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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곰
메리언 엥겔 지음, 최재원 옮김 / 한겨레출판 / 2024년 1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성스러운 동물성애자>라는 책이 있다. 주파일(zoophile), 이른바 동물성애에 대한 인류학적 보고서에 가까운 책이며, 저자가 실제 주파일의 실례를 심층적 인터뷰와 근접 관찰을 통해 기록했기에 상상하기조차 어려운 주제임에도 설득력이 높았다. 그 책의 추천사에는 '읽는 이의 식견을 묻는 위험한 책'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지만, "종도 편견도 넘어선 사랑"이라는 부제 그대로 주파일도 LGBTQA...으로 이어지는 인간의 다양한 성적지향에 당당히 한자리를 차지하는게 그렇게 이상하지 않다는 걸 인정하게 된다.
그래서 이 책 <나의 곰>에 대한 기대가 컸다. <나의 곰>은 주파일에 대한 소설이며, 이성애자였던 한 여성이 수컷 곰에게 강렬한 성적 끌림을 느끼는 과정이 밀도 있는 문장으로 적나라하게 드러나기 때문이다.
이 과정은 연애와 매우 닮았다. 주인공 루는 깊은 교감을 나눈 상대와 결국 이별하지만, 너무 멀리 함께 갔다고 느껴질 정도로 욕망의 충족을 경험한다.
사실, 이 관계가 피비린내 나는 걸로 끝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있었다. 곰은 예측이 되지 않는 '동물'이고, 야생 동물의 이빨과 발톱이란 슬쩍 갖다대기만 해도 인간의 몸을 찢을 수 있는 흉기가 된다. 거기다 루는 자기를 찢어 달라는 둥 너무 열정적이고 겁이 없었다.
그런데 여성의 연애란 사실 위험한 일 투성이가 아니겠는가. 데이트 폭력에 가정 폭력, 연인이든 가족이든 백퍼센트 안심을 하기엔 힘든 세상이다. 그래서 더 루의 연애가 오싹하면서 현실적으로 느껴졌던 것 같다. 말이 통하지 않는다고? 나보다 훨씬 힘이 세다고? 이건 인간 여성이 인간 남성과 하는 연애와 다를게 없지 않은가.
생각해보면 책에 둘러싸인 삶을 사는 서지학자인 루가 문명과 동떨어진 곳에서 야생 그 자체인 곰과 관계를 갖는다는 것도, 여성의 몸과 정신에 대해 거의 아무것도 모르는 남성과 관계를 갖는다는 것과 매우 닮아 있다.
그런데 여기서 곰은 오히려 인간 남성보다 더 루를 존중하는 것처럼 보인다. 함부로 먼저 루에게 다가오지도 않고, 관계시 루에게 상처를 입히지도 않는다. 굶겨도 루에게 음식을 요구하지 않고, 사슬에 묶이거나 풀려있거나 상관없이 사슬을 당기거나 멀리 가지조차 않는다. 이전에 루에게 당연하다는 듯이 섹스를 요구하거나 '집안의 하녀'가 되기를 바라는 인간 남성보다 오히려 더 멋진 연애상대가 되어 준다.
그래서 루는 곰을 상대로 마음껏 자신의 욕망을 드러내고, '몸 위로 별들이 떨어지고 타오르고 또 타오르던' 끝내주는 시간을 갖는다. 뭐, 여타의 연애처럼 말그대로 상처로 이 관계도 끝이 나지만, '정말이지'라는 말 한 마디로 좀 과했지만 나쁘지 않은 연애를 깔끔하게 끝낸다. 스스로가 '강해지고 순수해진 기분이 들었다'고 하니, 이 연애가 꽤 괜찮았던 게 아닐까.
주파일에 대해 '수간'이란 혐오의 말을 떠올릴 수도 있겠지만, 금기와 비정상으로 가는 경계란 매우 아슬아슬하고 그 기준이란 것도 결국은 인간이 정하기 마련이다. 인간에게 가장 소중한 사랑과 관계가 어떠한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하는가를 깊이 고민해본 적이 있다면, 주파일의 방식이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가에 대해 알아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이 책을 읽는 것이 오히려 사랑과 관계에 대한 내 좁은 식견을 넓힐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지 않을까.
*출판사 이벤트로 책을 제공받고 쓰여진 서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