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설교 듣는 법 - 분별과 은혜
김형익 지음 / 두란노 / 2020년 9월
평점 :
품절

“설교를 통해 오직 하나님과 그분의 영광이 나타나야 합니다. 하나님 스스로를 드러내셔야 합니다. 설교자는 항상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선포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극대화하려는 목적을 가져야 합니다(23.)”
본서의 기록과 같이 신앙의 양심을 가지고 말씀을 전하는 때에 나는 말씀을 전할 때 내가 가진 지식과 지혜가 아닌 하나님의 말씀만이 잘 전달되기를 바라며 말씀을 전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구누구의 설교라는 표현은 꼭 따라다니기 마련이다. ‘설교 잘 들었습니다, 은혜받았습니다, 설교 잘하네’라는 말이 ‘설교 못 하네, 듣기 거북하네’라는 말보다는 1정도 낫지만 저런 표현들 모두 마음을 편하게 하지 않는다. 말씀을 전하는 모두는 말씀을 전하고 듣는 자가 말씀대로 살아가는 모습을 통해 증거를 얻고 하나님께 참 잘 전했다는 확인도장을 받는 것에 행복을 느낀다. 하지만 말씀을 들을 때 “제가 설교를 할 텐데 설교는 이렇게 들으셔야 합니다.”라고 안내문을 제시하거나 광고를 하지는 않는다. 어쩌면 생각은 있는 데 입이 안떨어져서 못하는 것일 수도 있다. 본서를 이러한 답답함을 대신 말해주는 것 같다. 다음과 같은 주요 주제로 설교를 전하는 자, 듣는 자가 모두 알아야 할, 어쩌면 알기는 하지만 어떻게 실천에 이르게 할지 어려웠던 부분들을 잘 풀어 설명해 주고 있다. 본서의 내용을 조금만 옮긴다면,
설교는 거듭난 사람만이 그 안에 내주하시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말씀을 분별하여 듣게 된다(30). 설교를 통하여 은혜를 받을 때 사람은 그 말씀을 통하여 거룩해지는 변화를 경험한다(31). 설교 듣는 기술의 중요성은 우리의 신앙과 영혼의 죽고 사는 것, 건강과 성장이 달려있기 고(35), 설교를 통해 구원에 이르는 믿음(=순종=인내)을 얻게 한다(76). 설교를 듣다가 하나님의 뜻과 내 뜻이 부딪힐 때 우리가 취해야 하는 태도는 자기부인, 즉 자기 뜻을 죽인 것입니다. 자기 부인은 신앙의 요체입니다. 자기 부인은 언제나 자기의 뜻을 죽이고 하나님의 뜻을 묻는 것이다(155).
설교학에서 설교를 하는 방법론에 대하여 무수히 배웠지만, 설교를 듣는 법, 설교를 잘 듣게 하는 법에 대해서 들어본 기억은 없는 것 같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하는 삶에 대한 주제로 말씀을 듣고 깨닫는 법에 대한 교훈의 말씀을 함께 나누면서도 설교 듣는 법에 대하여 말하기란 사실상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믿음은 들음에서 난다고 잘 듣기만 해도 참된 믿음의 소유자가 될 수 있는 것인데, 한국교회는 언제부턴가 전하는 자를 탓하기만 했다. 메신저의 권위와 함께 말씀의 권위가 위협받는 기분이 든다.
비기독교인들 뿐만 아니라 많은사람들이 지루한 말이나 듣기 싫은 말을 들을 때. “설교하지마!, 설교하고 있다.”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설교라는 말의 사용이 저와 같이 표현될 때마다 마음이 대못이 박히는 느낌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하는 전달자의 모습은 지루하고 듣기 싫은 모습으로 형상화되고 있는 것 같아서였다. 본서를 마주하며 설교는 듣는 이로 하여금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에 이르게 하는 능력이 있는 표현으로만 사용되기를 간절히 바라고 바라본다. 비판적, 부정적 사고와 부패한 성품(146)을 버리고 설교를 전하는 자와 듣는 자 모든에게 본서를 읽어 볼 것을 추천한다.