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물질의 세계 - 6가지 물질이 그려내는 인류 문명의 대서사시
에드 콘웨이 지음, 이종인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4년 3월
평점 :
샘플북을 제공받아 읽었다. 문과의 버릇인지 신라 고분에서 출토된 유리잔과 유리병, 상감구슬이 먼저 생각났다. 이집트, 시리아, 로마, 실크로드를 거쳐 신라에 전해진 유리제품들. 권력자의 위신재(威信財)로 기능하며, 당시에 귀중했을 유리가 모래를 기반으로 만들어진다는 사실을 지금은 누구나 안다.
《물질의 세계》<1부 모래>는 21세기의 연금술인 반도체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풀어낸다. 이집트 투탕카멘 흉갑의 풍뎅이는 실리카 함량 98퍼센트의 리비아 사막 유리로 만들어졌고, 이는 지구에 추락한 유성 덕분이라는 사실부터 글이 전개된다.
순도높은 모래를 찾고 가공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환경문제, 석영암에서 폴리실리콘으로 다시 실리콘 웨이퍼로, 반도체 파운드리로 나아가는 공정을 마치 현장에서 지켜보는 듯한 생동감이 있다.
중국의 반도체굴기에 대한 내용 또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수많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중국이 도저히 극복할 수 없는 한 가지가 소개되어 있다. 현재까지 특정한 유형의 석영암을 얻을 수 있는 곳은 세상에 한 군데뿐이라는 사실.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 스프루스 파인이라는 마을에 있는 광산에서만 채굴된다고 한다.
중국의 부상을 막기 위해 미국의 정치인들이 반도체 공급망의 리쇼어링을 소리높여 외치지만, 반도체의 기나긴 여정을 보면 과연 한 국가에서만 모두 이루어진다는 것이 가능할까하는 의문을 남기며 글을 맺는다.
14세기 중국의 청화백자는 지금의 첨단반도체라 할 수 있다. 유럽은 각고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18세기가 되어서야 청화백자를 생산한다. 당시의 하이테크 제품인 청화백자로 인해 유럽의 국부는 중국으로 유출된다. 21세기는 첨단반도체에서 중국이 수세에 몰려있다.
지금 세계는 자원(물질)과 기술경쟁에 사활을 걸고 있다. 패권국의 지위를 지키기 위해 또는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대응은 과연 어떠해야 하는가? 많은 생각을 하게 되는 책이다.
글쓴이도 이따금 거론했지만, 문명이 진보할수록 더 많은 자원(물질)을 필요로 한다. 여기에 수반되는 환경훼손(오염)의 문제는 인류가 풀어야 할 커다란 숙제이다.
사족 : 토머스 에디슨의 콘크리트 양산 특허 출원, '옹스트롬'이라는 단위, 얀 초크랄스키의 안타까운 사연, 2009년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 찰스 가오가 특히 기억에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