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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령의 마지막 수업 - 시대의 지성 이어령과 ‘인터스텔라’ 김지수의 ‘라스트 인터뷰’
김지수 지음, 이어령 / 열림원 / 2021년 10월
평점 :
발제 1
이어령 선생님은 '이야기가 있는 삶이 부유한 삶'이라고 했습니다.
내가 생각하는 부유한 삶이란 어떤 의미인지, 이어령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이야기가 있는 삶'이란 무엇인지 생각해 봅시다.
이어령 선생님은 태초에 빅뱅이 있었고, 물질과 반물질이 생겼는데, 이 둘이 합쳐지면 빛이 된다고 설명했다. 그 빛은 엄청난 에너지가 된다. 그런데 물질이 많으면, 빛이 되다 만 '물질의 찌꺼기'가 생기는데 그것이 바로 우리라고 말한다. 그 '빛이 되지 못한 찌꺼기'가 반물질을 만나면, 빛이 된다는 말이 인상 깊었다.
살아가는 것은 빛이 되는 과정이다. 찌꺼기인 우리가 빛이 되기 위해 반물질과 만나야 하는데, 나는 그 접점이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부유하다는 것은 비단 경제적인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내가 생각하는 부유한 삶이란 내가 이 생에서 부여받은 의미를 깨닫고 그것을 실현하는 과정이라 생각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자신을 찾아야 한다. 찾아가는 길에 이야기가 있는 것이다. 이야기 속에는 사람도 있고, 물건도 있고, 추억도 있고, 욕망도 있을 것이다. 그 제재(題材)를 버무려 맛있는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삶이 부유한 삶이다.
아이와 만나는 순간부터, 나는 늘 이야기가 있는 삶을 꿈꿨다. 그것이 내가 생에서 부여받은 의미라고 나는 생각한다. 부유한 삶이었는가? 자문한다면, 선뜻 그렇다라고 대답할 수 없지만, 그래도 부유한 삶을 향하고 있다고는 생각한다. 후회하는 삶이었는가? 그렇지는 않다. 반평생 나의 이야기는 전개와 위기를 넘나들고 있다, 결국 절정에 이르는 순간이 오겠지. 그 순간 부유한 삶이었노라고 얘기할 수 있도록 생에서 부여받은 의미와 내가 나에게 부여한 의미로 이야기를 만들어 보자.
이어령 선생님은 럭셔리한 삶이 무엇인지 묻는 질문에 '스토리텔링을 얼마나 갖고 있느냐'가 그 사람의 럭셔리라고 했다. 우리가 누군가의 삶에 열광할 때 우리는 그 사람의 스토리를 본다. 벼락부자가 아니라 역경을 딛고 일어난 사업가에, 같은 수능 만점자라도 암을 이겨내고 만점을 받은 합격자의 정신 승리에 감동을 받는다. 스토리 안에 그 사람의 전 과정이 녹아있기 때문에 매력 있는 스토리에 우리는 빠져들 수밖에 없고, 그러한 스토리는 우리의 정서를 풍부하게 하고 공감을 자아낸다. 결국 많은 사람들에게 부유함까지 선사하니 결국 스토리텔링만큼 부유한 삶도 없을 것이다. 나를 변하게 하고 다른 사람도 변하게 하는 삶, 부유한 삶!
발제 2
'시간에도 무게가 있다. 매일 가벼워진다'라는 의미에 대해 생각해 봅시다.
“세상에서 가장 길면서도 가장 짧은 것,
가장 빠르면서도 가장 느린 것,
가장 작게 나눌 수 있으면서도 가장 길게 늘일 수 있는 것,
가장 하찮은 것 같으면서도 가장 회한을 많이 남기는 것,
그것이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사소한 것은 모두 집어삼키고 위대한 것에게는 생명과 영혼을 불어넣는 그것,
그것은 무엇일까?”
물리학자 M. 패러데이의 질문이다.
그것의 답은 시간이다.
그리고 모든 것을 사라지게 하는 것, 시간 앞에 영원이라는 것은 없다. 나는 시간만큼 잔인한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나와 나의 기억을 소멸해가는 과정으로 향하게 하니까.
'시간 앞에 장사 없다'라고 찢어지는 아픔도, 가슴 떨리는 설렘도, 심장이 터질 것 같은 기쁨도 시간 앞에 퇴색된다. 그 퇴색함이 가벼워지는 무게이다. 시간이 아니라 망각이 주는 선물일 수 있지만, 사소한 것은 집어삼키고 위대한 것은 생명과 영혼을 불어 넣기에, 우리는 희로애락의 무게를 조금씩 덜어내고 위대한 기억만을 안고 사는 것이다. 위대한 기억이란 그것 하나만큼은 절대 놓을 수 없는 것이다. 모든 것을 덜어내고 덜어내서 마지막까지 남아있는 그 하나. 시간이 그거 하나라도 생에 허락한다면, 적어도 실패한 인생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발제 3
'마지막', '작별'이라는 단어가 주는 울림에 대해 나의 경험과 비추어 이야기
해 봅시다.
헤어짐에 다름이 있을까? 헤어질 때 인사를 나누고 헤어지는 것을 작별이라 한다. '인사를 하고'가 아니라 '인사를 나눈다'라는 것은 일방적인 이별이 아닌 것이다. 그러기에 이별보다 덜 아플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우리는 수없이 헤어진다. 대개는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하며 헤어지지만, 오늘의 만남이 마지막이라면, 그때 나누는 헤어짐의 인사가 작별인 것이다.
예감하고 예고된 이별, 그렇다면 준비된 이별이기에 덜 아플까? 상상을 해 봐도 비교할 수 없는 아픔이다. 그래도 굳이 비교하자면, 나는 작별이 이별을 준비할 수 있기에 덜 아플 것 같다. 적어도 아름다운 시간을 준비할 수 있기에. 그 시간은 아픔을 견딜 수 있게 한다. 그래서 때론 심장질환보다 암에 걸린 사람이 더 행복하다고 말한다. 적어도 이별을 준비할 시간이 있고, 마지막을 아름다운 색으로 채색할 수 있으니까.
누구나 작별의 순간과 마지막이라는 시간이 온다. 그때 행복한 삶이었노라고 담담하게 말하고 떠날 수 있기를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