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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자의 인문학 노트 - 스페인에서 인도까지, 여행에서 만난 사람들,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2013년 우수저작 및 출판지원사업 선정작
이현석 지음 / 한티재 / 2013년 12월
평점 :
절판
여행이 좋은 이유는 자신을 포함한 모든 것을 내려놓고 가벼운 마음으로 세상을 대할 수 있는 자유로움 때문일 것이다.
먼 곳에서, 자신을 알아보는 사람이 없는 거리를 걷는 것은 일종의 해방이자 동시에 집착과 번뇌에서 벗어나 스스로의 삶을 관조할 수 있게 해주는 자성의 순간으로 들어서는 마법의 문이기도 하다. 적어도 내게는 그랬다.
마음이 복잡할 때 정해놓은 행선지도 없이 아무 버스에나 올라타 하염없이 뒤로 지나치는 창밖 풍경을 보곤 했었고, 무슨 관광명소라는 곳을 찾아가서도 가능하면 사람들이 붐비지 않은 한적한 곳을 골라 다녔다. 내게 중요한 것은 여행지의 화려함이 아니라 나를 내려놓을 수 있는 한적함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저자에게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이 책을 읽는 동안 저자에게서 묘한 동질감을 느꼈다고.
매 장마다 화려한 사진으로 채우는 대신, 책 전체에는 여행지에서 담담히 기록한 저자의 고백으로 가득하다. 그리고 그 논조는 사파리 모자를 쓰고 환한 미소를 머금고 있는 행복한 여행자의 모습이라기 보다 고뇌에 빠진 채 어두컴컴한 중세의 어느 복잡한 골목길을 조용히 걸어가는 중세의 구도자와 많이 닮아 있다.
그래서일까. 이 책은 여행 서적이라고 하기에는 지나치게 이국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을 자세히 그리고 있고, 그렇다고 아니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생생하게, 사진 한장 없음에도 불구하고 여행이 주는 생경함과 자유로운 사색의 기운을 전달하고 있다. 그것이 아마도 이 책이 인문학 노트가 된 이유가 아닐까. 보고 만나는 모든 것 속에서 거꾸로 세상의 모든 것의 실체를 발견하고 배우는 것, 있는 그대로 보는 것과 동시에 따듯한 연민의 정을 느끼는 것, 그것이 인문학이 아닐까 조심스레 생각해 본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나와 같이 여행을 통해서 좀 더 깊은 마음의 눈을 뜨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적격이 아닐까 한다. 게다가, 이 저자, 정말 글을 잘쓴다. 부러울 정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