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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무기에 관한 다섯 가지 신화 ㅣ KODEF 안보총서 70
워드 윌슨 지음, 임윤갑 옮김 / 플래닛미디어 / 2014년 4월
평점 :
우리는 흔히 2차 세계 대전에서 미국이 일본에 원폭을 투하했기 때문에, 이를 두려워한 일본이 더 이상 저항할 수 없다고 판단하여 항복해서 전쟁이 끝났다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나?
하지만 이런 인식에 반대되는 자료도 있다. 일본이 정말로 두려워한 것은 원폭이 아니라, 소련군의 침공 소식이었다는 것이다.
이 책, <핵무기에 관한 다섯 가지 신화>의 저자인 워드 윌슨은 원폭 투하에 관한 문제를 거론하며, 실제 일본이 항복하는데 원폭은 그다지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고 말한다.
이미 원폭을 투하하기 전에, 미군은 도쿄 대공습 등 일본 본토에 무수한 공중 폭격을 감행하여 많은 도시들을 파괴하고 인명을 살상했으나, 정작 일본의 전의를 약화시키는데는 그다지 효과가 없었다.
오히려 일본군은 1억 총옥쇄라고 하여, 전 국민이 다 죽더라도 결코 미국에 항복하지 않겠다는 결의까지 다질 정도였다.
심지어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폭이 투하되었다는 소식이 들려도, 일본 정부의 강경한 자세는 누그러들지 않았다.
그러다가 소련군이 일본의 점령 하에 있던 만주를 침공했다는 소식이 들리자, 일본 정부는 그제서야 부랴부랴 계엄령을 선포하는 등 위기 의식을 느끼고 허둥대기 시작했다.
실제로 소련군의 진격은 그야말로 폭풍 같은 기세였고, 불과 11일 만에 무려 70만 관동군이 지배하고 있던 만주를 파죽지세로 휩쓸고, 일본군을 굴복시켰으니까.
그리고 일본의 점령 하에 있던 남사할린과 쿠릴 열도도 소련군의 공격을 받고 순식간에 점령당했다. 그 여세를 몰아 소련군은 훗카이도까지 점령하려 했었다. 그 때 미국이 나서지 않았다면, 오늘날 훗카이도도 러시아 영토가 되었으리라.
아무튼 소련군의 침공 소식이 전해지자, 그제서야 일본 정부는 더 이상 전쟁을 계속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미국 등 연합국과 종전 협상에 들어가서, 1945년 8월 15일 항복 선언을 한다.
그런데 전쟁이 끝나고 나자, 일본 정부와 군부의 주요 인사들은 한결같이 원폭 때문에 항복을 했다고 말하고 다녔다. 이것은 왜일까?
저자인 워드 윌슨은 이것이 일본 정부의 교묘한 책략이라고 말한다. 일본이 전쟁에 패하게 된 원인이 일본 정부나 군부의 잘못된 전략 때문이 아니라, 미국이 만든 무서운 신무기인 핵폭탄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고 말한다면, 정부를 포함한 권력자들은 책임을 모면하게 된다는 논리에서였다.
즉, 무모하게 전쟁을 일으켜 수백만의 목숨을 앗아간 일본 정부의 잘못이 아닌, 미군의 핵무기 떄문이라고 그 책임을 돌려버린다면, 상층부는 무사할 테니까.
아울러 원폭 사실을 부각시킴으로써 일본은 전쟁의 가해자가 아니라, 피해자로 슬그머니 동정론을 살 수도 있었다. 실제로도 그렇게 굴고.
일본 원폭 투하 관련 부분이 아닌 다른 곳에서도 워드 윌슨는 핵무기가 실제로 보통 사람들이 알고 있는 것만큼 안보에 좋지도 않으며, 한국전쟁과 베트남전을 거론하며 핵무기가 있다고 해서 전쟁을 피할 수 있지도 않다고 말한다.
핵무기를 만들고 관리하는데 들어가는 막대한 비용을 생각한다면, 핵무기가 결코 좋은 무기가 아니라는 것이 이 책이 말하고 싶은 내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