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그럼에도 살아냅시다 - 창세기 2 ㅣ 김양재의 큐티 노트
김양재 지음 / 두란노 / 2015년 3월
평점 :

기다리던 책을 받았습니다. 포장용지를 뜯자마자 책을 펴들었습니다. 프롤로그만 읽었을 뿐인데 눈시울이 붉어졌습니다. ‘빨리 보고 싶다. 받자마자 봐야지, 눈 빠지게 기다렸으니깐 오른손 엄지와 검지가 얄미울 정도로 후다닥 읽어야지’라고 했던 본인에 예상과 딜리 프롤로그에 적힌 글자만 읽는 데도 눈시울이 붉어졌습니다. 엄마, 아빠 손을 잡고 놀이동산에 가서 신이 나서 앞만 보고 뛰어가다 갑자기 돌아섰는데 엄마가 눈에 보이지 않아 방향을 잃고 멈춰서 그냥 그 자리에 주저 않아 엉엉 우는 어린아이가 되어버렸습니다.
“모쪼록 이 책을 여는 모든 분들 또한 비록 죄와 상처로 얼룩진 환경일지라도 내 죄를 위해 죽으신 성자 예수님이 내 삶을 디자인하셨음을 깨닫고, 성령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성부 하나님의 영원한 언약을 기억하면서 ’그럼에도 오늘을 살아내시길‘ 축원합니다.(9페이지 프롤로그 중中)“
이 문단이었는데, ‘너 여기까지 참 잘 왔다. 오늘도 열심히 잘 살아내자!’라고 가슴 속에서부터 속삭이며 제 마음을 감사는 주님의 마음이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본서는 창세기 6장부터 11장의 창세기 큐티 노트로 ‘part 1 악한 시대의 예배자’, ‘part 2 사람의 끝, 하나님의 시작’ 그리고 ‘part 3 살아 있는 날의 은혜’ 세 파트로 되어 있습니다. 창세기 6장부터 11장의 본문을 3개의 파트에 4개의 작은 단위로 구분하였으며, 이 단위들은 ‘본문에 관한 말씀해설’과 ‘말씀으로 기도하기’, ‘우리들 묵상과 적용’ 그리고 ‘기도’로 되어있습니다. 각각의 파트를 마치며 느낀 점을 토대로 서평을 작성하고자 합니다.
‘part 1 악한 시대의 예배자’에서 기억에 남는 단어 혹은 문장을 몇 가지 기록해 보면, ‘가장 무서운 이단이 기복입니다.(43)’, ‘고스톱 목장(65-7)’. ‘심판(82-4)’ 그리고 ‘예수님을 빙자해서 성공을 간증하게 축복이 아닙니다.(89)’입니다. part 1을 보며 한편 새삼스럽고, 한편 죄송스럽게도 하나님께서 얼마나 극진히 나를 사랑하시는 지, 그리고 내가 자녀를 바라 볼 때와 이상으로 그 사랑의 열병으로 나를 보며 좋아서 어찌할 바를 몰라 하신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이글이글 타오르는 사랑에 오늘도 하나님의 뜻과 그 사랑의 일치시켜 주시기 위해서 삶에 개입하시고 함께하시는 은혜가 얼마나 큰지를 김양재 목사님을 통해 전해주시는 말씀의 교훈과 적용을 통해 깊은 묵상에 젖어봅니다.
‘part 2 사람의 끝, 하나님의 시작’에서는 ‘고난(110)’, ‘고통의 근원은 하루아침에 마르지 않습니다. 힘들고 아픈 내 환경에서 복음을 전하고 구원을 위해 헌신하면 하나님께서 나에게 사명을 주십니다. 환경이 안변해도 내가 전한 복음으로 전도가 되고 열매가 나타나면 저절로 고통이 그치게 됩니다. 거센 빗줄기가 무섭게 두들겨 대도 더 이상 고통스럽지 않게 됩니다(112-3).’, ‘진정한 안식(115)’, ‘홍수의 때는 미리 알려 주셨는데 믿음의 훈련을 위해 회복의 때는 숨기십니다(124).’, ‘죽음이 끝이 아닙니다(163).’ 였습니다. 특별히 110에서 ‘고난은 각자 절대치의 것입니다.’라고 말합니다. 저는 쓰라린 아픔을 가지고 사는 사람입니다. 뼈가 드러난 상처를 다시 바닥에 쓸어 내고 그 상처는 절대 아물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그 상처를 누구도 이해하지 못할 것이라 여겼습니다. 요즘 느끼는 은혜는 언제부터 인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하나님께서 그 상처의 무게를 거의 달 덜어 주셨고 상처의 흔적만 남아 속 고통을 없고 그 흔적을 볼 때마다 주님의 은혜를 기억하게 하시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part 2는 저의 위의 고백과 거울 비추듯 마음속에 품고 있는 주님 주신 위로와 사랑을 다시 한 번 깨닫게 해주었습니다. 나에게 그리고 나의 삶에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깊이 미쳐 있는지 하나하나 짚어 가시며 말씀해 주시는 듯했습니다. part 2에서는 사랑의 흔적을 각자에게 주셔서 하나님 스스로 나타나시고 은혜를 베푸시고 하나님이 아니고는 안 되는 사람임을 고백하게 하심을 깊이 묵상해 봅니다.
‘part 3 살아 있는 날의 은혜’에서는 ‘부모님 용서(215)’. ‘상처가 많은 사람들의 특징(227-8)’, ‘이름을 내고 싶은 악(244-6)’, ‘흩어짐을 통해 성령님을 만나게 하시고(250)’ 이 주에서도 228에 소개된 목장보고서의 글을 보며 예전의 저의 모습의 한 자락을 보았습니다. ‘어떤 분에게 너무 예쁘다고 말하는데 황당했다.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다. 시간이 지나고 보니 내가 그런 감정을 공유하지 못할 정도로 메말라 있는 것이 회개가 되었다.’ 상처가 많은 사람의 특징이라 표현해주셨습니다. 지금은 아니지만, 저도 누군가 예쁘다고 칭찬하면 칭찬이 아닌 것 같다며 화를 내곤했었습니다. 잘한다고 칭찬하면 더 잘하라는 핀잔처럼 들리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때 내가 왜 그랬을까 생각해 보니 목사님의 말씀처럼 상처가 많은 사람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상처를 온전히 남의 탓으로 했었던 때에 그처럼 화가 불처럼 솟구쳤습니다. 상처를 밟고 일어설 수 있도록 도우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한 뒤에 예전의 그 모습이 참 부끄럽게 여겨집니다. part 3을 다 읽어 나가는 데 연어가 떠올랐습니다. 산란을 위해 거친 물살을 거슬러 올라가는 연어가 생각이 났습니다. 하나님의 극진한 사랑을 받고 그 흔적을 지닌 사람으로 이 세상을 왜 거슬러 올라서지 못했나 싶습니다. 제대로 올라서고 싶습니다. 예수님의 사랑과 예수님의 심장을 지니고 세상 속에서 사란하기 위해 몸부림치는 연어처럼 그 사랑을 뿜어내기 위해 몸부림치며 살고 싶다는 마음이 불타올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