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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로버 (양장) - 제15회 창비청소년문학상 수상작
나혜림 지음 / 창비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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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에.

그 한 마디면 신세계를 맛볼 수 있어.

선택은 인간이 하는 거야.

클로버 中


이런 유혹을 받는다면, 나는 어떻게 할까?

크게 달라질 것 없는 일상에서 생각해봤던

수많은 '만약에'를 포기할 수 있을까?

더욱이 지금보다 더 힘든 상황이었다면,

너무나도 쉽게 그 한 마디를 내뱉지 않았을까?



제15회 창비 청소년문학상 수상작.

'클로버'는 고양이의 모습으로 나타난 악마가,

중학교 2학년 정인이를 유혹하는 이야기이다.

주 3회, 최저시급 9,160원을 받는 중학교 2학년 현정인.

할머니와 단 둘이 살고, 복지관에서 준 햇반과 라면이 떨어지면

당장의 식사를 걱정해야 하는 정인이에게

354,260원이라는 수학여행은 선택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그런 정인이 앞에 나타난 악마 헬렌.

헬렌에게 어려운 환경에서 버텨내고 있는 정인이는

외로움과 무력함, 두려움이 뒤섞여 달콤한 향을 풍기는 먹잇감이었다.



스로는 바른 아이가 아니라고, 살아야 하니까 그냥 이렇게 사는 거라고 말하지만

정인이는 웬만한 어른보다 삶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하고 현실에 충실하다.

어쩌면 '먹는 것이 먼저고, 도덕은 그 다음이다. 꿈은 그보다도 더 다음'이라고 생각해야 하는,

선택할 수 있는 것보다 순응해야 하는 게 더 많은 힘든 상황이

정인이를 그렇게 만들었는지 모르지만, 그 현실은 그만큼 정인이를 강하게 만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꾸만 정인이를 시험에 들게 하는 악마 헬렌.

과연 정인이는 악마의 유혹에 넘어갈 것인가?


신은 명령하지만 악마는 시험에 들게 하지.

선택은 인간이 하는 거야.

클로버 p111


'악마와의 거래'라는 부분에서 '파우스트'를 떠올릴 수 있는데,

'클로버' 역시 그만큼 철학적인 대화가 많아서 책을 읽는 동안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소설이었다.

세상에 태어났으면 누구나 해야 하는 밥값이란 것에 대해.

배고픔을 채우는 식욕과 먹을수록 배고파지는 식탐에 대해.

행운 앞에서는 '왜 나인가?' 묻지 않으면서,

불운 앞에서는 '왜 나인가?' 라고 묻는 것인지.



이제 곧 정인이와 비슷한 또래가 되는 아이를 키우는 입장이어서 그런지,

책을 읽다가 문든 가슴이 먹먹하고 눈물이 날 것 같은 순간이 많았다.

너무 빨리 철들어 버린 정인이의 마음과

'만약에를 백번을 하더라도 정인이가 있어야 한다'는 할머니의 마음,

그러한 마음들을 한 번도 먹을 것, 입을 것 걱정을 해본 적 없는

우리집 열 세 살 꼬마는 이해할 수 있을까?

이해의 넓이와 깊이는 다를 수밖에 없더라도,

유혹에 지지 않고 자신만의 어두운 순간을 이겨내는 데

응달에서도 자라는 클로버를 보며 작은 힘을 얻었으면...


※이 글은 창비에서 도서를 제공 받고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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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리 철학 클럽 - 소설로 읽는 특별한 철학 수업 즐거운 지식 (비룡소 청소년)
로버트 그랜트 지음, 강나은 옮김 / 비룡소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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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리 철학클럽은 평생직장 보장학교에 입학한 마일로와 친구들의 이야기다.

부모님들 사이에서 인기 1위인 평생직장 보장학교.

그런데 이 학교, 뭔가 이상하다. 지내면 지낼수록 생각보다 더 이상하다.

스마트 워치, 의자, 교복 등의 최신 시스템으로

아이들을 제어하고 빈틈 없이 짜여진 규칙과 규율에 맞춰

모든 학생들을 통제하며 획일화하고 있다.

그 모든 상황이 이상한 마일로는 교장선생님 수업 시간에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하다가 모범교육생들에게 쫓기게 되는데!

도망치다가 우연히 들어간 비밀의 정원에서

철학선생님이었던 어설라 선생님을 만난다.

선생님과의 대화를 통해 점점 더 철학적 사고를 하게 되는 마일로.

그 시간에 유일하게 마음의 안정을 느낀 마일로는

친구들과 함께 어설라 선생님에게 계속 철학을 배우기로 한다.

그러다가 우연히 알게 된 리듀콘 6000의 존재와

며칠 동안 사라졌다가 좀비처럼 변해서 돌아오는 학생들.

과연 마일로는 이 이상한 학교에서 일어나는 수상한 사건을 해결할 수 있을까?



초등학교 6학년, 열세 살 아이와 부딪히는 일이 종종 생기고 있다.

객관적으로 본다면 그날의 해야 할 일을 잘 하고

(대부분 숙제, 대부분 자의 반, 타의 반이지만) 말도 잘 듣는 '편'이지만,

매우 주관적인 '엄마'의 눈으로 볼 때는 아쉬운 게 많다.

아쉽다는 것은 결국 '하라는 것을 바로 하는 것'에 대한 문제인데,

앞으로는 이런 부분에서 서로의 의견이 달라지는 일이 더 많아질 거다.

아무래도 엄마의 '생각'에 따르기만 하던 나이가 이미 지나고,

자신만의 '생각'이 생기고 스스로 선택하는 시기가 되었으니까.

그걸 잘 알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순간순간

'대체 왜! 하라는 대로 하지 않는 거지?'

'내 말만 잘 들으면 될 텐데!'라는 통제의 마음이 생겨난다.



이런 마음을 가진 내가 '미스터리 철학클럽'을 읽다 보니,

'평생직장 보장학교'의 교장선생님과 내 모습이 오버랩된다.

너무도 이상한 학교라고 생각하지만

어쩌면 지금의 아이들이 처한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다.

많은 부모들이 가지고 있을

내 아이가 차분하고 순종적이길 바라는 마음,

무엇보다 학습에 집중하길 바라는 마음.

원장과 다를 바 없지 않은가 돌아보게 된다.



어설라 선생님은 마일로에게 철학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해준다.

철학이란 모든 것에 질문을 던지는 일이야. 우리가 확실히 안다고 생각하는 것에 의문을 품는 것이자 자신과 세상을 이해하려는 시도이지. 그건 인류가 가장 오랫동안 하고 있는 시도 중 하나이고. 또 철학이란 그 어떤 것도 사실이라고 짐작하지 않는 거야. 우주의 법칙이나 우주가 어디에서 왔는지에서부터, 우리가 서로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까지 모든 것이 철학의 주제가 될 수 있어. 하지만 단순히 놀라워하는 마음에서 시작되는 것이기도 해. 놀라워하는 마음, 궁금해하는 마음, 열린 마음으로 우리가 처하는 상황들이 얼마나 희한한지를 바라보는 데서 바로 처락이 시작되거든. p.78​

철학이란 수수께기 같은 우리의 존재를 궁금해하는 일이라고도 할 수 있어. 우리가 아직 모르는 깊고 깜깜한 곳들을 탐색하고 싶어 하는 일. 그리고 철학은 겸손한 마음이라고도 할 수 있어. 이미 세상 모든 걸 다 알고 있다고 짐작하지 않는 마음이니까 겸손한 것 아니겠어? 또한 철학은 열린 마음이지. 모든 게 우리의 생각과 아주 다를 수 있다는 가능성을 받아들이는 마음 말이야. 그리고 무엇보다도 스스로 생각하게 해 주는 도구야. 철학적 질문들의 답은 인터넷으로 검색해도 안 나오니까 말이야. p.83






여전히 알 것 같으면서도 모르겠는 '철학'은

어설라와 마일로의 대화를 따라가다 보면,

세상을 살아가면서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해야 하는가에 대한

나의 태도를 조금 더 돌아보고 정비할 수 있게 해준다.

내가 느낀 이러한 마음을 아이도 느꼈으면 좋겠지만,

앞으로 이러한 태도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하고

자신을 가꿔갈 시간이 많으니까~

조금씩 천천히 함께 '생각하는 존재'가 될 수 있도록

'철학'의 마음을 가질 수 있도록 해야지.


※이 글은 비룡소에서 도서를 제공 받고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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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만 연필의 정체 난 책읽기가 좋아
길상효 지음, 심보영 그림 / 비룡소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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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귀여운 이야기가 있다니!




둘째가 '깊은 밤 필통 안에서'라는 책을 읽고
너무 재미있다고 이야기했던 게 생각났는데,
그 두 번째 이야기가 나온다는 소식을 듣게 됐다.
책이 도착했을 때 기대했던 것처럼 아이가 엄청 반가워했다.
다음 이야기가 있다니 너무 궁금하다며 앉은 자리에서 뚝딱 읽고는
학교 숙제인 독서일기에도 쓰고, 병아리연필이 귀엽다고 그림도 그렸다.
어떤 이야기이길래 이렇게 아이 마음을 사로잡은 건지,
궁금해서 읽어봤는데 나도 읽는 내내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요즘 아이들은 샤프도 많이 사용하지만,
내가 초등학생일 때는 정말 연필밖에 없었는데.
연필깎이도 귀해서 저학년 때는 엄마가 칼로 연필을 깎아주시고,
어느 순간부터는 내가 직접 깎아서 잘 정리해서 갖고 다녔는데.
책을 읽다 보니 어린시절 추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그런 연필들은 어떤 마음일까?
필통 속 연필들은 아이의 마음 그대로를 닮아 있었다.
아이들의 일상도 거의 매일 비슷한 패턴일텐데, 일기는 매일 쓰라니!!
그러다보니 일기에 쓸 말이 없어서 일기 쓰는 게 참 힘들지.
게다가 곱셈도 어려운데 시험이라면 더 힘든 게 당연하다.
그런 마음을 연필들이 토로하는데 아이의 모습과 오버랩되면서 미소가 지어지더라.
'알지알지~ 내가 그 힘든 마음 알지~' 이런 생각 때문일까 ㅎㅎ
이야기는 세 가지 에피소드로 구성되어 있다.
까만 연필의 정체


책의 제목과 같은 이 에피소드에는 4B 연필이 등장한다.
필통 밖에 나갔다 연필들이 모두 기운이 빠지고 어지럽다고 이야기하는데!
이때 낯선 연필의 등장! 모두가 처음 보는 까만 연필이 알고 보니 4B 연필이다.
그런데 너마저 어지럽다고?
대체 연필들의 어지러움은 무엇 때문일까?

 
깊은 밤 옷장 밑에서


어느 날 사라진 당근 연필!
사실 옷장 아래로 굴러 들어가버린 건데~
처음 들어가본 어두운 세계에서 낯선 목소리와 만나게 된다.
과연 당근 연필은 탈출할 수 있을까?
연필들의 주인인 담이에 대해 자꾸 물어보는
이 낯선 목소리의 주인공은 과연 누구일까?
연필의 한살이



과학 시험을 앞두고 닭의 한살이, 나비의 한살이를 공부하는 연필들~
연필의 한살이에 대해서도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드디어 시험 시간에 선택된 연필은 딸기 연필!
그런데 이름을 쓰다가 심이 똑 부러지고,
이후에도 자꾸만 심이 부러지는데!
우리의 딸기 연필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걸까?
각각의 에피소드에서는 아이들의 상상력을 자극하기도 하고
HB 연필과 4B 연필의 차이를 자연스럽게 알려주거나,
자석에 붙는 물건과 아닌 것에 대해서도 알게 해준다.
그리고 연필로 대표되지만 오래 함께하는 물건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마음도 느끼게 해준다.

그림도 귀엽고 내용도 흥미진진해서 초등학교 저학년부터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그런데 중간중간 나오는 연필들의 마음이 아이들의 마음과 같아서

한창 불만이 많아질(?) 고학년 아이도 긴 글밥책 읽다가

쉬어가는 느낌으로 읽으면 공감가는 이야기에 흥미를 느낄 것 같다. >.<

※이 글은 비룡소에서 도서를 제공 받고 작성한 솔직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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흡혈귀 탐정 클럽 1 - 사건 파일 1 거울 세계 실종 사건 흡혈귀 탐정 클럽 1
한주이 지음, 고형주 그림 / 위즈덤하우스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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흡혈귀!

탐정!!

사건해결!!!

인간 세상의 미스터리한 사건을 해결하는 흡혈귀 탐정 클럽이라니!

아이들이 좋아하는 소재가 모두 조합되어 있으니 이건 참을 수 없지~

그래서 당연히 좋아할 거라는 생각으로 서평단 모집에 응모했고,

역시나 책을 읽은 남매가 재미있다고 엄지 척~ 했다.


서점에는 이 책이 3~4학년 추천으로 분류되어 있던데,

그래서인지 역시나 신비아파트를 보며 귀신이나 흡혈귀에 단련된 6학년이 첫째는

순식간에 읽은 후에 시크한 한 줄 평을 했다.

"재미있어~ 애들(동생들)이 좋아하겠네~"

그래, 이제 본인은 형님이라 이거지~ ㅎㅎ


3학년 둘째는 사실 오빠만큼 책을 좋아하지 않는 스타일;;

추천해줘서 읽게 하기까지 노력이 좀 필요한데,

재미있는 책을 찾아서 추천해주면 곧잘 읽어서 부지런히 추천해주려고 노력하고 있다.

역시나 처음에 이 책을 주었을 때는 본인은 흡혈귀가 무섭다(신비아파트는 잘 보면서?)

내가 읽기에는 책이 너무 긴 거 같다~ 이런 핑계를 댔지만,

결국 다 읽은 후에는 재미있단다! 거봐~ 엄마가 추천해준 것들은 다 재미있다니까?! ㅋㅋ

흡혈귀는 무서웠지만 태현이가 직접 거울귀신에게 미끼가 되어 사건을 해결하는 게 흥미진진했고

중간에 만화 같은 그림들이 있어서 더 재미있었단다.

그런데 나는 무서워서 밤에 학교에 혼자 못 갈 거 같다고~ ㅎㅎ

학교에 가야될 일이 생기면 어떻게 하나 이런 생각까지 하는, 아직은 귀여운 3학년!


그렇다~ 흡혈귀 탐정 클럽의 첫 번째 사건은

아이들이 실종되는 원인인 거울귀신 문제를 해결하는 것!


월식초등학교 2층 남자 화장실에 거울귀신이 나온다는 소문이 있다.

한밤중에 거울귀신과 가위바위보를 해서 지면 거울 속으로 끌려간다는 소문!

4학년 태현이는 이런 유치한 학교괴담을 믿지 않는다고 친구들에게 이야기했다가,

결국 거울귀신이 없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한밤중에 학교 2층 남자 화장실로 향한다.

친구들에게 지기 싫어서 자기가 증명하겠다고 나섰지만 사실 겁이 많은 태현이~

두근두근 가슴 졸이며 화장실 거울 앞에서 가위바위보를 하려는 순간!

갑자기 나타난 흡혈귀 소년 제이를 만나고,

거울세계로 사라진 아이들을 찾기 위해 흡혈귀 탐정 클럽의 유일한 인간 멤버가 된다.

친구들을 위해 거울귀신을 불러내기 위한 미끼가 되기까지!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밝혀지는 이야기 속에서

어른들이 놓치고 있는 아이들의 고민과 생각, 마음을 알게 된다.

이혼을 앞두고 있는 가정의 가람이의 슬픔과

태현이의 꿈에 대한 부모님의 불만 때문에 게임 속으로 도망가고 싶어하는 감정.

그래서 현실보다 거울 속 가짜 세상에서 행복을 찾으려는 아이들.

"엄마는 내 마음도 모르면서!"

"아빠는 내가 왜 힘든지 알아요?"

사실 아이들이 한 살 한 살 더 먹을수록 부모와 이야기를 하지 않고 싶어하는 건,

우리가 어른의 입장에서만 바라보고 생각하기 때문이겠지.

아이들 책이지만 책을 읽다보니 부모로서 내가 노력해야 할 부분도 보이더라.

아이들은 흡혈귀 탐정 클럽과 함께 사건을 해결하며 도전하는 용기를 알게 되고

어른인 나는 아이들의 마음을 조금 더 잘 알아주고 이야기도 잘 들어줘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더 많은 아이들과 어른들이 함께 읽어보면 좋겠네~


※이 글은 위즈덤하우스에서 도서를 제공 받고 작성한 서평입니다



"하하, 네가 모르는 게 과연 그것뿐일까? 그래서 세상은 겉으로 보이는 게 다가 아니라는 거야. 우리처럼 정체를 드러내지 않고 은밀히 살아가는 존재들도 많으니까."

제이는 나지막이 낄낄 웃었다. 그러나 곧 무언가가 생각난 듯 다시 얼굴을 딱딱하게 굳히며 정색했다.

"그래도 역시 제일 무서운 건 사람이야."

제이에게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사람을 무서어하는 흡혈귀라니....... - P35

리더 누나가 늑대 흉내를 내면서 날카로운 송곳니를 드러내고 으르렁거렸다. 아지트 안을 가득 덮은 그림자가 흔들리는 촛불을 따라 일렁였다.

"진실을 마주할 용기가 없으니까 마음이 편한 쪽을 선택해서 믿기로 한 거야."

앤 형이 읊조렸다. 케이는 우물거리던 과자를 조용히 내려놓았다. 그러자 리더 누나가 무거워진 분위기를 환기하듯 표정을 바꾸면서 손뼉을 짝 쳤다.

"그래서 나는 이 상황을 바꾸기로 했어. 누구도 억울한 누명을 쓰지 않도록! 모든 진실을 낱낱이 밝혀내기 위해 탐정 클럽을 만들었지." - P56

그렇다면, 적어도 이번 한 번 정도는 용감하다는 걸 증명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남을 돕기 위해 용기를 내 보고 싶었다. - P68

"거짓말이라도 행복하면 된 거 아닐까? 진짜 불행보다는 가짜 행복이 훨씬 낫잖아?"

"그건......."

내가 뭐라고 대답해야 좋을지 고민하는 사이 거울 속 내가 뱀처럼 속삭였다.

"가람이는 자신의 의지로 가짜 행복을 선택한 거야. 그러니까 너도 올바른 선택을 하길 바란다."

"뭐라고?"

"나는 모든 걸 안다고 했지? 이 거울은 겉모습만이 아니라 너의 마음속 깊은 곳까지 비추고 있어. 너도 분명 현실보다 이곳을 더 좋아하게 될 거야."

다시 몸이 뻣뻣하게 굳었다. 나는 말려들지 않으려고 고개를 털었다.

"이, 이 자식, 가람이도 모자라서 나까지 끌어들이려고?"

"너에게도 나름의 상처가 있으니까."

"웃기시네! 난 그런 거 없어!"

"왜 없어? 모두에겐 각자의 상처가 있어. 너도 예외는 아니지."

거울 속 내가 눈을 가늘게 접으며 끔찍하게 웃어 댔다. - P77

"하지만 돌이켜보면 사실 난 그냥 현실을 똑바로 마주하는 게 무서웠던 것 같아. 어떤 친구들 덕분에 내가 생각보다 훨씬 겁쟁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거든."

‘저장‘도 ‘자시 불러오기‘도 없는 냉혹한 현실! 나는 입을 비죽이며 웃었다. 제이와 흡혈귀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거울 귀신 말이 그럴듯하긴 해. ​진짜 불행에 맞서는 것보단 가짜 행복으로 도망치는 게 훨씬 쉬워 보이니까. 하지만, 만약에 말이야, 그래도 용기를 내서 진짜랑 맞서 싸우기를 선택한다면......."

나는 머뭇거렸다. 방금 본 종이 인형들은 어설프고 엉망이었지만 정말로 가람이를 아끼려고 노력하는 듯 보였다. 아마도 가람이의 바람이 그대로 투영됐기 때문이겠지.

"언젠가 진짜로 행복해질 수도 있지 않을까?" - P132

"좋아, 우리가 이 세상의 슬픔을 모조리 없애 버리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외치자, 제이는 살며시 고개를 저었따.

"그건 불가능해."

"그, 그런가?"

"응. 항상 이겨낼 수는 없으니까. 하지만 뭐, 네 각오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해. 이 세상엔 정말 많은 슬픔이 떠돌고 있어. 그걸 우리가 조금이라도 덜어 줄 수 있다면......"

이런 생각을 하게 되기까지 제이에게 무슨 일이 있었을까. 그 어떤 괴물보다도 사람이 가장 위험하고 무서운 존재라는 제이. 묻고 싶은 말은 여전히 많았으나 아직은 묻지 않기로 했다. 제이에게도 시간이 필요할 테니까. - P1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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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최고 꾼 일공일삼 45
김정민 지음, 이영환 그림 / 비룡소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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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없었다면 읽지 않았을 책들을, 아이들이 있어서 읽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렇게 어쩌면 그냥 모르고 지나갔을 수 있을 이야기들을 알게 되어 참 좋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파란 아이가 그랬고, 긴긴밤이 그랬고, 훌훌이 그랬고... 이번에 조선 최고 꾼도 그런 책 중 하나가 됐다.


책이 오자마자 아이에게 줬더니, 앉은 자리에서 단숨에 읽었다.

그만큼 흡입력이 있다는 이야기!

아이가 다 읽은 후에, 나도 어떤 이야기인지 궁금해서 읽어봤는데

'일공일삼'이라는 시리즈 이름처럼 초등학생이 읽기에 쉬우면서도 재미와 교훈이 듬뿍 담긴 스토리였다.

게다가 1936년 경성을 배경으로 하는 이야기인 만큼, 그 시대의 우리나라가 처한 상황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했다.


나도 다 읽은 후 아이에게 책을 읽고 느낌이 어땠는지, 물어봤다.

"엄마, 책 뒷 표지 봤어? 그 이야기가 중요한 거야. 그걸 기억하면 되는 거지~"

그러면서 한 문장을 딱 짚어주는데,

"노미야, 길이 잘못됐으면 바른길을 찾아가. 아니면 길을 바로잡든지."

나도 책을 읽으며 밑줄 친 부분이었는데! 역시 책을 읽고 싶도록 표지의 문장을 잘 뽑으셨네~ ㅎㅎ

그러나 책 읽는 건 좋아하지만 독후활동 싫어하는 아이라 대답이 너무 심플하다;;

언제쯤 같은 책을 읽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지..

소매치기가 될 뻔했던 한 소년이 주변 사람들의 조언으로 바른 길을 향해 나아가는 모습을 보며

어떤 생각을 했는지 좀 더 듣고 싶었단 말이다!!

그렇지만 '열세살' '남자' 아이를 닥달해서 대화를 이어가기란... 앗 어려워.

어린이인 내 아이의 대답은 심플했으나, 어른인 나는 생각이 많아졌다.

우선! 어느 시대, 어느 곳에서나 왜 이렇게 아이들을 힘들게 하고 괴롭히는 어른들이 많은 건지.

보호와 애정이 결핍된 아이들을 향한 그 폭력의 손길에 화가 났다.

쇠심줄 네 이놈!!!

그러나 고보, 벅수, 샌님, 솔이처럼 좋은 사람들도 많으니까.

결국 그런 사람들의 애정과 믿음으로 아이들이 스스로 길을 찾아갈 수 있는 게 아닐까.

사실, 어른들도 어떤 길로 가야하는지 정답은 모를 때가 많지만,

옳고 바름에 대해 생각할 수 있게 해주고 그 길을 찾아갈 수 있도록 응원해주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


책 속 문장들은 어른인 나에게도 울림을 줬다.

어른들도 용기를 내야 하는 순간, 포기하지 않고 행동해야 하는 순간, 바른 길을 찾아야 하는 순간들이 많으니까.

이렇게 책 속 문장을 통해 많은 생각을 하고 힘을 얻는 경험을 아이들이 더 많이 할 수 있으면 좋겠다.

좋은 길로 안내해주는 책을 함께 읽으며, 더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조선 최고 꾼'이 된 '노미'의 이야기를 통해 바른 길을 생각하는 마음과 행동하는 용기를 알게 된 것처럼~



"길을 모르겠어요."

노미의 얼굴은 진지했다.

"길을 모르면 사람들한테 물어봐."

"사람들도 모르면요? 만약에 길이 없으면요?"

고보 형이 노미를 찬찬히 보았다. 웃음이 사라지고 눈빛은 진지하게 변했다.

"...... 그렇다면 노력해서 찾아내거나 길을 만들어야겠지."

"에휴, 둘 다 어렵네."
- P93

"그때 다른 사람이 나를 도와줬다면, 쇠심줄이 아니라 착한 사람을 만났더라면......"

벅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나왔다. 노미는 쇠심줄이 못 견디게 미웠다.

"처음 잘못됐다는 걸 알았을 때 용기를 냈어야 했어. 하지만 난 그걸 못했어. 쉬운 일이 아니었어."

노미는 벅수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알았다. 벅수는 왜 그렇게 노미가 소매치기하는 것을 말렸는지 말하고 싶은 거다.

"시간이 지날수록 용기를 내기가 점점 어려워졌어."

벅수는 잘못된 길로 들어가지 말라고, 잘못된 길에서 빠져나온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라고 말하고 싶은 거다.
- P99

솔이의 말에 노미는 머릿속 조각이 맞춰지는 기분이었다. 솔이, 샌님, 홍익의원, 그리고 또 다른 많은 사람들. 조선의 독립을 위해 모두 저마다 할 수 있는 일들을 하고 있었다.
- P146

두려움은 누구에게나 잇다. 다만 두려움 때문에 포기하는 사람과 두려움을 참고 행동하는 사람이 있을 뿐이다.

"내가 또 어린 너에게 짐을 지우려 했구나."

샌님이 바로 옆에서 말하는 것 같았다. 노미는 벌떡 일어났다. 두려움을 참고 행동하기로 했다. 용기를 내기로 했다. 행동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을 것이기에.
- P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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