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유년의 역신들 - 계유정난과 사육신
한국인물사연구원 지음 / 타오름 / 2011년 8월
평점 :
품절


숙종대의 장희빈과 함께 우리나라 사극에서 절대 빠지지 않는 소재가 있다. 수양대군의 왕위 찬탈에 관한 이야기다. [공주의 남자], [왕과 비] 등 시대와 관점을 달리해 여러 번 반복되는 것은 그만한 의미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 안에는 정권의 올바른 정통성, 지식인의 고민과 역할, 배신 그리고 친족 간의 골육상잔, 민심 등이다.

 

문종이 훙서하고 단종이 12살의 어린 나이로 보위에 오르자, 수양대군, 김종서, 안평대군은 급부상한다. 김종서는 단종을 강건했던 숙부였던 수양대군, 안평대군에게서 보호하려고 한다. 그 과정에서 신료들의 권한이 강해진다. 김종서는 수양대군을 견제하기 위해 종친의 왕실 출입을 금지하고 국정을 의정부서사제로 운영한다. 수양대군은 왕권이 약해지는 것이 매우 못마땅했다. 수양대군은 당시 매우 뛰어난 왕재로 인정받고 있었기 때문에 신권의 수장인 김종서와 서로 대립한다. 수양대군은 김종서가 왕권을 위협한다고 여겼고, 김종서는 수양대군이 보위를 위협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안평대군은 그 재주가 수양대군 못지않았으나 수양대군에 가려 빛을 보지 못하고 있었다. 김종서는 안평대군과 함께 수양대군을 견제했다. 안평대군이 김종서와 손을 잡자 위협을 느낀 수양대군은 홍달손과 함께 김종서의 집을 찾아가 김종서를 주살한다. 그리고 바로 범궁하여 김종서와 안평대군의 라인을 모두 척살하고 정권을 잡는다. 곧 수양대군은 자신의 친동생인 안평대군을 죽이고, 단종을 강원도 영월로 유배 후 사사한다. 이후 한명회, 권람, 한확, 이사철로 정난공신으로 예종, 성종대까지 그 지위를 이어가 훈구파로서 조선의 발전을 저해하게 된다.

 

영월로 유배된 단종을 복위시키기 위한 거사가 벌어지는데, 첫째는 세종대왕의 여섯 번째 아드님이셨던 금성대군 이유가 주도하나 금성대군 밑의 계집종으로 인하여 누설되고 사사된다. 두 번째는 성삼문, 박팽년, 이개 등 사육신이 주도한 거사다. 재미있는 것은 [계유년의 역신]은 김문기가 숨겨진 진정한 사육신 중의 한 명이라고 밝히고 있다. 그 근거로 밝히는 과정이 있는데 나는 단순히 그 결과보다 그 과정을 살피는 것이 의의가 있는 것 같다.

 

마지막으로 내가 이 책을 읽으며 느낀 수양대군, 안평대군, 김종서에 관한 인물평을 써 보고 싶다.

 

먼저 김종서를 논한다. 김종서는 솔직담백하여 한 번 신의를 세우면 목숨처럼 여기고 한 번 믿음을 정하면 굽힘이 없고 한 번 갈 길을 정하면 물러나지 않는 법이니 그런 탓으로 일찍이 세종대왕은 김종서를 동량으로 삼아 병약하신 대행전하의 후사를 부탁했다. 하나 권력은 신의보다는 배반을 쫓고, 믿음보다는 이익을 따라 굽히고, 길이 막히면 돌아가는 것이 권력의 모습이라 김종서는 난세의 인물이 아니었다. 스스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으니 오히려 그의 이름을 충신의 반열에 올려놓을 수는 있으나 감히 김종서가 모반을 꿈꾸겠는가. 세도는 누릴지 모르나 역모와는 어울리지 않았다.

 

안평대군을 논한다 세간에서는 안평대군을 가리켜 당대 제일의 풍류객이라 칭했다. 풍류란 인생의 밑바닥까지 들여다본 사람이 인생의 허망함을 깨닫고 불쑥 해탈의 경지에 이르러 비로소 터득하는 정신의 세계일 것이다. 멋을 부린다고 풍류가 되는 것은 아니다. 글줄이나 쓰고 먹물을 다룬다고 풍류가 될 수 없다. 하물며 먹고 마시고 놀기 좋아하는 사람이 어찌 당대 제일의 풍류객이라 할 수 있겠는가. 음식의 맛을 알고 무명삼배의 꺼칠함보다는 비단의 매끄럽고 보드라운 촉감을 탐하고 괴로운 일은 피하고 즐거운 일을 쫓는 사람이 어찌 또한 난세의 인물이라 하겠는가. 그는 수양대군이 고명사은사로 명나라에 가 있을 동안에 일을 꾸미지 못했다. 그러기에 안평대군은 형제간의 우애를 중시하고 조카를 보호하려는 따뜻한 사람이었다. 재능이 있으나 겸손하였기에 모두 사람들이 그를 따르고 우러러보았다.

 

수양대군을 논한다. 왕재가 형제 중 가장 뛰어났으나, 결국 조카 단종의 보위를 빼앗고 형제인 안평대군과 금성대군을 죽였으니 멀리는 은나라 주공 단에 미치지 못하고 가깝게는 태종 이방원에 미치지 못한다. 태종은 비록 형제들 간의 골육상잔으로 왕위를 차지했으나 방번을 죽이지 않았고, 보위에 오르게 한 공신들은 처가식구들까지도 처단함으로써 아들 세종이 한반도 최고의 성군이 되도록 터를 닦았다. 그러나 세조는 한명회가 공신이자 외척이 되도록 함으로써 이후 예종, 성종대까지 훈구파로 조선의 진보를 가로막게 했으며, 이후 택군이라는 잘못된 선택으로 왕실의 권위는 덜 수 없는 짐을 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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