 할머니의 암 선고 소식을 듣자 할머니 역시 자신의 곁을 떠나갈까 봐 걱정한다. 할머니마저 자신의 곁을 떠나고 나면 자신의 곁에는 아무도 없을 것이라는 생각 때문에. 결국, 이레가 두려워하는 것은 다름 아닌 혼자 남을 자신의 '외로움'이었다. 모든 것이 자신을 스쳐 지나간 뒤에 남을 외로움. 혹시나 율이도 그렇게 자신을 스쳐 지나가 정말로 완전한 고립을 느낄까 두려운 이레는 그렇게 자신의 마음이 새어나가지 못하게 붙잡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건 이레만의 개인적인 두려움이 아니었다. 사람들은 모두 그렇게 느꼈고 누군가 자신의 곁에 있다는 사실을 확인받고 싶었다. 이레가 새롭게 구한 아르바이트 '들어주는 사람'의 회원들 역시 이레처럼 외로운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인사로 듣고 싶은 멘트를 적으며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기 위한 준비를 마련한다. 이레는 사장의 지시에 따라 어쭙잖은 충고는 하지 않되, 이야기를 듣고 있다는 의사를 밝힌다. 그들의 감정에 "그랬었군요. 안타깝네요."라는 등의 공감하고 있다는 말만 할 뿐이었다. 그럼에도 회원들은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누군가가 있음에 안심하고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 우리가 쉽사리 내 마음을 털어놓지 못하는 건, 그것으로 하여금 외로움이라는 상처가 남을 수도 있다는 불안감 때문이지만 한편으로 나에 대해 이야기함으로써 그 외로움을 충족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은 '시간 있으면' 나 좀 좋아해 달라는 고백처럼 씁쓸하면서도 달콤하다.

  소중한 것을 잃고 마음에 구멍이 뚫린 것 같은 느낌, 퉁퉁 부은 눈을 하고서도 '아무 일도 아니에요'라고 미소짓는 느낌, 저 멀리 언덕을 넘으면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손을 흔들며 나타날 것 같은 느낌, 그 사람이 웃어주는 것만으로 우주의 모든 애정을 받는 것 같은 느낌, 꼭 그 사람이어야만 하는 이유를 모아 밤새 태산이라도 쌓을 수 있을 것 같은 느낌. 그런 느낌에 흠뻑 젖는 시절을 마음껏 누려야 돼. (p.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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