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정과 열정사이 Blu 냉정과 열정 사이
쓰지 히토나리 지음, 양억관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5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우리는 모두 돌아가고픈 사람을 찾고 있다. 그것이 바로 연애다. _츠지 히토나리  

  연애가 끝난 후 바쁜 일상을 지내다 보면 문득 연애 시절이 떠오른다. 가끔은 '그때 그러지 않았더라면'라고 가정하기도 하지만, 어디까지나 상상에 그칠 뿐이었다. 이미 모든 시간은 다 지나갔고 나는 현재에 남겨져 있을 뿐이다. 사람들은 가끔씩 이별 이후에 짧게 떠오르는 연애의 순간들로 돌아가고 싶은 경우가 있다. 그리고 때로는 순간이 아닌 사람에게 돌아가고 싶은 경우도 있을 것이다. 슬프게도 나는 아직 그런 사람을 만나지 못했지만 ≪냉정과 열정 사이 Blu ≫는 돌아가고픈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담아내고 있다.

  나는 아오이의 시선이 향하는 곳을 늘 마음에 두면서 그림을 그렸다. 그녀가 보려 하는 것을 보고 싶은 바람으로 그림을 그렸다. 그녀에게 좀 더 다가가고 싶었다. 그러나 그녀는 가까이 가면 갈수록 점점 더 멀어지는 물 같은 여자였다. (p.39)

  미술품 복원에 관심을 가지고 있던 쥰세이는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여자친구 메미와 함께 살아간다. 조반나의 공방에서 미술품을 복원하는 일을 하게 된 쥰세이는 현재의 생활에 만족하지만, 마음 한편에 놓인 아오이에 대한 기억을 지우지 못한다. 아오이와는 정반대의 메미를 사랑하면서도 쥰세이는 그녀에게 쉽게 정착하지 못한다. 서른 살이 되면 함께 피렌체 두오모에 오르고자 약속했던 아오이의 모습이 계속 떠오르던 그는 그녀와의 향수를 찾아 도쿄로 돌아가기로 한다. 도쿄에 돌아온 쥰세이는 다카시를 만나게 되고 아오이의 주소를 받게 된다. 아오이에게 연락을 할지 고민하던 쥰세이는 그녀에게 쓴 편지를 우체통에 넣는다.

    결국 아오이가 내 마음속에 똬리를 틀고 있는 이상,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없다. 다시 말해, 난 아직 아오이를 가슴속에서 내몰아버릴 정도의 연애를 하지 못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p.16)

≪냉정과 열정 사이 Blu ≫에서 쥰세이는 '복원'에 관심이 많고 좋아하는 자신의 모습을 많이 드러낸다. 그림이 덮어쓰고 있는 시간을 걷어내고 그림의 원래적인, 그림이 그려질 때의 순수한 상태로 회복시키는 복원하는 일을 좋아하는 쥰세이가 가장 복원하고 싶은 존재는 '아오이'이다. 8년 전, 자신의 오해로 떠나보낼 수 없었던 아오이를, 열정적으로 사랑했던 그 시절의 아오이를 쥰세이는 매우 그리워한다.

  유적과 역사적 유산을 끌어안고 있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세계 최첨단 패션 발신지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 거리에는 피렌체와 같은 통일감이 없어, 오히려 최첨단 문화가 인간을 오염시키는 듯한 느낌을 준다.
  그런 느낌도 내가 과거를 다루는 복원사라는 직업을 가진 탓이리라. 미래를 향하여 활동적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이런 말을 하면 화를 내겠지만, 복원을 거부하는 강인함과 야심적인 새것에 마음을 빼앗긴 도시적인 분위기에는 늘 차가움이 감돈다. (p.80)

  쥰세이에게 과거의 아오이와 대비되는 것은 미래를 바라보는 메미이다. 메미는 쥰세이와 함께 지내며 그에게 익숙해지고, 자신의 인생 한 부분에 쥰세이를 그려 넣는다. 그러나 메미의 미래에는 쥰세이가 있을지라도, 과거에 얽매인 쥰세이에게는 그 어떤 미래도 없다. 그는 오로지 과거에 얽매여 있을 뿐, 미래에 대해 생각할 힘조차 없다.

  "응, 우리의 미래를 위해."
  눈을 반짝이며 그렇게 말하는 메미의 시선을 피하고 말았다. 미래를 위해? 마음속으로 나는 자문했다. 미래를 위해 살아본 경험 따위는 없었다. 메미가 바라는 미래를 함께 엿본다는 것 자체가 하나의 공포였다. 이제 어떤 행동으로든 이런 교착 상태를 타파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사람은 모두 미래를 향해 살아가야만 하는 걸까. (p.132)

 

 

 

  나의 광장.
  예전에 그렇게 부르며 사랑하던 여인이 있었다. 세상에 녹아들지 못하고 혼자 떠돌며 살아가던 내게 있어 그녀는, 막다른 골목길에서 갑자기 나타난 도시의 광장처럼 시원스러운 존재였다. 별다른 용건도 없이 나는 시간이 남아도는 노인처럼 매일 그곳을 찾아갔다.
  그녀의 품에 안겨 있을 때, 나는 자신이 고독하지 않고, 행복한 존재라 생각할 수 있었다. (p.168)

  ≪냉정과 열정 사이 Blu ≫를 읽으면서 나는 왜 쥰세이의 아오이에 대한 절절한 그리운 감정보다 사랑을 갈구하는 메미에게 더 위로를 하고 싶은 걸까. 쥰세이에게 아오이가 광장이었듯이, 메미에겐 쥰세이가 광장이었을 것이다. 이탈리아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메미는 마음의 안식처라고 할 곳이 없었다. 이탈리아에서도, 도쿄에서도 쉽게 정을 붙일 곳이 없었던 메미에게 쥰세이는 유일하게 정을 붙일 수 있던 존재였던 것이다. 그의 품에 안겨 있을 때, 메미는 자신의 존재를 확인했고 행복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둘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난 몰라. 잔인한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히 말해두겠어. 나와는 아무 관계도 없는, 잊을 수 없는 사람이 있는데도 나를 곁에 두고 마치 대용품처럼 여겼어. (생략) 나는 나야, 누구도 대신할 수 없어. 절대로 그런 존재가 되고 싶지 않아. (p.158)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지만, 아픈 일이기도 하다. 적어도 메미에게는 그렇다. Rosso의 마빈에게도 그렇다. 타인을 이해하려고 할수록 쓰라린 자신의 감정을 감추기 어렵다. ≪냉정과 열정 사이≫는 누군가를 사랑하고, 또 누군가에게 사랑받는 것에 대해 굉장히 자세하게 그려낸다. 이미 그 과정을 뼈저리게 알고 있는 우리는 그 누구에게도 잘못이 있다고 말하지 못한다. 그래서 ≪냉정과 열정 사이 Rosso ≫와 ≪냉정과 열정 사이 Blu ≫를 모두 읽고 나면, 그저 그들처럼 뜨거운 사랑을 하고 싶다는 생각만 남는다. 잊을 수 없는 사람, 그래서 때로는 돌아가고픈 사람을 만나 열렬히 사랑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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