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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을 이룬 나라 기쁨을 잃은 나라
다니엘 튜더 지음, 노정태 옮김 / 문학동네 / 2013년 7월
평점 :
2002년 월드컵.
국제 스포츠 대회가 난생 처음 우리나라 한복판에서 열린다는 사실에 수많은 사람들이 연일 거리로 뛰쳐나와 환호성을 지르며 응원을 했다. 온 나라는 물론, 전 세계가 신이 나서 모든 시름을 잊고 잠시나마 즐겁게 놀았다.
그런데 좀 시간이 가니까 월드컵 응원을 나왔던 사람들을 마치 무슨 몹쓸 범죄를 저지른 파렴치한으로 몰아붙이며 마구 훈계를 하는 분들이 나왔다.
포스트 모더니즘이니 탈민족주의니 무슨 무슨 알아듣지도 못할 베베꼬인 어려운 외국어 단어들을 잔뜩 늘어 놓으면서 일장 훈계를 했다. 한국인은 너무 촌스럽다, 너무 시끄럽다, 왜 이렇게 난리 법석이냐, 월드컵에서 거리 응원은 왜 하냐, 민족주의가 개입된 거 아니냐(그 놈의 민족주의가 지 애비를 때려 죽였냐, 에미를 욕 보였냐? 나참...), 나치와 연관된 거 아니냐, 한국인이 집단으로 정신 나갔다, 히틀러를 뽑아준 독일인이 이랬을 것이다 등등... 별의 별 황당한 상상력을 하며 연일 월드컵 응원을 했던 사람들을 천인공노할 살인범죄자 쯤으로 몰면서 마구 윽박질렀다.
월드컵에서 기쁨을 나타내며 응원을 하는 것조차 죄라는 이 극악무도한 잣대를 들이댄 사람들이 바보이거나 멍청하거나 아니면 아주 정신이 나간 사이코들이었을까? 그렇지는 않다. 그들도 그들 나름대로 숭고한 정의와 진지한 사명감이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들의 잣대가 너무나 현실과 동떨어져 대중에게 외면을 받았다는 거고.
뭐, 그 분들의 말씀들을 종합해 보면 2002년 월드컵은 전혀 자랑스럽거나 좋은 일이 아니고, 촌스럽고 유치하고 수치스러워서 한국이 전 세계에 대놓고 욕을 먹을 창피한 일이라는 것이다.
근데 한국인이 아닌 외국인의 눈에 비친 2002년 월드컵은 어땠을까? 2002년 그러니까 월드컵 응원이 한창일 때, 처음 한국에 도착한 영국인 다니엘 튜더는 "선진 외국"인 영국에서 온 사람답지 않게, 정 반대로 해석한다. 붉은 티셔츠를 입고 거리 응원을 벌인 한국인들이 너무나 멋지고 아름다웠다는 것이다!
"아니 어째 이런 일이? 정말 세련된 선진국 사람이 맞나? 어떻게 민족주의에 찌든 저질 민족인 한국인을 편들 수 있는 거야?"
...라고 누가 생각할 지도 모른다. 뭐, 생각은 자유니까.
한국 특파원을 지낸 다니엘 튜더는 자신과 같은 외국인들, 특히 서양인들이 한국을 보는 시각에 딴지를 건다. 으레 미국과 서유럽에서 온 백인들은 언제나 한국을 깔보면서, 한국이 자신들을 닮아야 한다고 가르치려는 태도를 보이는데, 다니엘 튜더는 그런 모습에 반대한다. 한국은 그냥 한국인들이 알아서 하게 놓아 두라는 것이다. 저기 위에서 언급한 대로 월드컵과 민족주의를 결부시켜 한국인들을 나치 같은 악마로 모는 시각도 따지고 보면 서양이나 일본 같은 선진 외국인들이 언제나 한국을 깔보고 폄하하던 잣대와 같지 않은가?
또한 다니엘 튜더는 한국이 식민지에서 독립한 지 불과 68년 만에 놀라운 경제 성장을 이루었지만, 대신 그 과정에서 전통적인 문화인 여유와 풍류를 잃었으며, 한국이 지나친 경쟁 사회가 되는 바람에 사람들이 행복과 기쁨을 놓치고 있다는 안타까운 평도 남겼다.
어쩌면 다니엘 튜더는 한국인보다 한국을 더 잘 알고 사랑하는 외국인일지도 모른다. 한국인도 한국을 온갖 이유로 폄하하고 미워하는 마당에 이런 외국인이 있다는 것이 놀랍기도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