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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더 이상 당신의 가족이 아니다 - 사랑하지만 벗어나고 싶은 우리시대 가족의 심리학
한기연 지음 / 씨네21북스 / 2012년 2월
평점 :
절판
나에게는 오래된 분노와 씁쓸함이 있다. 어릴 적에는 마냥 두려웠고 조금 커서는 내 감정을 무시하고 지냈다. 열 살 무렵부터 집에 간다는 것이 편하지 않고 현관을 열었을 때 눈치를 보게 되고, 어느 날은 끝없는 엄마의 하소연에 어느 날은 오빠의 화풀이대상에 어느 날의 가족의 싸움에 무기력해졌다. 하지만 가장 괴로웠던 것은 이런 가족의 속내를 외부인에게 절대 들켜서는 안된다는 엄마의 당부때문이였을지도 모른다.
그게 내 탓이 아니며 나를 그렇게 해서는 안된다는 걸 스무살이 훨씬 넘어서야 알았지만 수십년동안의 습관은 변하지 않아 아직도 나는 부모님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내 탓 같고 나라도 들어주지 않으면, 해결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생각을 한다.
이제는 많이 털어냈다고 생각했다. 친밀한 사람들에게 내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용기가 생긴 후로 심리치료도 받고 감정을 털어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 안의 슬픈 아이는 아직 사라지지 않았더라.. 어김없이 시작한 엄마의 '딸이 아니면 누구한테 말하니 너같은 딸말고 다른 착한 딸이 있었으면 좋았을텐데..'를 듣는 순간 나는 그냥 자리를 박차고 나왔다. 집에 오며 내 안의 감정이 무엇일까... 그건 이젠 분노는 아니였던 것 같다. 그저 그토록 애를 써도 안된다는 허탈감과 이젠 참지않을 수 있다는 후련함과 죄책감인 것 같다.
내가 이 책을 고르고 읽은 것은 무언가를 배우기 외해서는 아니다. 나에게 넌 잘못이 없음을 들려주는 위로 일 뿐이다.
p.77 가족 중 단 한 사람이라도 행복하지 않은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이미 우리가 바라는 진정한 가족의 모습이 아니다.
p.167 불행하다는 느낌은 내가 나 자신에게 보내는, '지금 변화를 시도하라'는 강력한 신호다.
p.177 우리는 다른 사람은 물론이고 심지어 가족이라 할지라도 '나 아닌 다른 사람의 감정은 나 때문이 아니다'라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그 누구도 나의 감정을 좌지우지할 수 없는 것처럼, 나 역시 다른 사람의 감정에 책임을 짊어질 수는 없다.
p.184 엄마가 아이에게 날마다 인간에 대한 불신과 관계에 대한 무력감을 심어주느니, 차라리 아이의 음식에 날마다 독약을 타 먹이는 것이 낫다.
부모의 한탄 앞에서 거의 경기를 일으키듯 과민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은 대개 이런 과거를 가지고 있다. 부모가 아주 오랫동안 아이에게 한탄을 늘어놓으면서 아이를 자신과 똑같은 고통에 몰아넣은 것이다. 부모가 아이에게 불행을 호소하면 아이는 자신이 아무 것도 해줄 수 없다는 생각에 극심한 무력감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