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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무사 이성계 - 운명을 바꾼 단 하루의 전쟁
서권 지음 / 다산책방 / 2012년 3월
평점 :
최근 들어 사극의 열풍이 거세다. 그 중에서 주로 조선 시대를 다룬 소설이나 드라마들이 인기가 있다. 하지만 나는 이런 사극 열풍들이 그다지 반갑지만은 않다. 대부분 여성 독자들의 취향에 맞춘 연애나 혹은 시대 구분도 할 수 없는 퓨전 사극들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랜만에 선이 굵은 역사물을 좋아하는 나 같은 독자들을 위한 역사 소설이 나왔다. 이름하여 '시골무사 이성계'.
제목에서부터 벌써 작가가 말하고 싶은 바가 드러난다. 시골무사 이성계, 조선을 세운 고려의 장군이었던 태조 이성계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소설이다. 그것도 이성계가 고려 백성들의 열렬한 추앙을 받는 계기가 되었던 황산 전투를 배경으로 했다.
황산 전투는 고려 말, 극성을 부렸던 왜구들의 침략을 가장 분명하게 보여준 사건이었다. 무려 5백 척의 대함대를 타고 고려를 침략했던 왜구들은 최무선이 새로 개발한 화포로 무장한 고려 수군에 의해 배들을 모두 잃고, 지리산으로 숨어 들었다. 하지만 그래도 왜구들의 병력은 1만이나 되었다. 더구나 당시 왜구들은 단순한 도적 수준이 아니었다. 말만 왜구지, 사실은 오랜 내전으로 단련된 일본의 정예 무사단이었다.
이성계가 황산 전투에 참가하기 전까지, 고려는 거의 속수무책으로 왜구들에게 당하기만 했다. 고려 말의 유명한 정치인이자 시인인 목은 이색도 "왜구들이 왔다는 소식에 사람들이 모두 두려워했다."라고 시로 읆을 정도였으니까.
그런데 황산 전투에서 이성계는 자신을 가별치, 변방의 촌놈이라고 깔보는 고려 중앙군의 괄시를 받는 상황에서 수적으로 열 배나 많은 왜구들을 완벽하게 전멸시키는 대승을 거둔다. 이 황산 전투로 인해 고려인들은 비로소 왜구의 위협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사실, 우리들이 그다지 높이 평가하지 않아서 그렇지 세운 전공이나 역사적인 위업으로만 보면 이성계는 성웅으로 인식된 이순신보다 훨씬 위대한 인물이다. 이순신은 그저 일개 장수에 머물렀지만, 이성계는 단순한 장수에서 벗어나, 아예 부패한 나라를 무너뜨리고 그 자신이 새로운 나라를 세우는 왕이 되었으니까. 그가 세운 새 나라 조선은 5백년 동안 존속하는 장기 왕조로 군림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성계에 대한 우리들의 인식이나 대우는 그다지 높지 않다. 조선이라는 나라 자체에 대한 우리들의 인식이 좋지 못한 탓이다. 조선을 생기지 말아야 했다며, 없어져야 할 나라라고 배우고 가르쳐왔던 교육의 잘못이다.
이제 우리가 소홀히 대해왔던 영웅, 변방의 거친 촌놈에서 한 나라의 왕이 된 입지전적인 인물인 이성계에 대해서도 애정을 가지고 보아야 할 때가 아닐까? 부디 이 소설, <시골무사 이성계>가 우리가 잊어버렸던 영웅을 다시 조명할 기회가 되기 바란다.
추신: 책의 속표지에 보니, 저자인 서권 씨는 이 소설을 집필하고 나서 친구들을 불러 술잔치를 벌이고 얼마 후에 숨을 거두었다고 한다. 참으로 놀라우면서도, 세속에 초탈한 예술가다운 삶이다. 나도 한 사람의 작가로서 언젠가 그렇게 죽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