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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담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9
밀란 쿤데라 지음, 방미경 옮김 / 민음사 / 1999년 3월
평점 :
사소한 농담으로 중요하게 여기던 것들을 잃고, 그런 인생에서도 여전히 헤어나올 수 없는 복수심으로 더 상처를 받는다.
좀 더 어릴때 읽었다며 이런 느낌은 아니였을 것 같다. 점점 내가 의도한바처럼 세상이 날 이해하지도 이끌어가지도 않는다는 생각이 드는 요즘..많이 공감하며 읽었다.
인상깊은 구절...
변질된 가치나 가면이 벗겨진 환상은 똑같이 초라한 몰골을 하고 있고, 서로 비슷하게 닮아서 그 둘을 혼동하기보다 더 쉬운 건 없죠
기쁨의 신봉자들이 대개 제일 음울한 사람들이다
위선자들처럼 내게 진짜 얼굴 하나와 가짜 얼굴 하나가 있었던 것이 아니다. 나는 젊었고, 내가 누구인지 누가 되고 싶은지 자신도 몰랐기 때문에 여러 얼굴을 가지고 있었다.(그렇다고 해서 이 모든 얼굴들 사이에 존재하는 부조화가 내게 두려움을 주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나는 그중 어느 것에도 꼭 들어맞지 않았고, 그저 그 얼굴들 뒤를 맹목적으로 이리저리 헤매 다니고 있었다.
음악이 들릴 때 우리는 그것이 시간의 한 양태라는 것을 잊은 채 멜로디를 듣는다. 오케스트라가 소리를 내지 않게 되면 우리는 그때 시간을 듣게 된다. 시간 그 자체를. 나는 휴지를 살고 있었다.
슬픔, 우울의 공감보다 사람을 더 빨리 가깝게 만들어 주는 것은 없다. (그 가까움이 거짓인 경우가 많다고 하더라도.)
그날 저녁부터 내 안의 모든 것이 변했다. 내 안에 다시 누군가가 살게 된 것이었다. 나의 내며는 마치 방처럼 휙 청소가 되고 어떤 사람이 거기에 살게 되었다. 여러 달 전부터 바늘이 마비된 채 벽에 걸려 있던 시계가 갑자기 다시 똑딱거리기 시작했다.
그 누구도 이 검사에 통과한 사람은 없다. 예전에 내 친구들이나 아는 사람들이 (기다렸다는 듯 얼른, 또는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확신에 의해서 혹은 두려워서) 그랬던 것처럼 그들 모두가 손을 들고 만다. 그러니 인정하시라. 당신을 유배 보내거나 사형할 태세인 이들과 같이 산다는 것이 힘들다는 것을. 그들과 아주 친해지기가, 그들을 사랑하기가 힘들다는 것을.
삶은, 아직 미완인 그들을, 그들이 다 만들어진 사람으로 행동하길 요구하는 완성된 세상 속에 턱 세워 놓는다. 그러니 그들은 허겁지겁 이런저런 형식과 모델 들, 당시 유행하는 것, 자신들에게 맞는 것, 마음에 드는 것 등을 자기 것으로 삼는다. 그리고 연기를 한다.
어린애 같은 자신의 모습을 인식하면 할수록 그는 슈퍼맨이라는 자신의 역할을 더욱더 광적으로 수행했던 것이다.
젊음이란 참혹한 것이다. 그것은 어린아이들이 희랍 비극 배우의 장화를 신고 다양한 무대 의상 차림으로 무슨 말인지도 잘 모르면서 광적으로 신봉하는 대사들을 외워서 읊으며 누비고 다니는 그런 무대다.
아무것도 용서되지 않는 세상, 구원이 거부된 세상에서 산다는 것은 지옥에서 사는 것과 같으니까요.
그 어떤 행위도 그 자체로서 좋거나 나쁘지 않다. 오로지 어떤 행위가 어떤 질서 속에 놓여 있느냐 하는 것만이 그 행위를 좋게도 만들고 나쁘게도 만든다.
자기 밖에 놓인 수수께끼에 관심을 가지기에는 스스로에게 자신이 너무도 커다란 수수께끼인 그런 나이, 또한 다른 사람들은 (아무리 친한 사람이라 해도) 자기 자신의 감정, 자신의 혼란, 자신의 가치 등을 놀랍게 비추어 주는 움직이는 거울에 불과한 그런 바보 같은 서정적 나이에 대한 분노였다.
미루어진 복수는 환상으로, 자신만의 종교로, 신화로 바뀌어 버리고 만다. 그 신화는 날이 갈수록 신화의 원인이 되었던 주요 인물로부터 점점 더 분리되어 버린다. 그 인물들은 사실상 더 이상 예전의 그들이 아닌데, 복수의 신화 속에서는 조금도 변하지 않은 채 그대로 남아 있게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